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떤 목사님께 문의드릴 있어 문자로 대화하게 됐는데, 필자가 북한학자라고 하니까 대뜸 북한에 억류되어있는 김정욱 선교사가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며 전도했던 친구라고 마음 아파하셨다. 김정욱 선교사는 북한에 억류 된지 벌써 4년째이다. 2013년 10월 북한에 억류된 그는 ‘국가전복음모죄’, ‘간첩죄’, ‘반국가선전·선동죄’, ‘불법국경출입죄’, ‘파괴암해죄’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다. 이들 혐의 중 ‘불법국경출입죄’ 항목에 대해서 이윤걸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에 따르면 국내정보기관 관계자를 통해 김 선교사가 직접 북한에 밀입국해 체포된 것이 아니라 중국의 단둥의 모처에서 체포됐다고 한다. 중국은 북한에게 암묵적으로 국경지역의 혐의자를 체포하고 이송하는 문제에 눈을 감아주는 분위기란다. 2009년 3월 한국계 미국인 기자 유나 리와 중국계 기자 로라 링의 체포 장소도 중국 땅이었다. 이들은 취재 도중 국경을 넘게 됐고 곧바로 인지하고 돌아왔지만 북한 국경경비대는 중국 땅에 진입해 그들을 체포해 갔다. 이 두 여기자는 6개월 억류되었고 형법 제69조 ‘조선민족적대죄’ 및 형법 제233조 ‘비법국경출입죄’로 12년 노동교화형을 선
전통적으로 가톨릭 지역이었던 중남미도 더 이상 이슬람으로부터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고 전체에 비해 수적으로도 미비하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였고,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로 개신교가 강세였던 수리남의 경우 현재 이슬람이 24%에 달한다고 합니다. 2001년에 이슬람 신학교가 개교된 이후로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 차원으로 수리남에 대한 이슬람선교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외에도 서인도 제도의 각 나라들에서의 모슬렘은 나라에 따라 각각 4~15%에 달하는데, 그 중 대다수의 나라가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입니다. 5. 소외된 미전도 종족들이 있습니다. 중남미 지역에는 여전히 복음에 완전히 소외되어 있는 종족들이 의외로 많이 존재합니다. 특히 중남미의 800여 인디오 종족 중에서 대략 절반에 가까운 종족이 자신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며 선교사를 파송하려고 하는 교회나 선교단체 마저 존재하지 않은 무관심한 상태에서 영적으로 방치된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는 오늘날 전 세계 미전도 종족의 5% 정도에 해당하는 수입니다. 6. 다양한 이주민 집단이 있습니다. 이민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다양하게 상호 영향력을 행사해 나가고 있는
북한은 지난 7월 4일 ICBM(화성-14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다음날인 5일에는 발사장면과 단분리 과정을 녹화한 영상을 공개하며 재진입기술도 최종 확증했다고 하며 ICBM임을 주장했다. 미국도 발사 22시간 만에 틸러슨 국무장관이 ICBM이라고 공식성명을 내면서 북한의 핵무장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 규탄했다. 앞서,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은 “핵탄두를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기술을 김정은이 갖게 되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ICBM 발사 후에는 당장 전투태세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 정치권에서도 “인도적 예외조치를 제외하고는 북한과 모든 금융·무역거래를 끊어야 한다”(코리 가드너 미 상원의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우리 군 당국은 지난 5월 14일에 시험 발사한 KN-17(화성-12형)을 개량한 ICBM 급이라고 발표했다. 그 근거로, 미사일 탄두가 대기권에서 재진입과정에서 마하 24의 속도를 내야하고 그때 발생하는 7천도가 넘는 고열을 견뎌야 하는데, 북한의 미사일은 마하 20에도 훨씬 못 미치는 속도였고, 그 높은 고열을 견딜 수 있는 탄두 앞부분의 탄소섬유소재 기술력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남미(라틴아메리카)는 멕시코에서부터 아르헨티나에 이르는 드넓은 땅으로 5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각종 다양한 자원들이 넘쳐나는 풍성한 대륙입니다. 이 지역을 부르는 말로 ‘남아메리카’라는 명칭이 있지만 지리적으로 명백하게 북미에 속한 멕시코를 배제하고 미국과 캐나다만을 북미로 취급하려는 미국적인 시각과 의도가 반영이 된 명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일반적으로는 멕시코에서 파나마까지를 중미, 그 아래 콜롬비아에서 아르헨티나까지를 남미로 구분을 하며 한국에서는 이 지역 전체를 중남미로 부릅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이 지역을 ‘라틴아메리카와 서인도 제도의 국가들’라고 통칭해서 부르고 있지만, 서인도 제도권의 일부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중미와 남미에 속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것을 고려해 용어상의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는 이 지역에 대한 명칭을 ‘중남미’로 하겠습니다. 선교적인 관점과 인식에서 중남미는 추수지역입니다. 아무런 정치 사회적인 제약이나 제한이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에 따른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열매가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중남미 지역에 대한 한국교회의 선교적인 자세와
