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인격이 있고 명예가 소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격과 명예에 맞는 예우를 하는 것이 예의고 도리다. 잘 나가는 인기가수를 지역행사에 초대해 놓고 출연료를 지방 무명가수와 같이 대우한다면 바쁜 사람을 불러놓고 뭐 하는 거냐며 드러내고 화를 내지는 않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매우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자신의 격에 맞는 예우를 받지 못한 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대학교수, 회사원 등 각 분야의 예우 기준이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해 최저 임금 기준이 있고 매년 최저 시급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정부가 발표한다. 하지만 회사는 노동조합이 있어서 임금협상을 하고 만족하지 않으면 파업을 하며 회사를 압박해 임금협상을 이끌어 성과금까지 지급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원들 중에는 억대의 연봉을 받는 회사원들도 많이 있다. 필자는 누구나 부담스러워하는 목회자의 예우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한국교회는 목회자의 사례비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교회마다 천차만별이다. 언젠가 모 일간지의 기사를 보니 부사역자들 대부분은 일하는 시간에 비해 매우 낮은 대우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최
오순절운동은 1906년 이후 급속한 양적 성장을 이루어 가면서 전 세계로 확산되어 나갔다. 그 가운데 주장하는 교리와 경험의 차이, 흑백간의 갈등, 지도력의 차이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수많은 교파들이 형성되고 또 분열되기도 했다. 이것을 흔히 고전적 오순절 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오순절운동의 영향력은 드디어 교파의 장벽을 넘어서 전통적인 기성교회 안에까지 미치게 됐다. 이런 현상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였는데, 이때 이후 전통적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교회를 떠나지 않은 채 이 운동에 가담하고, 자기들 교파 안에서 이 운동을 확산시켜 나가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신오순절운동(Neo Pentecostal Movement)” 혹은 “카리스마 운동(Charismatic Movement)”이라고 한다. 그들도 성령침례 교리와 성령의 역사에 의한 여러 가지 은사, 즉 카리스마들을 추구하게 됐다. 이것은 전통적인 종교개혁 교회인 루터교회, 성공회와 로마가톨릭교회까지 포함되는 거대한 물결이었다. 물론 1980년대에 이르러 이 운동은 약간 다른 모습으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약간 회의적이었으나, 일부는 이 운동의 능력을 자기들 안에 수용하기 시작한
교회를 개척해 작은 공간에서 적은 인원수와 함께 예배를 하려고 하니 어설픈 것들이 참 많았다. 반주자도 없어서 내가 직접 기타를 치며 찬양을 했는데, 매주 주일마다 예배 때 부를 찬양을 선곡하는 것도 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어떤 찬양곡을 불러야 할지 참 고민이 많았다. 더구나 요즘 새롭게 나온 찬양곡들은 기타 하나로 반주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피아노와 베이스 기타, 드럼 등이 함께해야 그 곡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 인도자 한 명이 기타 하나 달랑 들고서 반주하면 그 찬양곡의 분위기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 데다가, 성도들은 요즘 새로운 찬양곡들이 익숙하지 않아 함께 찬양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면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까 더 고민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에 맞는 예배로 디자인돼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작지 않은 규모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다. 내가 전도사와 목사로 사역하면서 대부분의 경우 어느 정도의 시스템이 갖춰진 교회에서 사역을 했다. 늘 적지 않은 인원이 예배에 참석했기에 예배 분위기는 쉽게 고조될 수 있었다. 울릉도에서 목회할 때도 성도의 숫자가 적지 않았고, 성가대도 갖췄으니
3) 찰스 파햄의 신학 찰스 파햄의 신학에 있어서 그는 구원의 위기체험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양육에 의한 점진적인 개종을 거부하고, 오직 “위기체험(crisis experience)에 의한 개종을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분명하고 순간적인 구원의 체험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화를 가르쳤으며, 또한 그는 성령침례의 첫 증거가 바로 방언이라고 가르쳤다. 나아가 그는 믿음치료의 교리(The Doctrine of Faith Healing)를 가르치며 사역했고, 여기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 왕국의 수립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부활이 환란 전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 전천년주의를 가르쳤다. 이는 오순절운동의 신학이 확정된 것은 오순절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파햄 목사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그는 캔자스 주 토페카에 있는 성경학교를 통해 오직 성경만을 교과서로서 가르쳤으며, 바로 그가 그르쳤던 이 성경안에서 발견한 성령침례의 성경적 증거가 방언을 말함이라고 확정을 지어 오순절 성령운동의 초석을 놓았던 것이다. 로스웰 플라워(J Roswell Flower)는 이 결정에 대해 현대 오순절운동의 출생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토페카의 부흥에 있어서 독특
미국의 경제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밀턴 프리드만은 1938년 기고문을 통해 유명한 말을 남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are not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우리가 얻는 각종 편익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와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값없이 주시는 은혜’ 개념에 익숙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세속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공생애 기간을 보내실 때 당시 사회 기득권층과 수많은 갈등과 논란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안식일 논쟁이다. 유일신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일곱째 날 안식을 금과옥조로 받들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안식일에도 거침없이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행동은 말 그대로 ‘불경’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한 이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제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을 던지셨다. 창조의 사역은 안식이 완결됐고, 노동 뒤에 휴식은 필요하나, 구속의 사역은 멈출 수 없는 일임을 천명하신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거저 주시는 은혜’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세상 가운데에서도
