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푸른 나무숲에서 벌써 여름의 서곡처럼 메미의 울음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는 계절이 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가뭄으로 인하여 지금 고통의 강을 건너고 있다.요즈음에는 요란한 천둥번개라도 함께 하는 소나기가 그리운 날이 많아지고 기다려진다고들 말한다. 삶의 괴로움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우리 국민들은 메르스에도 절망 대신 희망을 찾아 이 혹독한 사막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이러한 아픈 현실 가운데 우리의 이웃 사역의 현장에서의 소식 중에는 소천이라는 메시지가 교단지나 핸드폰의 문자 메시지로 슬픔의 전갈을 받은 적이 요즈음에 많았던 것 같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소식은 성경적으로 생각하면 슬픈 단어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쓰는 별세(세상을 하직한다)나 작고(고인이 됐다)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천국으로 불러 가셨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된 길인가,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의 이별의 슬픔은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삶의 괴로움으로 남는다. 얼마전 신학의 동산에서 젊은 시절의 구약학 교수님. 인생을 침신에서 후학들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신 고고한 학자의 모습으로 기억되시는 스승님이 미국의 이역 만리에서 소천
시 론교회를 떠나는 것과 신앙을 버리는 것내성인지, 인지능력 상실인지 이제는 별로 놀라지 않는 일을 다시 꺼내는 것은 식상하다 못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학습효과란 쉽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교회들이 쇠퇴를 넘어 소멸의 위기에 처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최근 미국의 종교지형이 유럽처럼 변한다 하여도 별로 마음이 나대지 않는다. 그래도 먹기 싫은 음식,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도 먹어야 하고 기억해야 하듯이 우리의 나아갈 길을 위해 타산지석(他山之石)내지 반면교사(反面敎師)라도 삼으면 영양가는 없어도 배는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예상했던 것처럼 미국의 기독교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78.4%였던 2007년의 기독교 인구가 2014년에는 7.8%가 줄은 70.6%로 조사됐고 반대로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특정 종교가 없는 사람들의 비율은 7년 전보다 6.7% 증가한 22.8%로 나타났다. 그뿐이 아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사회구조처럼 교회구조도 노령세대는 증가하고 젊은 세대는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의 위기 속에서 영국의 포스트-에반젤리칼(Post-Evangelical)운동과 그 영향을 받은 미국에서의 이머징 교회 운동(Em
우리 교단에는 많은 기관들이 있다. 신학대학교가 있고, 기독교도서 판매와 출판, 각종 세미나와 제자훈련 등을 주관하는 교회 진흥원, 중국 선교사 왈레스를 기념하여 세운 침례병원과 교회 개척기금 또는 건축 기금을 지원해온 국내 선교회들이 있다. 위에 언급된 네 기관들 모두 미남침례교회의 지원으로 세워졌고 운영되어 왔다. 그 외에도 침례신문사, 해외선교회, 군경선교회, 교역자복지회, 전국남선교연합회, 전국여성선교연합회, 뱁티스트사와 전국사모회가 있다. 이들 8개 기관은 해당 기관의 임원이나 이사들의 헌금이나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이중에는 모범적이며 헌신적인 운영으로 기관이 성장함과 동시에 교단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해외에 자랑할 수 있는 기관이 있는가 하면 다른 기관 중에는 관리자의 도덕적 해이와 사명감 부족으로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기금이 고갈되고 각종 비리가 발생하여 교단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 교단은 한 때 분열의 고난을 겪었고, 다시 합동의 기쁨도 있었다. 초기에는 미남침례회와 유대를 맺고 목회자 생활비를 후원하고 개교회가 대지를 구입하거나 건축을 할 때 미국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원 해준 일이 많았다. 이렇게 기도와 헌금으로 후원해 주는
자원외교 비리로 혐의를 받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은 가득이나 지치고 힘든 국민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더 마음이 무거운 것은 이전의 다수 연예인 자살자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처럼 그도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다.‘에밀 뒤르켐’이 그의 ‘자살론’에서 자살률이 낮은 카톨릭과 반대로 개신교도들의 자살이 많은 것은 개인주의적 경향이 짙기 때문이라 하였는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개인주의가 인본주의의 제왕으로 등극한 오늘날 낯설지 않은 진단인 듯하다.한 걸음 더 나가 조성돈 교수는 자살을 ‘사회적 질병’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만큼 자살은 이제 우리 사회와 삶의 한 부분이 됐다. 어찌됐든 이러한 우리 사회와 우리 교회의 부정적 현상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하게 한다. 물론 오죽했으면 자살하겠는가하는 동정도 할 수 있지만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에게 있는 생명의 소유권을 사람이 가질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한 술 더 뜬 이규태 장로라는 사람의 부정이다. 그의 삶은 국가와 사회, 교회의 부정의 극치였다. 그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남은 모두를 위해 천만다행으로 주님의 심판이라 할 수 있다. 방산비리혐의를 받는 그가 서울의 모 교회의 장로로 교회의
