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 기독론: 바울의 기독론(5)

  • 등록 2016.06.16 12: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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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담긴 신학 산책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지난 호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를 존재론의 측면에서 알아보았다. 바울은 성령을 존재론의 측면에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혹은 주의 영으로 표현한다. 그는 또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시는 것과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것을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표현한다. 바울은 성령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밀접하게 연결시켜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을 직접적으로 동일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독자적이면서도 동시에 연합적인 역할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교훈들이 토대가 되어 고대 교회사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발전되었다. 이번 호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를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역할 면에서 살펴보려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직접적으로 오시어 활동하시는 성령의 역할을 통해 표현하다.

먼저 성령은 생명의 영”(8:2) 혹은 살려주는 영”(고전 15:45)으로 표현된다. 성령은 생명의 영으로서 그리스도인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준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바울은 생명이란 단어를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의 행동을 나타내는 핵심 단어로 사용한다. 생명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 곧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고 죄의 종노릇하여 부끄러운 열매를 맺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동 전체를 요약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다.

생명은 간단히 말하면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을 구출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동과 그것의 결과 전체를 가리킨다. 바울의 구원론의 핵심 단어인 소위 칭의, 성화, 그리고 영화라는 단어들과 그것과 연관된 단어들 모두가 이 생명의 나타남인 셈이다. 그래서 바울은 영원한이란 형용사를 사용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6:23).


이런 의미에서 생명의 영이란 어구는 생명의 권능으로 활동하는 영혹은 생명을 주시는 영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나타낸다. “생명의 영이란 어구는 원래 구약 에스겔 골짜기 부활의 환상 이야기(37:1-10)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 그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행하실 뼈들의 부활은 생기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한글 번역에서 생기로 번역된 용어는 70인경 성서에서 직역하면 생명의 영이다.


하나님은 아주 말라버린 뼈들에게 생명의 영을 들어가게 하여 그들을 살려주실 것(37:5)생명을 영을 그들 속에 넣어주어 그들이 살아가게 하실 것(37:6)을 예언하신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생명의 영으로 하여금 사방으로부터 와서 죽음을 당한 자들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고 대언하게 하셨으며(37:9) 또한 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대언하자 그들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큰 군대가 되었다: “이에 내가 그가 명하신 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37:10). 에스겔은 종말에 있을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부활의 역사는 하나님이 그의 영생명의 영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루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바울은 예언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활동의 묘사에서 그 구원 활동의 원동력으로 제시한 생명의 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활동에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활동이 바로 예언의 성취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구원 활동의 원동력이 바로 에스겔이 예언한 생명의 영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바울은 특히 이 생명의 영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이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활동의 원동력인 성령(“생명의 영”)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활동과 직결시킨다. 성령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의 실행자인 성령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또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 안에서 활동하여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권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다.


바울은 나아가 이 생명이란 단어의 본래적 의미를 나타내는 살려주다혹은 생명을 주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생명을 주는 성령의 역할을 제시한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이 말씀은 첫 사람 아담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본래적 존재성과 마지막 아담으로 대표되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성을 대조시킨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라는 구절은 인간 창조에 관한 창세기 2:7의 마지막 구절을 70인경 말씀으로 인용한 것이다. “산 영으로 번역된 어구에서 은 원래 히브리어 네페쉬인데, 이 단어는 흙의 요소”(육신)생기의 요소”(영혼)가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된 인간 존재를 나타낸다. 그런데 70인경에서는 네페쉬의 헬라어 상응어로서 프쉬케’(영혼, 심령, 정신)를 사용했다.


 ‘프쉬케는 헬라인들에게는 주로 영혼, 심령, 혹은 정신과 같은 인간의 내적 존재의 요소인 마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래서 프쉬케는 히브리어 네페쉬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페쉬와 정확하게 상응하는 헬라어 단어가 없기 때문에, 70인경에서 가장 근접한 단어인 프쉬케를 사용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어 역본에서는 산 영을 보통 살아있는 인간”(a living being, NRSV)으로 번역했다. 첫 사람 아담은 비록 생명의 기운인 영혼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흙의 요소인 육신을 가진 가시적이고 일시적이며 제한된 존재성을 갖고 있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주는 영이 되셨다. 여기서 으로서의 존재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의 권능과 계시의 인격성을 나타낸다. ‘살려주다라는 동사는 신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그의 영생명의 영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고 치유하며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나타내기 위해 핵심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하나님이 종말에 그의 백성을 위해 행하시는 치유와 회복의 구원 활동을 나타내기 위해 예언자들에 의해 공통으로 사용되었다.

앞에서 언급된 에스겔 골짜기 부활 환상에서 생명의 영의 활동의 결과를 나타내기 위해 수동태로 두 번 사용되었다(37:5, 6). “생명의 영이 그 뼈들에게 들어갈 때 그들이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살아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동사는 또한 호세아서에서도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활동을 나타내는 예언에 일으키다라는 동사와 함께 사용되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6:2).


바울은 이 동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활동에 관한 묘사에서 여러 차례 사용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교훈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과 연결시켜 말하면서 아브라함이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살려주는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어 살아나게 하시는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4:17). 바울은 또 성령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부활의 권능자이신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 안에 거주하시는 그 성령이 우리의 죽을 몸까지도 살아나게 하시어최종적인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고 말한다(8:11).


바울은 나아가 아담 안에 있는 진노 받은 인생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 받는 인생의 근본적인 대조를 말하면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을 것을 말한다(고전 15:22). 바울은 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섬기는 일꾼들은 새 언약의 일꾼들로서 율법조문에 기초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일하는 사람들인 것을 말하면서 율법조문은 죽이는 것이지만 성령은 살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고후 3:6).


바울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일에 있어서 율법의 근본적인 연약함과 제한성을 지적하면서 만일 율법이 능히 인간을 살려주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하나님의 의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왔을 것이라고 가정법으로 말한다(3:21). 이와 같이 인간을 죄와 죽음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일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영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성령생명의 영이다.

/ 김광수 교수 침신대 신학과(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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