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교도들은 스스로를 복음주의자 또는 오직 성경의 사람들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한 복음주의자들이며 성경의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창세기 1, 2, 3장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하고 선포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율법 선생들에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요5:39)고 하셨습니다.
유대 율법선생들은 누구보다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성경 지식이 무엇 때문에 주님과 충돌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성경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님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다른 것들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이 여전히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찾지 않고 다른 것들을 찾기에 급급한 것은 부정 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창조역사(創造役事) 가운데서 무엇을 하셨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하나님의 창조역사가운데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언하고 있습니다(요1:3). 오늘 날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메시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30절 말씀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의미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신 절차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있습니다.
세 번째가 창조역사는 낙원과 인간의 범죄와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자연의 기원과 물질의 중요성과 본질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들의 기원이 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선언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창조의 주님”이십니다. 바로 그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창조주라는 말의 의미는 “내게 경배하라, 내게 순종하라, 나를 섬겨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에게 온전하신 왕이시며 주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세기 1장 1절의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이시며 창조주시라는 선포입니다. 그렇다면 창조란 무엇을 말합니까?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세상을 향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행위입니다.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 속에 있던 여리고 사람 삭게오를 향해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에게는 빛과 새 생명으로 가득 찬 인생으로 변했습니다.
천지 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미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위하여 창조하신 모든 세계와 자기를 닮은 사람을 보시면서 “심히 좋았더라.(It was very good)”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는 우리 주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유대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주 예수께로 돌아가려는 간절한 갈망을 가져야 합니다.
에덴의 동산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에덴”이란 말의 의미는 “기쁨(Joy)”입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그를 “에덴”에서만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죄 범한 인간은 결국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의미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 나무는 실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기뻐하고 순종할 때 “에덴”의 기쁨을 회복하게 됩니다.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원인은 하나님의 심오하신 사랑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계명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의심할 때 하나님의 관대하심과 사랑을 왜곡하게 되며 결국 죄를 범하게 되며 타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하시며 찾아오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연민(pathos)을 보게 됩니다. 그 반역의 순간 하나님은 이미 성자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역사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3장 8절에 “은혜의 바람, 용서의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은혜와 용서의 바람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이정일 목사 / 청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