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보배를 가졌습니다(고후4:7~18)

  • 등록 2016.11.10 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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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의 묵상-36

모세가 40년간 광야에서의 망명생활을 끝내고 애굽으로 돌아왔을 때에 히브리 노예들은 엄청난 기대와 흥분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해방과 자유 그리고 약속의 새 땅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 땅을 벗어난 그 순간 그들 앞에 전개된 환경은 그들이 가졌던 비전을 충족시켜주는 땅이 아니라 백성들이 경험하게 된 곳은 텅 빈 광야와 끝없이 펼쳐진 사막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약속과 비전에 엄청난 괴리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광야에 나온 백성들은 자기들이 떠나온 애굽을 회상해 볼 때, 비록 그들이 그곳에서 노예로 살았지만 애굽 땅은 최소한 먹고 마실 것, 그리고 입고 살아갈 집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는 그 순간부터 백성들에게 다시는 애굽 땅을 기억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애굽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제나 달콤한 기억을 회상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전을 주었습니다. 이 땅만 벗어나면 새로운 곳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비전입니다. 그리고 탁월한 지도자 모세가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 땅도 애굽입니다. 하지만 그 백성들이 잊은 것이 하나있습니다.


그들의 비전과 희망, 약속의 성취를 위해 누군가가 죽었고 누군가가 피를 흘렸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47절 말씀에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인생 광야를 순례하는 우리도 바울사도의 이 놀라운 가치를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보배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한 세상의 좋은 것들과 복음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한없는 은혜입니다.


이 복음 안에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 그리고 구원과 약속들입니다. 이것은 모든 종족을 넘어 혈통과 관계없이 주어지는 복음입니다. 이 귀한 복음은 믿는 자 누구에게나 특정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가져야 합니다.

누가복음 1040절에서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분주해서 지친 마르다의 선택은 떠나온 애굽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과 동일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말한 이 보배는 옛것에 사로잡혀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옛것이 동쪽이라면 우리는 이제 서쪽에 서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보배를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옛것과 만나지 않습니다. ‘이 보배를 가지고 영원한 약속의 땅을 향해 가려면 분명히 내면의 분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 보배질그릇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질그릇에 이 보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질그릇의 특징은 연약하고 성숙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의 이름으로 부름 받은 존재인지, 누구의 명령을 받고 헌신하는 사람인지,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 사람은 이 보배를 가진 온전한 질그릇이 됩니다.

우리는 질그릇에 들어있는 보배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는 무슨 비전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까? 그런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 인생의 여정이 여기까지 오기까지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해 왔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괴로움과 억눌림, 박해와 절망, 소외와 고독을 경험하면서 애굽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힙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령한 눈을 크게 뜨고 뒤돌아본다면 우리 뒤에는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14:9)가 우리를 멸망시키기 위해 달려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미래는 밝게 보입니까? 앞에 펼쳐진 현실은 여전히 텅 빈 광야와 사막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눈은 마치 난독증을 가진 듯이 내일을 읽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은 우리에게 신령한 영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마치 비전과 신령한 소망을 완성해 나가는 퍼즐과 같음을 8,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핍박(逼迫)을 받아도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갈보리 십자가를 지신 보배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계속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도다.” 이것은 이 보배를 가진 사람들의 첫 번째 고백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에게 현재 확증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르심의 약속을 믿고 매일 훈련을 받습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결코 관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하는 일터와 문화 어디 한곳도 광야와 사막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보배를 가진 사람들은 오늘도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현실에서 빛과 영광을 구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약속의 나라, 그곳에 있는 영광의 빛을 멀리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작정해야 합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과 그 피가 이스라엘백성들을 해방시키며 자유하게 했듯이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신 이 보배를 찬양하며 증거 해야 합니다. 이 보배만이 세상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며 해결책입니다. 질그릇인 우리에게 계신 이 보배를 고통 받고 있는 세상에 널리 전파하며 날마다 확산시켜 나갑시다.

이정일 목사 / 청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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