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유대인 랍비 니고데모와 대화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가지신 가장 중요한 관심은 그 사람이 “새롭게 태어났는가? 거듭났는가?”하는 것입니다. 21세기 한국교회도 가장 긴급하게 앉아 대화해야할 부분이 예수님과 니고데모가 함께 앉아 대화한 그 자리에 함께 앉는 것입니다. 현대교회가 겪는 영적 공황상태의 원인은 “새로운 탄생, 거듭남”의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대한 전도자 빌리그래함 목사는 “우리 시대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 원인은 우리 사회 곳곳에 영적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시대는 변화의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심 주제는 “새 생명의 탄생, 거듭남”입니다. 새 생명으로 거듭난 소수의 사람들이 인류역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이교도 국가인 로마제국을 복음으로 정복했습니다.
돌맨 박사가 한 말은 우리에게 큰 경고가 됩니다. “근본적인 진리가 빠져버린 설교는 그리스도인을 위대한 삶으로 성장시키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이 경고의 말은 본질적 진리가 빠져버린 메시지로는 그 누구도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는 말일 것입니다. 2016년 10월 7일 연합뉴스에서 우리나라 비만계층을 조사했는데 우리나라 서민 남녀들의 비만도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집단보다 훨씬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서민집단의 비만도가 더 높은 이유는 균형 있는 식생활을 하지 못하고 정크 푸드(Junk Food)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비정상적 비만증에 시달린다는 겁니다. 기독교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질적 진리가 빠진 인스턴트 메시지는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그리스도인으로 만듭니다. 무엇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거듭남,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강력한 변화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의 생애에서 무엇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인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 니고데모가 만난 자리에서 주님이 지적하신 것은 인간은 모두가 잘못된 선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이라고 가장 필요한 부분을 지적하셨습니다. 니고데모에게는 그 지적이 전혀 예상 못한 돌발적인 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하신 이 지적보다 더 급하고 더 근본적이며 강력한 지적은 없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주님께서 분명하게 제한적 말씀을 사용하시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이 “…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조동사 “must”입니다. 이 말씀은 분명한 명령어이며 의무입니다. 인간은 거듭나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 백성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인간이 거듭나야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특성 자체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담의 타락 후 그의 후손인 우리 인류 모두는 영적으로 사망한 존재들입니다(롬 5:12). 그래서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물질이 아니라 영적회복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죄의 결과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스스로 의로워 질 수 없습니다(렘 17:9). 인간은 구멍 난 것을 때우거나 수선해서 새롭게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다해 봉사하면 영적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 믿지만 인간은 그 어떤 수고와 봉사의 결과로도 의로워 질 수 없으며 인간의 방법으로는 죄 문제를 대체할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남”뿐입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랑크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하기 전까지는 인간은 스스로 의롭게 된다는 열망과 낙관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면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변화 될 수 없는 존재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인간에게 새 생명, 새로운 삶이 무엇입니까? “거듭남”입니다. 거듭나야 변화의 존재가 됩니다.
새로운 탄생,
거듭남에 대한 놀라운 설명입니다
우리에게 “거듭남”을 제공하는 유일한 근거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 랍비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하나님은 우리 조상 아담의 범죄 이후부터 단 한순간도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성경의 그 장엄한 모든 스토리 주제는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인간입니다. 그것이 갈보리 십자가입니다.(요 3:16;히 1:1-3) 주님이 만약 이교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셨다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존 C 라일 박사는 “인간의 거듭남은 도덕적 변화나 수정, 외면적 변화가 아니라 심장과 영혼으로부터 철저한 변화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것을 재창조라 부릅니다. 이것은 늙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주님을 우리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남이란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을 때 니고데모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하지만 어떻게(But How)?”라고 질문했습니다. 거듭남은 간단합니다. “회개”와 “믿음”입니다. 회개의 두 가지 의미를 첫째 자기 잘못에 대한 후회와 유감입니다. 가룟 유다의 회개입니다(마 27:3).
둘째, 마음의 변화, 그리고 지적, 의지적 그리고 생각의 변화입니다(행 2:38). 이것은 방향의 전환입니다. 자기 죄를 슬퍼하고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돌릴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붙잡고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의 혁명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을 새로운 생명, 거듭남이라고 빌리그래함 목사는 “거듭난 사람 곁에 누군가가 오게 되면 그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된다. 회개와 거듭남의 증거는 그의 도덕성, 영성, 기질의 혁명적 변화로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정일 목사 / 청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