일반적으로 우리가 북한에 대해 흔히 듣는 말이 ‘김씨 왕조국가’이다. 김일성부터 그의 손자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김씨 삼대부자가 세습을 통해 칠십년 가까이 독재를 하고 있으니 충분히 ‘왕조국가’라고도 부를 만하다. ‘왕조국가’란 어떤 형태인가. 쉽게 고려왕조, 조선왕조를 떠올리면 크게 네 가지로 규정할 수 있다. 첫째, 혈통으로 계승되지만 왕으로 등극하면 선대왕과의 동일한 지위를 얻는다. 둘째, 선대왕과 관계없이 자신만의 통치를 펼칠 수 있다. 셋째, 왕의 실정에 대해 신하가 간언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뒷받침 되었다. 넷째, 왕권중심이지만 거의 늘 당쟁, 당파싸움이 존재했다. 북한독재정권은 어떠한가. 첫 번째 경우를 비춰볼 때, 김정은이 김일성과 동일한 지위(지도적 권위)를 획득했는가. 거의 모두가 아니다 라고 답할 것이다. 북한정권은 여전히 김일성을 수령으로 떠받들면서 김일성의 ‘영생론’을 부르짖으며 그의 망령에 사로잡혀있는 하나의 종교적 정치집단과도 같다. 지난 4월 15일 김일성의 105번째 생일 ‘태양절’을 맞아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인 최룡해의 보고문(축사)이 약 21분 30초 동안 진행되는 가운데 김일성을 약 30여회 지칭하고 김정일을 약 26회 불렀다
1967년 김일성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당내 다른 어떤 사상도 인정하지 않고 ‘김일성 혁명사상’만을 유일사상으로 강조했다(1967.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에서). 물론, 주체사상은 이때까지만 해도 표면적으로는 맑스-레닌주의적 지도사상으로 소개되고 이해된다(1967.12.6. 최고인민회의 제4기회의 김일성 연설에서). 그러다가, 1970년 제5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맑스-레닌주의’ 용어가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수정되고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이 명시된다. 물론, 맑스-레닌주의가 북한헌법에서 삭제된 것은 한참 이후인 1992년도이다. 주체사상의 본질은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혁명 활동을 토대로 한 김일성의 혁명정신을 모태로 구현된 혁명사상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북한전체인민들로 하여금 항일유격대원들처럼 될 것을 종용했고, 이로 인해 북한은 ‘항일유격대국가’로 불려 지기도 했다. 주체사상이 공식 제기되면서부터 김일성의 ‘수령’ 이미지는 대표적 상징이자 호칭이 된다. 김일성 일인독재의 일등공신은 김일성의 친동생이자 당시, 당 조직지도부장이었던 김영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김영주가 주체사상의 행동규범인 ‘10대원칙’을
- 김정은을‘수령’이라고 부르지 마라 이번 주에 대북정책관련 학술회의에 참석을 했는데, 발표자 중 한 사람이 김정은을 말하면서 여러 차례 ‘김정은 수령’이라고 언급했다. 참 귀에 거슬렸다. 북한내부에서는 공식문건이나 언론매체 어디서도 김정은을 ‘수령’이라고 칭하지 않는데 말이다. 북한이 ‘수령제’ 사회인데, 당연히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에게 ‘수령’이라고 하는 게 뭐가 어때서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김정은 우상화에 그렇게 열을 올리고 있는 북한은 왜 정작 김정은에게 지도자 최고의 상징인 ‘수령’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인가. 김정은뿐만 아니라, 김정일도 살아생전에 ‘수령’이라고 불리지 못했다. 사후에도 김일성과 통칭해서 ‘위대한 수령님들’, ‘선대 수령님들’이라고만 불리어졌지, 단독으로 ‘김정일 수령’, ‘수령 김정일’로는 칭함 받지 못했다. 이러한 양상은 지도자이미지, 상징측면으로 접근할 때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만큼 ‘수령’이라는 상징 하나만으로도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의 지도적 권위의 차이를 뚜렷이 발견하게 된다. 더 나아가, 현재 김정은 정권의 안정성에 대한 연구로까지 접근할 수 있다. 글 서두에 언급한 발표자는 김정은의 지도
