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지만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소중한 단 한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야를 향해 짐을 지고 올라가던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22:7)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 이삭은 비록 나무는 자기 등에 지고 갔지만 자기 자신이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갔습니다. 그래서 자기 말고 다른 제물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오지만 자신을 제물로서 드리지 못하고 다른데서 제물을 찾고 있는 우리가 현대판 “이삭”입니다. 바울사도는 “형제들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자기를 제외한 다른 제물만을 구하면서 다른데서 찾고 있습니다. 만일 한국교회가 자기를 제물로 하나님께 기꺼이 내어 드렸다면 지금의 현실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제물되지 못하고 살 궁리만 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침체를 불러 온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내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해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막10:45)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산제물로 드려질 때 비로소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이미 숫양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알지 못하고 나아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다른 제물을 준비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그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번제할 양은 어디 있냐고 묻고만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제물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