『나다나엘 호손』작 『주홍글씨』는 1850년 작으로 17세기 보스턴에서 일어난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두 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통해 죄와 구원의 문제를 심도 있게 그린 작품이다. 간통한 여자에게 그 벌로 가슴에 간음을 뜻하는 ‘Adultery’의 첫 자인 ‘A’자를 주홍 색으로 달게 한데서 주홍글씨는 간음한 여인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다.『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이란 소설은 추리소설의 구성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를 살해한 범인을 추적한 결과 카라마조프 집안의 보잘 것 없는 하인 『스메르자코프』로 밝혀지게 되며 동네를 떠돌던 여자 거지가 낳은 아들이 『스메르자코프』였고, 이 사건 후 자살로 그 생을 마감하고 있다. 『스메르자코프』의 출생의 비밀은 바로 주인 어르신인 『표도르 카라마조프』였던 것이 밝혀진다. 이 역시 간음과 출생의 비밀이 뒤 얽인 소설이다.지난 2월 26일 헌법 재판소는 간통죄를 재판관 7:2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위헌 의견을 낸 5명은 박한철, 이진성,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으로 결정문에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또는 성적 결정권은 모두 헌법상 기본권이고 법률에 따라 제한이 가능하지만 간통행위를 형벌로
많은 화제를 뿌리며 현재까지 상영되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은 관객이 무려 1,200만을 넘기며 한국영화 역사상 5위 안에 드는 위업을 자랑할 듯하다. 그런 가운데 영화의 중심 현장이었던 ‘꽃분이네’가 영화 후광을 넘어 후유증을 겪으면서 점포 주인의 지나친 권리금 인상 요구로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참으로 기회를 이기적으로 활용(?)하려는 탐욕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여 영화 흥행이 또 다른 甲질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무조건 반갑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그 감동이 여운으로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특히 한 아버지의 아들로 가족의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희생이라는 덕목으로 감당해 내는 모습들은 영화 속 주인공의 자식들이 살아가는 오늘날의 밑거름이 되었기에 더욱 훈훈한 감동이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의 뇌리에 남은 장면들은 주인공이 살아낸 삶의 이야기들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끝 장면으로 갈수록 주인공의 삶이 일부에서는 ‘토’라는 단어도 쏟아냈지만 공감이 견인한 감동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의 시작은 국제시장이 아닌 흥남부두였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한국전쟁이 일어
최근 ‘세계 최초 홈시어터 PC 개발’ ‘창업 10년만에 1조 클럽 가입’ 등으로 유명세를 탄 ‘모뉴엘’이라는 IT기업의 사기 행각은 우리를 허탈하게 했다. 모뉴엘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와 독일 IFA에서 여섯 차례 혁신상을 받는 등 지금까지 21개의 상을 받은 ‘혁신형 기업’, ‘히든 챔피언‘으로 불려왔다. 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마저도 모뉴엘 같은 회사를 주목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뉴엘의 성공 스토리는 거짓으로 판명됐다. 지난해 외형 매출은 1조 2천억원으로 발표됐지만 실제로는 700억대에 불과했으며, 한 대당 8천원~2만원짜리 홈시어터 PC의 수출 가격을 250만원으로 부풀려 3300여회에 걸쳐 정상제품인 것처럼 수출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해외 법인에 실사를 나갈 때는 일일 아르바이트생을 수십 명 고용해서 실제로 아무 문제없는 회사처럼 보이도록 연출을 했다니 어이가 없다.그리고 이렇게 부풀린 실적으로 국내 은행 10곳에서 3조 2000억을 대출 받았고, 이 가운데 6700억을 갚지 않았다. 이 회사 대표는 대출금 중 446억을 빼돌려 브로커 로비, 카지노 도박, 연예기획사 투자에 탕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즘 모
