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5~36)
15년 전의 일입니다. 저희 막내 아이가 저희 사택 앞에서 제가 오는 것을 보고 친구랑 너무 좋아서 펄쩍 펄쩍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단지 아빠를 보고 좋아서 라기보다는 그 반가움 안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집에 안 계시고, 그리고 집 열쇠도 없어서 친구랑 고민하고 있다가 건물 구석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오는데 저 멀리서 아빠가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답니다.
만약 이 아이들이 오늘날처럼 손에 핸드폰을 들고 다녔다면 하나님께 기도했을까 싶습니다. 더 나아가서 기도응답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 가는데 과학 문명의 발달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주지만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 마음을 많이 막기도 합니다.
최근에, 일주일에 3번씩 종합병원에서 정기적으로 혈액 투석을 받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감염되어 B형 간염 보균자로 지내다가 39세가 되던 해에는 간경화가 발생해 간이식 수술을 받아 지금은 정상적인 몸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신장이 좋지 않아 피 투석을 하는데 이것 또한 현재 이식 대기 순번에 의하면 금년 말이나 내년 초쯤이면 이식 받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세상 떠날 사람인데 지금은 의학이 굉장히 발달해서 죽을 사람도 살려내기도 합니다.
어느 한 원로 목사님은 옛날에는 아이들이 놀 거리가 없어서 교회를 선호하며 잘 모여들었답니다. 교회에서 성경동화나 찬양, 율동, 연극 등 재미난 것들이 많았고 또한 간간히 먹을 것도 나눠주니 어려운 환경 속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교회가 자동적으로 선호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 밖의 삶이 저들에게 더 재미난 것들이 많고, 먹을 것도 풍성해 교회는 저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안타까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궁극적인 이유가 우리에게 편리한 삶을 제공해 주시기 위해서였겠습니까?
병 고침 받아 장수하며 좀 더 오래 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니면 세상 즐거움과 더불어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까?
위와 같은 삶이 우리에겐 필요하긴 하지만 위의 내용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가 기도의 핵심적인 것들을 놓치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알고, 깨닫는다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기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절박함과 더불어 기도에 더욱 매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요구되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삶의 내용은 거룩함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너무나 많은 유혹과 시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공해 속에서 우리는 매일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찌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이와 같은 세상 속에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마귀와의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하는 전쟁터에 기거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죄악들을 이겨나가야 할 때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중엔 순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순교를 했다는 것은 하나님 뜻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겠습니까?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버려 의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서는 것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길 만큼 죄 문제를 방관해서는 안 될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입니다.
정길조 목사 / 천안참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