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 이름이 부연되지 않고 등장한다고 해도 이는 동일한 인격성을 가진 존재의 현존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그러나 J. A. Zisler는, ‘이름’은 단지 예수의 부재를 극복하거나 또는 예수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복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8:12; 9:15, 16).
이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이 지속되기 때문에 승천하신 예수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이름’은 적절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J. A. Zisler, “The Name of Jesus in the Acts of the Apostles,”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vol. 4 (1979): 28-41.>.
Joseph A. Fitzmyer는 ‘이름’이란 용어의 사용은 구약의 전통(삼상 25:25)을 반향(echoes)하는 것이며 예수를 지칭하는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표상(real and effective representation)이라고 하며<Fitzmyer, The Acts of the Apostles, The Anchor Yale Bible, 266.>, H. Douglas Buckwalter는 구약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그의 인격과 상호 대치될 수 있으며 하나님 자신”이라고 설명한다(출 3:15; 신 28:58; 욥 1:21; 시 8:1~9; 사 30:27; 렘 44:26; 겔 43:8; 암 2:7; 슥 14:9; 말 2:2)<H. Douglas Buckwalter, “하나님의 구원,” ‘복음의 증거: 사도행전신학’ I. H. Μarshall 편, 류근상 역 (서울: 크리스찬출판사, 2004), 140.>.
그렇다면 사도행전에서 ‘이름’은 구원과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수행할까? 여호와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구약의 전통(사 43:11)에 익숙했던 분위기에서 오직 예수의 이름만이 구원자가 된다는 것은 충격적인 선언이며, 이름을 통한 예수의 현존은 예수의 임재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서 “하늘에서 절대자로 통치하시는 초월적인 신의 내재성”을 의미한다<Ibid., 147.>.
구약의 전승을 이어받은 사도행전 4장 12절의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는 설명처럼 예수의 이름은 여호와의 이름과 “동일한 방식으로 기능”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대체”하는 것이다<Marshall, ‘신약성신학’, 196.>. 나사렛 예수의 지상 활동의 부재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이며 종말의 시작인 성령시대에서 나사렛 예수의 육체적 현존은 성령의 배후에 위치할 수 있지만, 대신에 그 ‘이름’은 그 ‘실체’와 동일한 인격과 위력을 가지는 기능을 수행한다.
3. ‘성령을 선물로 받음’(2:38)
사도행전의 ‘성령’은 예수의 승천 이후의 또 다른 인격으로 제시된다<이 논문에서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존재성보다는 ‘증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물론 성령은 말씀을 전하는 증인의 기능을 부여받을 뿐 아니라(1:8; 4:8, 31; 5:32; cf. 2:4, 5~11), 증인 자체의 역할도 수행한다(8:29; 10:19-20; 11:28; 13:2; 15:28; 20:23; 21:4, 11; 23:9): Jacob Jervell, The Unknown Paul (Mimnneapolis: Augsburg, 1984), 107-16.>. 즉, 성령은 구원에 대한 보증도 하지만, 나사렛 예수의 또 다른 보혜사로 기능을 한다(참조, 요 14:16).
사도행전의 성령은 예수의 중재자나 또는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승천하신 예수의 현존, 또는 임재를 의미한다(cf. 2:33; 16:7)<Buckwalter, “하나님의 구원,” 142-3.>. 특히 사도행전의 성령은 예수가 승천 이전에 선포한 ‘성령으로 침례’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이 선언의 성취의 시작인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그러나 성령의 ‘인격’과 ‘능력’의 균형 측면에서 볼 때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의 인격성이 강조되면서 구원의 본질이 된다<김선배, “사도행전에 나타난 ‘나사렛 예수’와 ‘성령’의 일치성,” ‘복음과 실천?’, 54집 (2014 가을): 66-7.>. 이 관련성을 구원과 연결하여 살펴보겠다.