한 남자가 울었다. 침례병원 상황을 설명하다가 설움에 북받쳐 울었다 상황보고는 중단됐다. 이 남자가 이원용 집사였다. 왈레스 기념 침례병원(Wallace Memorial Baptist Hospital)! 우리 교단의 역사요, 우리교단의 자랑이요, 우리 교단의 기관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교단의 아픔이요 골칫거리(?)다. 교단 정치와 여러 가지 논리를 떠나 이제는 일단 병원의 파산부터 막아야 한다. 살려 놓고 나서 그 다음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침례병원의 최근 동향과 상태를 먼저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 침례병원은 중국에서 순교한 왈레스(Wallace) 선교사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의료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선교병원이다.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 세워진 한국 유일의 병원으로서 현재 425병상으로 응급의료센터, 종합건강검진센터, 심혈관센터 그리고 22개의 진료 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문의 55명, 전공의 24명 등 약 575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침례병원은 환자진료와 의료요원교육 그리고 복음증거를 미션으로 하여 60여 년 동안 전국에 33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해외의료선교(방글라데시, 중국, 베트남, 인도, 필리핀 등)와 선교사들을 파송, 지
‘甲’, 요즘은 ‘甲의 횡포’ 또는 ‘甲질’이라고들 한다. 오래전부터 소위 甲질은 있어왔지만 근래에 들어 우리 사회에 깊이 각인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 전반을 甲乙관계로 보는 조금은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시각들이 대세를 이룬듯하다. 이런 현상을 강준만은 대한민국을 ‘갑과 을의 나라’로 정의하면서 그는 甲질은 甲이 甲의 역할과 책임을 넘어 횡포를 부리는 것이며 이러한 오늘의 사회 병리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조선 말기부터 있었던 관리는 높고 귀하며 백성은 낮고 천하다는 ‘관존민비’(官尊民卑)에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다는 甲질의 뿌리 깊은 우리의 내상을 언급한다. 해방 이후 갈등과 대립의 핵심이었던 좌우익 사상의 깊은 민족의 상처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고통과 같은 것이다. 왜 이렇게 우리민족은 좋은 것보다는 좋지 않은 것들을 고스란히 내면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 내 외면적으로 많은 변화를 이루어냈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어만 보인다. 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야! 너 거기 안서.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내지른 한 마디는 甲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의식세계는 지극히 권위주의
설교표절이 지금 조국교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생명언어설교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90%의 목사들이 표절설교를 한다고 한다. 많은 목사들이 무심하게 다른 목사들의 설교를 베껴서 설교한다. 그러다 교인들에게 발각되어 교회에서 면직을 당한 목사들도 있다. 또 그 문제로 교회가 분란에 휩싸인 경우도 있다.어느 대형교회 담임목사는 설교표절을 했다가 교인들에게 알려져 설교를 중단하고 몇 개월 동안 근신한 일도 있다. 이대로 묻어두어야 하나 민낯을 드러내야 하나? 나는 어떤가. 당신은 어떤가. 어디까지가 표절인가? “우연의 일치로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작가에게도 표절의 책임을 뒤집어씌워서는 안 된다. 사상뿐 아니라 말도 표절될 수 있다” 한때 표절 시비에 휘말린 바 있는 작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말이다. 표절의 범주를 상당히 느슨하게 잡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표절시비는 종종 있어왔다.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1955년 보스턴 대학교에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보스턴대학은 1989년부터 1990년까지의 재조사를 통해 킹의 논문 가운데 삼분의 일이 졸업생의 논문을 베낀 사실을 적발해냈다. “나에게는
조선 수군의 주력선 판옥선이 일본 배 안택선을 충파라는 전술로 모두 깨어 부수듯이 영화 ‘명량’이 그동안의 영화 흥행 기록들을 산산이 깨뜨리고 있던 8월의 여름 중순, 대한민국의 심장인 광화문 광장에 카톨릭 신자를 비롯한 시민 약 17만 여명이 운집 한 가운데 교황 프란치스코는 시복식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자들을 숭배했다. 임진왜란으로 풍전등화였던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란 듯이 서 있는 곳에서 아무런 부끄러움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도리어 그들은 자신의 검은 죄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더 위장된 거룩과 의식으로 포장하면서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Society of Jesus or Jesuit)의 회원으로 제수이트 첫 교황이다. 바로 이 제수이트, 즉 예수회가 일본에 조총을 선물해주면서 임진왜란을 일으키도록 풍신수길을 유혹한 세력이다. 예수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후 기독교를 탄압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교황 중심으로 세계 경제 및 정치 장악과 세상 종교 통합을 목적으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가 루시퍼를 숭배하는 프리메이슨과 연관하여 1534년 설립 후 1540년 교황 비오3세의 승인을 받은 수도회로 로마 카톨릭 내 검은
