잡초에 대한 잡다한 생각들-하나

  • 등록 2013.08.29 17:36:44
크게보기

 

집에서 가까운 보문산 둘레길을 걷다가 허리도 구부정한 어르신이 힘겹게 낫질을 하고 계신다. 단칼에 꺾인 풀 사이에는 비비추(뜰에 심는 백합과 다년생초이며 7~8월에 연한 자주색 꽃이 핀다)라는 관상식물이 있었다.

 

산과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인데 할머니 눈에는 풀 이상의 의미가 없으신가보다하면서 이거 조금 있으면 꽃도 보실텐데요하고 말 끝을 흐렸더니 할머니 말씀이 언중유골(言中有骨)이다. “잡초가 별거야? 제 자리가 아니면 다 잡초지. 내가 몰라서 잡초가 아니라 꽃잔디길을 만들려고 하는데 자꾸만 삐져나와서 꽃잔디 자리를 차지하니까 잡초가 되는 거지.”

 

미국에서 살다온 지인 얘기로는 미국에서 마당 잔디 관리의 주적은 번식력 강한 민들레라고 하면서 어떤 사람이 잔디밭의 잡초제거에 별 약품을 다 써보아도 효과가 없자, 온갖 식물에 관한 정보를 당연히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곳이니 뾰쪽한 답이 있으리라 기대를 하면서 미 농무성에 편지를 띄웠더니 돌아온 대답이 “Learn to love weeds(잡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시오)”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대중가수는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라고 이름 모를 잡초가 꽃도 향기도 없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얘기도 있다. 옛 고서에는 향초와 악초를 한곳에 두면 향기는 없어지고 악취만 있게 되며, 곡식밭에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좋은 곡식을 해치게 된다.”

 

그 누구 하나 잡초를 좋게 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잡초 스스로는 자신을 과연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뿐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악이라 여길까? 잡초가 반론을 제기해 자신의 덕을 논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나는 부지런하며,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잘 자라고, 생존 경쟁에 능하고, 자손의 번식을 최우선하고, 지혜롭고 지능적이며, 진화하며 적응한다.

 

또 기초가 튼튼하고, 자세히 살피면 미인이며, 모성애가 깊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호랑이는 가죽을, 그러나 나 잡초는 씨를 남긴다. 인류가 망해도 지구에 살아남아 제국을 형성하고 잘 살아갈 존재가 개미와 잡초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이렇게 주장할지 모른다.

 

대전은 좀처럼 비가 많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작년에 갔던 피서지를 다시 가볼 기회가 있어 갔는데, 장대비가 쏟아져 황톳물로 뒤범벅이 된 비탈길 길섶에는 작은 돌들이 온종일 콸콸 빗물에 휩쓸려 내리막길을 구른다. 지난해 태풍으로 벌거벗은 대지위에 드문드문 잡초가 자라선 빗물에 흙덩이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다. 이렇게 잡초가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TV의 다큐프로그램에서 어떤 시골장터의 촌노(村老)가 자신이 괴롭고 힘들 때 보도 블럭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잡초를 보면서 삶의 용기를 얻는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강원도 인제군은 지난주에 1회 하늘내린 산야초 효소축제를 열면서 숲 가꾸기 사업에서 버려지는 칡이나 담쟁이덩굴, 과거엔 잡초로 버려지던 쇠비름 같은 식물들이 효소의 주요 자원이라며 청정 인제의 지역 특성을 살려 인제군이 효소산업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라 밝혔다.

 

언젠가 본 듯한 잡초는 없다란 책 내용이 생각난다. 잘 자라길 염원하며 지극정성 키우는 작물도 때론 나약할 수 있는데 눈길한번 받지 못하고 발밑에서 발버둥치며 살려고 애쓰는 잡초란 이름을 지닌 들풀이 한없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조금만 생각하면 잡초와 약초의 기준은 자리의 문제일 것이다. 개체로는 훌륭한 약초라 해도 길 가운데 있으면 장애물에 불과할 것이요. 효소의 자원으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이에게는 약초가 될테니.

 

天不生無福之人, 地不長無名之草-하늘은 복없는 자를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이 땅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잡초는 없다!

 

윤양수 목사 / 한소망교회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 Copyrights ⓒ침례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7238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76길 10, 11층 침례신문사 (02) 2681-9703~5 Fax (02) 2681-9706 bbbbb9191@naver.com l bpress7@hanmail.net 등록번호 : 서울, 다06725 | 등록일 : 1977년4월14일 | 발행인 : 침례신문사 강형주 | 편집인 : 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