베드로의 해석과 같이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은 ‘성령으로 침례 받는 것’을 의미한다(11:17; cf. 8:20)<성령으로 침례 받는 사건은 사마리아에서부터 에베소의 성령사건 까지 폭넓게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참조, Roger Stronstad, The Charismatic Theology of St. Luke (Grand Rapids: Baker Academic,1984), 71-82.>. 사도행전 어디에서도 1장 5절의 예수의 선포에서 예고된 성령으로 침례 받는 것에 대한 정의가 없으며, 대신에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 바로 성령으로 침례 받는 것이라는 정황이 등장한다<김선배,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침례’의 신학적 의미,” 37-60>.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은 회개와 결합되는 결과이며 이는 구원의 새로운 시대 속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성령이 유대인과 이방인,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간의 연합을 이루는 중요 요소라는 입장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최흥식,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려의 사회적 역할과 중요성에 관한 연구: ‘이방인 포함’과 성령과의 상관 관계,” ‘성경과 신학’ 70권 (2014): 33-66.>. 이 성령은 예수의 승천 이전에는 산발적으로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임하였지만 승천 이후에는 2장의 성령 사건처럼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구별 없이 임한다는 특징이 있다<Jervell, ‘사도행전신학’, 90.>. 유대인들에게 특권이었던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은 “기적”이며(10:45, 47; 11:15; 15:8-9), 이는 유대인들의 영역을 넘어서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임하는 “징표”이다(11:18; 15:8)<Ibid., 91.>.
그렇다면 구원과 성령으로 침례 받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나사렛 예수, 즉 지상의 예수를 알았던 제자들과 그렇지 않던 제자들과의 구별성에서 찾을 수 있는데, 특히 2장의 성령 사건은 다른 성령 사건들의 모본이며 사도행전의 모든 성령사건들을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고넬료의 성령 사건(10:47; cf. 9:17)과 같이 성령의 임하심과 구원 사건의 결합은 2장의 성령사건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Marshall은 “죄사함과 아울러서 성령을 받는 것은 구원 체험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다(행 2:38)”라고 주장하면서, 이 두 경우는 “교정되어야 할 상황”으로 분류한다: Marshall, ‘신약성서신학’, 216.>. 비록 사도행전의 성령사건이 다양성의 특징이 있다고 해도, 성령 사건의 발생 시점이 다르다고 해도,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과 구원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9:17; 10:43-44; 11:15-17; 15:8. cf. 8:17; 19:6).
V. 결론
사도행전의 구원 신학은 다양한 용어와 표현들의 조합과 조화를 통해서 펼쳐진다. ‘누가-행전’의 구조와는 다른 ‘역사화된 신학’의 특징을 갖는 사도행전은 당시 사회의 다양성을 유연하게 활용하면서 구원의 복음을 전개한다. 이러한 전개가 구원의 신학화이며, 이는 예수와의 관계 형성이 구원이라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선포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행전의 구원 신학 전개에서 그 초점은 어디에 놓일까? 다신교와 종교혼합주의가 만연한 헬라-로마 문화 속의 신약교회 상황에서 ‘예수’는 차별성과 구별성을 가진 유일한 구원의 수단이라고 선포된다. 예수의 ‘주’ 또는 ‘메시아’ 되심과 ‘구원’의 일치성은 ‘예수’에게 집중되어, 선포되는 예수가 시대를 초월해서 구원의 본질임을 부각시킨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신약교회는 구원의 영속성과 실효성을 ‘예수’ 자체에 집중하여 시대적인 장벽을 극복하고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시대 상황에서 ‘예수’ 자체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 구원 신학의 특징이다.
사도행전은 예수와 관련된 다양한 수식과 표현들의 중심에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복음의 핵심을 담아 구원을 선포한다. 이러한 선포는 구원의 다의성이나 혹은 다양한 구원의 방법이 아니라 ‘예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통일성 속에서 다양한 상황 속의 복음 선포 및 교회의 설립과 확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양성과 통일성의 균형을 갖춘 사도행전의 구원 신학은 나사렛 예수의 지속성, 승천하신 예수의 승귀성, 성령의 영속성 속에서 ‘예수’를 통한 구원으로 펼쳐진다.
/ 김선배 교수 침신대 신학과(신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