- ‘작은 스탈린’으로의 김일성 예수님은 30세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3년 동안 공생애 삶을 사셨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기 위해 특별히 12명의 제자를 세워서 그들과 동고동락하셨다. 그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을 뭐라고 불렀을까? 우리는 쉽게 ‘예수님’이라고 불렀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분의 존암(이름)이다. 오늘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것은 큰 실례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이 어느 날 제자들을 향해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실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16:16)라고 고백한다. 이 대답에서 우린 두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께 그리 많이 불려 지지 않았다는 것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자주 부른 호칭이 ‘주’(Lord)라는 사실이다. 주는 쉽게 말하면 ‘주인님’이다. 이처럼, 신약성경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주님’(Lord)으로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의 하나님은 모세 이후부터는 ‘여호와’(Jehovah)라고 불리 우셨다. ‘스스로 계신 분’(자존자)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인격적 특성에 맞는 용어들과 짝을 이뤄 사용됐다. 즉, 여호와
북한에는 지도자들에 대한 전설집이 있다. ‘김일성 전설집’이 있고 ‘김정일 전설집’(백두광명성 전설집)이 있다. ‘김정은 전설집’이 출판됐는지 아직 확인돼지 않고 있다. ‘김일성 전설집’이 출판된 시기를 대체로 북한정권 초기나, 김일성이 권력을 독점했던 1960년대 중후반, 아니면 넉넉잡고 김일성 우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던 1970년대 중후반으로 일반적으로 예상해 볼 수 있는데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들 시기보다 훨씬 더 늦게 나왔다. 예상외로 1987년에서야 ‘김일성 전설집’ 처음 나왔다. 상당히 늦은 편이라 할 수 있다.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고 40년이 지나서야 나온 것이다. ‘김일성 전설집’이 나온 이 시점은 ‘수령제’(혁명적 수령관)가 ‘사회정치생명체론’으로 전환되어 김일성의 신격화(신의 위치)가 본격화되었던 1986년 바로 다음해이다. ‘김일성 전설집’에서 김일성은 초능력을 발휘하는, 도술을 부리는 초자연적 인물로 그려진다. 우리 어린 시절에 한번 들어봄직한 ‘구름타고’, ‘나무잎 배’ 등도 이 전설집의 내용에 포함되어있다. ‘김일성 전설집’을 만들라고 지시한 장본인은 바로 김정일이다. 김정일은 1980년에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채택되면서 자신의
기독교의 신앙체계는 율법과 복음이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것이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에게 주신 것이다(요1:17).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주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이요(출20:2~3), 복음은 오직 하나님의 독생자 영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으로 율법을 완성시키신 것이다(마5:17). 그리고 그 구원(아버지께로 가는 길)의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되신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요14:6). 북한의 주체사상을 자세히 검토하면, 바로 기독교의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김일성 일인독재체제가 구축된 1967년에 선포된 ‘주체사상’은 율법으로, 김정일이 공식적인 후계자로 내정된 1974년에 제시된 ‘혁명적 수령관’이 중심을 이루는 ‘김일성주의’는 복음으로 비견될 수 있다. 더불어 2012년에 김정은이 선포한 ‘김일성-김정일주의’ 또한 ‘복음’의 성격으로 볼 수 있겠다. 여호와 하나님은 히브리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0:3) 이는 하
북한에서 ‘영생론’이 대두된 것은 김일성 사망한 이후부터이다. 이 ‘영생론’과 한 짝을 이루는 용어가 바로 ‘수령’과 ‘태양’이다. 이 둘은 김일성의 대표적인 이미지이자 상징들이다. 또한, 김일성의 영생론을 선전하는 핵심 매개체이기도하다. 북한은 김일성 사후 1997년에 김일성의 생일을 ‘태양절’로 명명하고 주체연호(김일성이 출생한 1912년을 주체1년으로 지정)를 제정하므로 그 지도적 권위를 ‘여호와 하나님’(출애굽 전에 유대력을 명령, 히브리민족의 하나님)과 비견되는 신적 위상을 부여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김일성민족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됐다. 북한 주요언론매체에서도 김일성의 ‘영생론’이 최고의 화두였다. 그렇다면, 당시 북한은 김일성이 어떤 방식으로 ‘영생’ 한다고 논리를 펼쳤는가? 아래 글이 이 질문에 대해 잘 대변을 해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췄으나 수령님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영원히 모든 승리와 영광의 상징으로, 주체의 태양으로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영생하고 계신다”(1998년 조선중앙년감, 58페이지) 위 글처럼, 북한은 김일성 수령이 사후에도 영생하는데, 바로 태양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선전했다. 즉, 김일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존재 원리는 바로 ‘삼위일체’이다. 북한에도 ‘삼위일체’ 원리가 작동된다. 