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등교길에서 찬양하는 목사 아저씨… “얘들아 축복한다. 파이팅!” 신참 목사에게 닥친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 온라인 예배 무작정 도전기 길거리 선포-온라인예배-찬픈시라이브찬양방송-말씀가베학교-온라인부모교육까지 정찬석 목사 이음교회 2017년 7월 10일 동서지방회 소속 교회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안수받은 다음 날부터 거리에서 찬양하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했다. 횟수로 벌써 6년째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평생 거리에서 침례자 요한처럼 외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목사 안수를 준비하면서 얻게된 소명이다. 목사로서 평생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로 다짐했던 소망이, 지금은 필자의 사명적 정체성이 됐다. 처음에는 주님께 감사함과 기쁨으로 무작정 거리로 나가 찬양하며 길거리 선포를 시작했다. 계획은 없었다. 연결되는 데로 발걸음을 옮겨 찬양으로 선포했다. 목회 초기인 탓에 변변한 예배처가 있지 않았지만 카페를 빌려서 예배를 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역을 응원하던 집사로부터 13평 남짓한 아파트 상가 임대를 제안받아 ‘이음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이웃 주민과 나누는 나눔터를 시작하게 됐다. ‘이음공간’은 지역과
황영식 목사 빛으로교회 한국교회 주요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교세가 줄었다”라고 발표하기 시작한 해가 약 2010년인데, 10년이 지난 2020년에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다. 그 전까지는 한국교회가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양적 팽창에 집중했다. 반지성주의적 강단신앙이 유행했다. 당연히 사람을 키우는 데 투자하기보다는 건물에 투자했다. 초신자들을 관리하지 못했고 명목상의 신자들이 늘어나게 됐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멀어져가고 있고, 가나안 성도는 늘어가고 있으며, 교회는 더 큰 회복과 부흥을 갈망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그동안의 다양한 문제로 쇠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찾아 왔기 때문에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현재는 아무런 대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 교회는 어떻게 회복해야 하고 무엇이 집중해야 할까? 1. 다양한 변화에 변할 수 있어야 한다(Change). 트렌드를 따라가자는 수동적 변화가 아니 다. 본질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변하자는 말이다. (1) 교인의 변화 코로나19 이후의 한국교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비대면예배와 성경공부, 원격헌금, 병행예배
허윤기 목사 새누리2교회 협동목사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COVID)19 비대면의 일상화” 2015년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바이러스의 불안감에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에 발생한 코로나19는 메르스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일상을 비일상의 연속으로 만들었습니다. 학교의 수업은 비대면 수업으로, 교회의 예배 역시 비대면 예배로 전환했습니다. 낯설고 불편했던 경험은 어느덧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열린 예배와 비대면 예배 지금은 거의 논의되지 않지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이른바 “열린 예배”를 두고 그것이 진정한 예배인지, 아니면 불신자와 초신자들을 위한 예배 형식을 갖춘 약식 예배인지의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상당한 논란이 있었지만 제가 뚝섬침례교회 학생부 전도사로 사역할 때 주일 오후에 천민찬 선교사(당시 찬양사역자)를 초청해 열린 예배를 드렸습니다. 열린 예배는 당시 불신자와 초신 자들을 위한 것으로 교회 부흥과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비대면 예배는 교회 부흥과 성장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박군오 목사 유튜브 ‘목사의 서재’ 운영자 / 벨국제아카데미 교목 “오늘은 어느 채널에서 예배를 드릴까?” “뭐, 유튜브가 추천해 주는 데서 드리죠!” 이 대화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일 아침 어느 가정의 익숙한 온라인 예배의 풍경이다. 유튜브 속 AI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예배를 클릭만 하면 된다. 예배의 준비를 내가 아니라 A.I가 해주고 있다. 이미 많은 성도가 본 교회의 예배뿐 아니라 타 교회의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교인보다 접속자 수가 월등하게 많은 온라인 예배 채널을 통해 드러난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코로나19는 교회에 다양한 예배의 형태를 등장시켰다. 온라인 예배에 대한 의견도 비대면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필요와 의미를 인정하게 됐다. 교회의 대면 예배 중단의 위기 속에서 서둘러 준비된 온라인 예배가 대면 예배의 현장감을 녹여내기 어려웠다. 전통 예배라 불리는 대면 예배에 최적화된 예배를 하루아침에 온라인 최적화를 이룬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성도들도 온라인 예배로 전환이 어색하고 힘들었다. 제약이 많은 온라인 예배의 답답함이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 인가 비대면 예배, 온라인 예배가 익숙하고 괜찮아 보이기 시작했다. 온라인
황영식 목사 / 빛으로교회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는 큰 변화를 겪으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비대면의 환경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동안의 현상을 진단하며 앞으로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성을 3개의 키워드(하이브리드, 배움, 소그룹)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새로운 마음 위드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현재는 과거로의 회귀를 허락하지 않으며, 새로운 마음을 갖출 것을 요청한다. 조금만 더 견디면 끝날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를 여러 차례 허망하게 만들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불러온 팬데믹과 함께 2021년이 끝나고 이제는 코로나19가 빠른 시기에 끝날 것이라는 성급한 답을 주저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미 백신 접종 완료 인구가 상당히 높아도, 오미크론이란 변수 앞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만큼 바이러스의 변이 속도가 빠르고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타임머신 역할을 했다. 2030년을 2020년으로 가져왔다. 한층 더 빨라지는 변화의 속도에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는 2022년이 될 것이다. 2. 코로나 시대의 위기 코로나19로 교회는 충분한 준비나 신학적 성찰 없이 거대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파도 앞에 놓여 있다. 