직장 말고 목회만 하고 싶지만 일터 사역의 고충을 물어오시면 망설이지 않고 피곤함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래도 일터에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기에 아파트 업무와 목회를 함께 한다는 것은 고단합니다. 그래서 일하는 목회자는 전통적인 목회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전통적인 교회 형태로 모임을 시작하며 개척했다면 저는 일찍 나가떨어졌을지 모릅니다. 조금 더디지만 하나씩 만들어가며 일터 목회의 단점을 상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고충은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목사가 일하며 교회 개척한다는 말을 들으면 반응이 크게 엇갈립니다. 현대에 어울리는 목회라며 박수를 보내주시는 분도 있지만 믿음을 평가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신뢰하지 않는 목회자가 돼버립니다. 종종 저도 겪었기에 주변에 일하는 목회자들이 왜 숨어서 일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한 번은 대형교회의 미자립교회 후원 사역에 지원했다가 마음 아픈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일하는 목사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일하는 목회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교회와 가정을 지키고 싶어 고생을 자처한 사람들입니다. 아껴주고 위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일하는 목회자의 경우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
교회를 개척한 후 언제부터 선교를 하면 될까? 선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목회자라면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을 시작하면 출석하는 성도는 적은데, 나가야 할 비용들은 적지 않고, 목회자의 생활비도 빠듯하니 선뜻 선교에 동참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교회가 좀 안정되면 선교에 동참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교회가 빨리 성장하기만 기다리게 되는 것이 개척교회의 실정이다. 그런데 교회가 맘처럼 쉽게 성장되지 않는 게 문제다. 등록하는 성도는 가물에 콩 나듯 하고, 오히려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선교 사역을 위한 지출은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결국 선교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들이 하는 것처럼 여기고 손을 놓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해외선교회 주최 선교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우리 교단의 교회들은 현재 약 3500여 교회가 있는데, 그중 724개의 교회가 다만 얼마라도 선교헌금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전체 교회의 약 20% 정도의 교회만이 교단에 속한 선교사들에게 후원헌금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교단 해외선교회를 통하지 않고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교회들도 있겠지만,
아파트 관리소장을 하는 일들을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매일 지하 1층, 지상 1층, 2층 주차장을 청소합니다. 떨어진 쓰레기를 치우는 정도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분리수거장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물망에 쌓인 물품을 정리하고 묶어 둡니다. 새 그물망으로 교체도 합니다. 분리수거장은 정말 다양한 물건이 나옵니다. ‘왜?’라는 질문이 절로 나옵니다. 도무지 어디에도 분류될 수 없는 물품을 누군가 던져두고 가버립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제법 담담해졌습니다. 말도 안 되는 물건이 나오면 폐기물로 처리하고 관리비에 청구해버립니다. 스트레스 받을 일도 아닙니다. 작은 아파트지만 소소한 행정 업무가 있습니다. 관리비를 정산하고 기관에서 오는 공문서들을 확인 후 조치합니다. 소방, 전기, 승강기와 같은 전문 영역은 용역 업체를 선정해 함께 일합니다. 저는 업체들이 시설을 안전하게 관리하도록 협조합니다. 행정적으로 제가 책임자이기에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고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소방 시설에서 예산이 제법 필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반상회를 통해 상황을 설명했고 대부분 입주민이 수긍하는 분위기였습니다.
6월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을 기억하고 그 후손들을 잘 예우하자는 의미로 제정된 현충일이 있고 6·25전쟁 기념일도 있어서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선조들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가 순직한 군인들이 많은 나라다.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바치신 선조들의 피 흘리신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워졌으며 오늘날 우리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자들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피 흘리신 순교자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의 역사는 피의 역사인데 교단마다 많은 순교자들이 있다. 우리 침례교단에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피 흘린 발자취를 따라 성장해온 교단이다. 침례회출판사에서 출판한 “자랑스런 침례교회”라는 책에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을 간단하지만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1918년에 박노기 목사, 최응선 감로, 전영태 총찰, 김희서 교사 등 전도자 네 명이 시
우리나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비정규직차별금지법, 고용상 성차별금지법 등과 같이 차별금지사유별 또는 차별금지 영역별로 차별을 규정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차별을 방지하고 있다. 그런데 포괄적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 개별차별금지법이 차별을 막아내는데 비효율적이라며 포괄적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법학회(법학자, 변호사, 실무법률가 등으로 구성)는 지난해 11월 8일 우리 사회는 개별적차별금지법을 통해서 충분히 차별을 막을 수 있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도 차별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통해 결국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는 결과밖에 없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동성 성행위, 성전환 행위를 법으로 옹호 조장하고 동성애에 대한 반대표현을 차별로 여겨 법 위반으로 몰아감으로 동성애와 성전환의 문제점과 성경적 진리를 가르치고 표현하는 것을 금지시킨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일반 국민과 성도들을 역차별하며 또한 강력한 법적인 제재를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