그러나 기존에 제시되어왔던 김일성-김정일-주체사상(당), 이 같은 개념은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원리와는 조금 다르다. 1974년 김정일에 의해 주체사상이 체계화되기 시작하면서 ‘혁명적 수령관’이 대두되고 ‘유일사상 10대원칙’이 명문화되고 행동규범화 되면서 전문가들은 북한사회를 종교적, 특히 기독교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10대원칙을 십계명과 같은 맥락으로 보았고, 위와 같은 ‘삼위일체’ 유형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독교 원리와 같은 북한의 삼위일체 개념은 김일성이 사망한 후에나 비로소 나타난다. 그 주요근거가 바로 ‘수령복’이라는 용어이다. 이 ‘수령복’ 용어는 김일성 사망 직전에 등장한다. 북한 노동신문을 1990년부터 1993년까지 검색해본 결과 신문제목으로 ‘수령복’이라는 용어는 단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1994년에만 무려 10여 차례나 올라왔다. 그 내용들을 보면 ‘수령복’안에 김일성뿐만 아니라, 김정일도 포함되며 김정일과 항상 짝을 이루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수령복’에 대한 개념은 다음의 글에서 명확해진다. 오늘의 이 벅찬 현
3대 세습으로의 일인독재체제를 완수한 김정은은 현재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가 전략적이든, 즉흥적이든 휘두르는 시퍼런 칼날 앞에 아무도 버틸 재간이 없고 권력 엘리트 그룹 중 하나 예외 없이 자신의 목이 언제 달아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정은이 회의를 소집하기만 하면 그 앞에서 오금 절이고 굽실대면서 행여나 공포정치의 끝판인 ‘반역자로 몰기’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진땀을 빼기 일쑤다. 졸았다고, 불량한 자세를 취했다고 처형해버리니 김정은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형극이 벌어지고 있다. 김정일 시기 때만해도 이 지경까지는 아니었다고 한다. 김정일은 엘리트들의 공포의 속성만이 아닌 욕망의 속성을 이용해서 ‘거래적 리더십’이라는 통치수단으로 그 측근들에게 ‘당근’도 많이 던져줬다. 그러나 김정은의 손에는 매서운 ‘채찍’이 들려져있고 그 채찍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휘둘려질지는 종잡을 수 없으니 북한정치권이 얼마나 살얼음판이겠는가. 지금까지 김정은이 휘두른 가장 잔혹한 채찍은 후계승계의 일등공신이었던 그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일이다. 장성택 즉결처형(2013.12.12.) 후 김정은은 비로소 일인독재 리더십을 확보했고 20
이처럼, 핵무력, 핵강국으로의 치적은 오로지 김정은에게 돌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2017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연설한 이후 박수세례가 총 37차례(28분 8초, 2016년은 28분 34초, 43차례 박수) 나왔다. 그 중 일곱 번이 핵강국(5차례), 선군강국(2차례)에 대한 내용에서다. 그리고 자력자강 내용부분에서도 5차례 박수가 나왔다. 따라서, 2017년 신년사의 핵심기조는 핵강국과 자력자강이다. 이는 핵능력 강화를 하는데 있어 국제사회의 고립·봉쇄정책에 자력자강으로 맞서며 버티기를 한다는 선언이다. 이로써 2017년 북한 김정은 정권의 대외정책이 뚜렷이 드러난다. 다음으로, 2017년 김정은 신년사에서 강력하게 나타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한 자신감이다. 신년사 전체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김정은의 리더십이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 리더십의 확보는 지도자상징정치와 긴밀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대체로 리더십이 불안할 때 지도자상징정치가 강하게 작동되고, 리더십이 확보되고 공고화될 때 지도자상징정치는 크게 작동되지 않는다. 2017년 김정은의 신년사는 ‘지도자상징정치’ 의 강력한 작동보다 김정은의
“김정은, 리더십의 자신감이 곳곳에 묻어난 신년사” 2017년 1월 1일 노동신문은 제1면에 김정은 신년사를 올리면서 김정은을 ‘우리의 운명이고 미래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라고 신년사 옆에 빨간 글씨로 크게 새겨 넣었다. 이는 ‘우리의 운명이고 미래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라고 했던 2016년 전년도 보다 김정은의 지도자 성격이 격상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2016년 노동신문도 우측 상단에 김정은을 ‘최고 령도자’로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세로 두 줄로 씌여진 호칭은 분명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2017년에는 왼쪽 상단에 김정일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라고 표기한 것에 반해, 김정은에게는 ‘최고 령도자’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위대한’이 ‘경애하는’보다 한 단계 높은 의미임을 김정일 앞에 기록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령도자’와 ‘최고령도자’로 표기된 것에서 김정은의 지도자 성격이 김정일에 버금가게 됐다고 추정해볼 수 있겠다. 김정은의 신년사 내용에서도 이러한 추세를 발견할 수 있는데, 2017년 신년사에서는 김정일을 단지 ‘위대한 장군님’(4회)으로만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