비대면 예배가 일상화되면서 2년 동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교회가 역사적으로 급성전염병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전염병에 대한 해석과 대처 종교개혁자들은 급성전염병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고 다양한 각도로 해석했다. 울리히 츠빙글리 스위스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활동 무대였던 취리히는 1519년부터 1520년 2월까지 창궐한 흑사병으로 인구 7000명 중 25%가 죽음을 당했다. 츠빙글리 역시 흑사병에 감염되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극적으로 회복됐다. 츠빙글리는 죽음 앞에서 인간의 무능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깊이 깨닫게 되면서부터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인문주의자에서 개혁주의 신학자로 변하게 됐다. 그는 흑사병에서 회복된 후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 시인 역병가를 썼는데, 역병 가는 ‘토기장이와 토기’의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강조하였다. 흑사병은 츠빙글리가 개혁주의 신학자가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인리히 불링거 불링거가 츠빙글리의 후임 목사로 목회하던 때 취리히에서는 흑사병이 1564~65년에 발병해 시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불링거의 아내와 3명의 딸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교회가 역사적으로 급성전염병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중세 교회의 전염병에 대한 해석과 대처 중세 시대 흑사병으로 불린 급성전염병은 유럽에 간헐적이며 지속적으로 발병했고, 14세기 후반부터 만성적인 풍토병이 됐다. 중세 초기 541년 이집트 항구도시 펠루시움에서 발병한 흑사병은 542년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진출해 544년까지 약 30만 명을 희생시켰는데, 그것은 주민 전체의 1/3에서 1/2에 해당되는 숫자였다. 흑사병은 유럽으로도 번져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중세 유럽은 역병에 대해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과 의술을 발전시키는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투르의 주교이자 프랑스 역사가인 그레고리우스(538-594)는 갈리아에서 역병이 발생했을 때, 클레르몽의 주교 갈루스가 주민들과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며 성지로 행진했고, 그 결과 클레르몽의 주민은 단 한 명도 역병으로 사망하지 않았던 반면 후임 주교 카우티누스는 571년 역병이 발생하자 도피하기 바빴고, 그 결과 클레르몽의 주민들이 시체를 셀 수 없을 정도로 희생됐다고 했다. 흑
코로나19의 상황에서 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교회가 역사적으로 급성전염병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하여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해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초기 교회의 전염병에 대한 해석과 대처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첫 3세기 동안 두 번의 국제적 전염병이 있었다. 첫 번째는 165년경부터 189년까지 창궐한 “안토니우스 역병”으로 로마제국 전체 인구의 1/3 혹은 1/4를 죽게 만든 전염병이었다. 고대 도시는 인구 밀도가 매우 높아 질병이 기승을 부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바울이 로마에서 사역하던 1세기 중반 로마시의 인구는 약 45만 명 정도이며, 1,220평 당 302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인도의 캘커타가 122명, 뉴욕 맨해튼이 100 명인 것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붐볐음을 알 수 있다. 높은 인구 밀도는 심각한 위생 문제와 전염병의 확산을 야기했다. 키프리아누스 역병’으로 불린 두 번째 전염병은 249년에서 262년까지 지속됐는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시민의 2/3를 죽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교회는 급성전염병에 잘 대처해 로마제국의 지배적인 종교로 부상하게 됐다. 당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담임목사 디오니시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보(週報)는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그 교회 주보(週報)의 어느 부분을 보십니까? 대게 주보 뒷면에 보면 광고와 아울러서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주로 지난주일 출석 상황과 헌금자 명단을 집계한 것이지만 “주보 한 장”으로 그 교회의 교세와 형편을 가늠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교회에서는 통계란에 여러 항목을 만들어서 전체 숫자를 많게 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그런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유령 숫자까지 넣어서 통계를 만드는 교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본래 주보(週報)라고 하는 것은 주일의 예배를 안내하고 교회의 새로운 소식을 알리는 일종의 그 교회의 신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즈음 대개의 주보는 “예배 안내”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껏해야 교회 사진이나 큼직하게 넣고 목사. 전도사. 안수집사(장로)의 이름까지 전면에 게재해 한눈에 교회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게 하고 구역목장 통계나 조밀하게 해서 교인은 몇 명이나 되고 헌금은 어느 정도 나온다는 것을 선전한 “교회광고지” 같은 인상이 짙습니다. 하기야 요즈음은 “뜻” 보다는 “목소리”의 크기로 시비하는 세
코로나19가 터지고 2년 동안 충격과 폐해(弊害)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여파는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언제 끝날지, 얼마나 더 피해가 있을지 예단할 수 없기에 누구라도 ‘알 수 없음’으로 답해야 할듯하다. 최근 들어 다시 새로운 ‘변이’들이 또다시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어 참담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라는 시대적 팬데믹을 겪은 이후의 교회들은 “반드시 변화를 요구함”이란 과제 앞에 당면해 있고 이러한 변화로의 움직임도 이젠 다양하며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야 하고 그 방법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 21년째 작은 시골에서 목회하고 있는 농촌목회자의 생각이다. 현재 한국교회, 그중에 더 심각한 코로나 후유증에 힘겨워하는 농어촌교회에 대한 한국기독교는 뚜렷한 대안 제시가 극히 미진한 것 같아 안타까운 현실이고 계속 나타나는 통계적 자료에만 눌려있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에 대한 대책이 묘연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필자가 목회하는 성암교회는 전형적인 농촌교회로 이번 코로나19가 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