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본 갈라디아서의 구원론-8

  • 등록 2017.04.27 13:3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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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1519년 판에서 율법과 복음은 다르고 율법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선포하고 율법은 죄의 지식이라 했다.

그러나 복음은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이뤄졌으며 완성됐다는 것을 선포한다고 했다.

 

(1) 서론(서신의 중심사상)

루터는 갈라디아서 주석맨 앞에 상당히 길게 서술한 서신의 근본사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루터는 갈라디아서의 논점을 그리스도의 의온갖 종류의 의에 관해 완벽한 지식과 그 차이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바울이 믿음, 은혜, 죄사함, 그리스도의 의에 관한 가르침을 확립하고자 한다고 본다.


여러 종류의 의에 대해 정치적(시민적)인 의: 황제, 제후, 철학자들과 법률가들이 다루는 의, 의식과 관련된 의: 행동거지들의 교정에 꼭 필요한 예법들과 이 세상 삶에 관한 관찰들, 율법(십계명)의 의: 모세가 가르치는 의, 하나님의 의(믿음의 의, 그리스도의 의): 모든 것들보다 뛰어난 의가 있는데 번의 하나님의 의는 -번의 다른 의들과 상반되기 때문에 부지런히 구분해야 된다고 한다. 하나님은 번의 의를 행위 없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전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번의 의를 수동적인 의라고 하고 -번의 의는 능동적인 의라고 한다.


루터는 1531년의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율법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루터는 율법의 행위의식법 준수의 행위로 제한시켜 보지 않고 율법 중 십계명을 비롯한 도덕 계명들을 포함한 모든 율법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미 1519년의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율법과 믿음(은혜)을 대조시켜서 율법을 의식법만이 아니라 도덕법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루터는 서론 부분에서 율법100회 가까이 언급하면서 하나님의 의(그리스도의 의)와 인간의 (능동적인 의)를 구별할 뿐만 아니라 율법과 은혜를 정반대의 개념으로 대립시키고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의가 전가되어 인간이 의롭다고 선언받는다고 한다.


서론 부분에 루터의 이신칭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하나님의 의를 죄를 사해주는 의로 이해하고 있고 루터의 구원론에는 죄를 사함 받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어 있다.

이와 같이 루터는 갈라디아서 주석맨 앞에 상당히 길게 서술한 서신의 근본사상에서 율법의 의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의로써 기독교의 의,’ 믿음의 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통해 선물로써 받게 되는 라고 했다.


여기서 루터는 율법과 믿음·은혜를 대조시켜 말하면서 율법을 의식법만이 아니라 도덕법까지 포함하는 포괄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했다. 루터는 율법과 은혜, 율법의 의와 그리스도의 의, 인간적인 능동적 의와 신적인 수동적 의를 대조적인 것으로 이해해 확실하게 구별을 할 줄 아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갈라디아서를 연구하는 목적이라고 강하게 강조했다.

 

(2) 갈라디아서 216, 19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이는 우리가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16).


루터는 16절을 주석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참된 의미는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랑과 선행이 함께 결합된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라고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고 한다.


루터는 16절의 주석을 통해 율법의 행위믿음에 의한 칭의를 대조하며 설명하고 있다. 루터는 여기서 인간의 행위의 공로에 의한 칭의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 대한 종교개혁의 근본원리를 강력하게 붙들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가톨릭의 사랑과 선행에 의한 구원론에 적극 반대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칭의 교리를 강조하는 성경구절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루터는 중세 스콜라 신학을 대항하여 사랑으로 형성되는 믿음이 의인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계없이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칭의를 얻게 해주며 이 믿음으로 칭의를 얻는 자가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준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함이니라”(19).

루터는 19절을 주석하면서 거짓 사도들은 다음과 같은 교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대가 율법에 대해 살지 않는다면 그대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지 못한다.” 그러나 바울은 정반대로 말한다. “그대가 율법에 대해 죽지 않는다면 그대는 하나님에 대해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루터는 이제 우리가 율법에 대해 죽어 있다면 율법이,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구해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힘을 발휘하지 못하듯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내가 율법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나는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라고 한다. , 율법에 대하여 죽는 것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율법을 알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은 율법 없는 것으로 발견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율법과 죄와 죽음과 음부를 뛰어 넘는 은혜와 죄사함의 자녀라고 정의한다.


루터는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216절을 주석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가장 넓은 의미로 파악해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전체의 행위로 보고 은혜와 대립적 관계로 정의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에 의한 칭의믿음에 의한 칭의를 반어법으로 대조해 설명함으로 인간의 행위의 공로에 의한 칭의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 대한 종교개혁의 근본원리를 강하게 주장했다.

김종이 목사 / 성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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