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편은 내 어린 시절 처음 성경을 암송할 수 있었던 때에 첫 번째 암송했던 시였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의 시절을 지나며 수많은 좌절의 순간순간에도 시편 23편은 내게 격려를 주었고 희망을 주었고 행복을 주었습니다.
청장년을 지나 초로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먼저 주님의 품에 안기신 선친 고 이진팔 목사님 내외분의 묘소를 가끔 찾아 묘비 앞에서 그리움을 달래며 고개 숙여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나직하게 암송하며 영원한 그 날을 고대하면서 그리움을 달래봅니다. 이것이 나의 영적 히스토리이며 독자들도 같은 영적 역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시편 23편을 처음 대하면 너무나 달콤하고 포근한 솜사탕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암송했으며 또 아름다운 곡을 붙여 노래하며 사랑해온 시입니다.
웨슬리는 “이 작은 한편의 시가 세상의 어떤 수많은 책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시편 23편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닦아주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설교자는 “시편 23편이야말로 시편의 나이팅게일”이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깊은 밤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듣고 희망을 찾아 기쁨의 아침을 맞는다”라는 말은 시편 23편의 진수를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우리가 시편 23편을 깊이 묵상한다면 이 시를 쓴 시인에게 “늘 인생의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만”있었던 것은 아님을 보게 됩니다. “사망의 그늘진 골짜기(The valley of the shadow death)”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 했으므로 사망의 그늘진 그곳에서도 언제나 풍성한 삶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 23편은 우리의 감정과 정서만을 위로해 주는 시인들의 노래와 같지 않습니다. 이 목자의 시는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은총을 경험하고 누린 한 사람의 깊은 영적 신앙의 고백입니다.
시편 23편의 구조를 보면 비록 6절로 되어 있는 짧은 시이지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 부분이 1절에서 4절 말씀입니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필요를 위해 무엇을 예비하시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공급해 주시는지, 그리고 그분의 관대하심이 얼마나 한량없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인 5절과 6절의 말씀은 우리 목자께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넘치도록 베푸시는지 또한 그분의 은총이 얼마나 큰지 깨달아 알고 이 놀라운 은혜를 세상에 증거해야 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첫째, 우리 목자는 우리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23편의 시작은 신앙의 본질을 선포하면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The Lord is my Shepherd)”입니다. 이 선포는 참 진리의 종교를 정의하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고백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공고한 언약”이기도 합니다. 창세가 48장 15절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는 야곱이 자기 생애를 마감하면서 한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23편은 이 시를 읽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은 지금 누구를 무엇을 목자로 삼겠습니까?”라는 선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 목자가 “내게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난의 땅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2장7절의 말씀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사십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뿐만 아니라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4장 19절의 말씀에서 풍성히 주시는 우리 목자를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시편 23편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말씀은 회복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의 히브리어의 직역을 보면 “내 호흡을 다시 호흡하게 하셨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셨을까요? 우리의 영적 갈등과 억압상태에서 우리 마음과 영혼에 평안과 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지혜로운 목자는 양들이 풍성히 먹고 편히 누울 목초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목자는 상한 우리영혼과 지친 몸을 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직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어떤 이는 긴장으로, 어떤 이는 결혼생활 때문에,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 목자께서는 이모든 곳에서 우리 영혼을 편히 쉬게 하시며 소생시키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어떤 유혹과 위험에서도 지키십니다. 또 우리가 주목해야할 말씀은 “쉴만한 물가”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중요한 사상 가운데 하나는 “쉼과 평안”은 곧 “쉴만한 물가”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갈보리 생명수”물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현대인들은 회복을 위해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합니다. “영화관람, 고전음악 감상이니 팝, 음주, 금지된 약물, 그 외의 수많은 것들을 의지하며 회복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의지하면 할수록 회복과 쉼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오직 우리 목자 한분만이 세상 끝 날까지 쉼과 회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출 3:12; 수 1:5; 마 28:20).
둘째, 우리 목자는 내모든 필요보다 더 넘치게 공급하십니다.
우리의 목자는 언제나 관대하시며 풍성히 주십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렇습니다.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넘치게 공급하십니다. 우리 목자가 인도하시는 초장에는 더 이상 잡초나 독초가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 생명을 위해하는 뱀이나 전갈이나 곰이나 사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상처받은 양들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셔서 양들의 몸을 치료하시며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우리 목자의 환대야 말로 우리를 원수 앞에서 높이 세워주십니다. “주께서 원수들의 얼굴 앞에서 내 앞에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시니” 우리 목자께서 인생의 여정에서 지친 순례자들을 친히 초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여정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 목자이신 주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영원의 그날까지 제공하시며 보호하실 것입니다.
이정일 목사 / 청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