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주류 종교개혁운동의 한계

  • 등록 2016.01.01 02: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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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가들은 이러한 로마가톨릭 교회의 화체설을 비판하며 화체설에 입각한 교회의 미사를 개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비판과 그 개혁은 미진하였다. 마르틴 루터는 화체설을 비판하면서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주장하였다. 그는 성도들이 주의 만찬에 참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 그 분이 “실제로” 임재(Real Presence)하시고 “육체적으로” 임재(Physical Presence)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도들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쟝 깔뱅은 “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을 주장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임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루터나 깔뱅이나 모두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예수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해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실제에 있어서는 로마가톨릭의 화체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예수님이 임재해 있는 떡과 포도주에는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마술적인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떡과 포도주 그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전이된다(Transfer of God’s Grace)고 보았다는 점에서, 루터와 깔뱅은 모두 주의 만찬을 성례전주의적인 관점(Sacramentalistic View)에서 해석을 한 것이다.


인격체이신 성령님께서 인격이 없는 무생물인 떡과 포도주에 역사하시고 임재하시는가? 성령님께서는 인격을 가진 신자들의 마음속에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이 아닌가? 떡과 포도주에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동일한 떡과 동일한 포도주이지만 성령님으로부터 감동을 입은 신자(참예자)가 바로 그 떡과 포도주를,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위해서 찢기시고 흘리신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신자가 믿음으로 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로 “간주”(Regard)하는 것이다. 그가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2,000년 전에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회상하고 기념하는 것이며, 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그 시점과 그 현장에서 그 분을 영적으로 체험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단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 상에서 찢기시고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할(Symbolize)뿐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례란 단지 형식이고 상징일 뿐이라는 성례형식주의(Sacramentarianism)의 입장이 진정 신령한 것이고, 그것이 또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인 것이다. 무생물인 떡과 포도주에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적이든 영적이든 임재해 있다고 믿는 것은 신앙을 가장한 일종의 미신(Superstition)이다. 개혁교회의 전통에서는 성찬식 후에 남은 떡과 포도주를 땅에 파묻는다고 하는데, 성령님께서 영적으로 임하여 거룩하게 된 떡과 포도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만찬 이전의 떡과 포도주와 성만찬 이후의 떡과 포도주 간에, 성직자가 축사나 기도를 한다고 해서 화학적이든 물리적이든 영적이든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한국의 개신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위임하신 두 가지 의식인 Baptism과 Lord’s Supper의 용어를 성서적으로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지 않다. Baptism의 성서적인 용어는 “침례”인데, 한국교회에서는 주로 “세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한글로 번역된 거의 모든 성경에 “세례”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바프티조”(baptizo)라는 단어는 1세기 당시의 로마제국에서는 “배가 바다에 침수되다, 어떤 물건을 물속에 빠뜨리다, 옷감을 물속에 집어넣어 염색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로마서 6장 3-5절과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묘사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 그리고 신자들의 그 분과의 연합을 설명하기 위해 “바프티조”(baptizo)라는 낱말이 사용되었다. 그 당시에 “씻는다”는 의미의 단어는 “루오”(luo)나 “피프토”(pipto)가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니까 바프티조(baptizo, 동사)나 바프티스마(baptisma, 명사)라는 말은 전신이 물속에 잠겨서 죽고 장사지낸 바 되고 새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징하는”(Symbolize) 것이다. 침례를 통해서 상징하고자 하는 원뜻은 “죽음과 장사와 부활”인 것이다. 세례를 약례(略禮)라고 하는데, 상징한 것을 약식화 하면 원뜻이 파괴되거나 왜곡되어 버린다.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The Stars and Stripes)는 흰 줄과 빨간 줄 13개와 파란 바탕에 흰 별 50개가 그려져 있다. 잘 아시다시피 “줄 13개”(Thirteen Stripes)는 미국 건국 당시의 13개 주들을 상징하고 있고, “별 50개”(Fifty Stars)는 현재의 50개 주를 상징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성조기에서 상징을 약식화하여 줄을 8개만 그리고 별을 25개만 그린다고 한다면, 줄과 별의 개수가 원래 상징하고자 했던 원뜻은 어떻게 되겠는가? 원뜻은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다.

침례는 “죽음과 장사와 부활”이라는 원뜻을 상징하고자 했던 것인데, 세례라는 용어로 약례화 해서 사용하다 보니 세례는 “죄를 씻는 표”라는 의미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죽고 사는”(die and live) 종교이지 “씻고 말려주는”(wash and dry) 종교가 아니다.


Lord’s Supper의 성서적인 용어는 “주의 만찬”인데, 우리나라 기독교계에서는 “성찬, 성만찬, 성찬식” 등의 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개혁교회 전통에서 영적 임재설의 입장을 취하다 보니, 예수님이 떡과 포도주에 영적으로 임했기 때문에 그 떡과 포도주가 거룩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거룩할 성”(聖) 자를 덧붙인 것 같다.

성도들의 교제 시에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을 유다서에서는 “애찬”(유 1:12, Agape Feast)이라고 하였고 고린도전서에서는 “자기의 만찬”(고전 11:21)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성만찬에 해당하는 용어는 신약성경에서 “주의 만찬”(고전 11:20), “주의 잔”(고전 10:21), “주의 떡이나 잔”(고전 11:27), “주의 몸과 피”(고전 11:27)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의 개신교회에서는 “죽음과 장사와 부활”의 의미를 가지는 침례(Baptism)는 그 의미를 축소시켜서 죄씻음의 의미를 가지는 “세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주의 만찬(Lord’s Supper)은 원래의 신약성서적인 의미보다 더 많이 확대시켜서 거룩(성, 聖)이라는 의미를 추가하여 “성찬, 성만찬, 성찬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위임하신 두 가지 의식에 대하여 “신학적인 용어”가 아니라 “성서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곱째 마지막으로 이상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관료 후원적 종교개혁가들은 당시의 로마가톨릭 교회를 개혁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여전히 그 교회의 잔재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16세기의 아들들”(Sons of the 16th Century)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16세기는 로마가톨릭 교회의 전통과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하게 지속되고 있던 시대였고, 200여년 후에 등장하게 되는 계몽주의(Enlightenment) 시대의 정신을 소유하지 못했던 시대였다. 16세기는 인간의 존엄성과 주권재민 사상에 입각한 시민혁명들(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1776년 미국 혁명,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시대였다. 사상적으로는 다름과 다양성(Difference and Diversity)을 인정하지도 존중하지도 못하는 불관용의 시대(The Age of Intolerance)였다.<계속>

/ 김승진 교수 침신대 역사신학(교회사) 신학연구 소장 예사교회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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