회색 빛 하늘이 무겁다. 올 해도 말없이 속도를 내고 있다. 69번째 광복절을 맞이했지만 온통 잿빛하늘이다. 의미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살아있으니까 살아왔나보다”하고 생각하는 것이 숫제 편할 것이다. 가시덤불길이란, 우리들이 걸어온 역사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명분은 언제나 주인은 국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겉치레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슬픔은 국민에게만…. 지금, 우리는가슴을 가라앉히고 작금의 현실을 보자. 하루라도 편히 지낸 날이 있었는가? 우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죄를 지었기에 이다지도 슬픔과 눈물의 역사를 살아야 하는가? 일제 강점기와 이념의 전쟁과 경제성장을 위한 희생, 민주화의 불행 속에 살아오면서도 백성들은 “내일은 달라지겠지”하는 기대와 소망으로 살아왔다. 시련과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백성들은 죄 없는 죄인 모양으로 그래도 앞만 보고 걸어왔다.사람은 잊어버리는 동물이다. 만일 인간이 잊어버리는 동물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지난 날 피어린 상처와 멍들었던 아픔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불행을 이기는 인내력(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인가? 다음 셋 중에 하나일 때이다. 첫째, 마음 안에 동성을 향한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을 가지고 있을 때, 둘째,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서 동성과의 성적 관계(sexual behavior)를 가질 때, 셋째, 자신을 동성애자로 인정하는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sexual identity)을 가지고 있을 때, 일반적으로 동성애자라고 한다. 동성애와 관련된 차별금지법으로 인해 한국사회와 크리스천들 사이에 찬반논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지면 관계상 많은 것을 얘기할 수 없다. 하여 차별금지법이 왜 문제가 되는가에 대해서 핵심 사항을 바로 다루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슈가 있지만 차별금지법은 말 그대로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이다, 소수의 인권도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차별이란 고용, 교육 등의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기에, 법을 만들 때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만을 차별금지사유로 지정해야 한다. 성별, 피부색 등의 사유는 자신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가치중립적이고 몰가치적인 사유이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차별하
제1화한 끼 식사가 30만원이 되는 한식에 몇 사람이나 지갑을 열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요리 연구가 이종국 씨는 도전했다. 서울 웨스턴 조선호텔이 개관 100주년을 맞아 준비한 갈라 디너로 한식 정찬을 세 차례 마련했고, 회당 인원도 60명으로 제한했다. 이름 하여 “백년의 밥상”. 결과는 대 히트였다. 내 노라 하는 명사들이 앞 다퉈 민원을 넣었다는 후문이 들린다. 전식부터 디저트까지 9개 코스를 준비하고 코스 하나하나에 이름을 달았다. 백(白)-백(百)-지(地)-풍(風)-화(化)-수(水)-몽(夢)-진지-정(情)이 그것이다.“가령 지(地)는 땅의 기운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죠. 뿌리채소와 어린야채를 사용한 우리식 샐러드죠. 백(白)은 뭘까요? 백지처럼 아무것도 없음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의 식전 차(茶)이지요” 라는 이종국 씨의 설명이다.다른 경험 한 토막도 소개했다. “VIP소규모 만찬을 준비한 적이 있어요. 식전차로 쑥을 쓰겠다고 고집했죠. 호스트 입장에서 귀한 보이차를 생각했는데 말이죠. 단, 제가 쑥차를 손님들에게 내 놓으며 그랬어요. 200년 된 매화 밑에서 캔 쑥이라 굉장히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그날 쑥이 동이 났어요.”그는 외국 사람들에게 이런
인간부재(人間不在)라고 한다. “사람이 없고 일꾼이 없고 인재도 없고, 지도자도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듣는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언젠가 지도자가 없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 중에 인물이 없다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 왜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인물이 별다른 사람인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인가, 땅에서 솟는 사람인가, 어디서 빌려오는 것인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인물은 우리 가운데에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인물이어야 하고 인물을 인물 되게 만들어야 한다. 지도자를 지도자로 인정해야 한다. 오늘의 풍토에서는 지도자가 나지도 못할 뿐더러 지도자가 지도자 될 수도 없다. 이런 세대에 어느 인물이 지도자로 나설 수 있겠는가? 정신병자 아니고는 나설 사람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 우리는 인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부정하고, 인물을 죽이는 그런 세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도자이어야 한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지도자이며, 사회에서도 크건 작건 우리는 다 지도자들이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전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