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하나님의 비전이 없다면 이 세상과 절대로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가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을 지켜 나아가는 것입니다. 포도나무교회는 그 비전을 기억하며 25년을 달려왔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앞으로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포도나무교회를 어디로 인도하실지를 듣고 따르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포도나무의 삶을 실천하며 교회 개척 1994년 10월, 포도나무교회는 여주봉 목사가 한 성도의 가정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시작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의 삶을 사는 성도와 교회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여주봉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 삶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이루는 열매가 가득한 교회를 꿈꾸게 하셨다”며 “이 하나님의 비전을 포도나무교회가 품으며 그 길을 따라가기 위한 철저한 믿음과 순종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주봉 목사는 교회를 개척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으로 요한복음 15장 4~5절을 교회의 영구 성구로, ‘오는 세대들과 열방을 책임지는 교회’를 영구 표어로 삼았다. 포도나무교회는 “회복과 부흥”이
“섬 지역 선교 목적으로 방문했던 진도에 정착한지도 벌써 18년이 되어 갑니다.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줬던 사랑하고 고귀한 성도들과 지역사회의 지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도전은 힘겹고 어려움이 있기에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고 기도 없이 갈 수 없기에 오늘도 무릎 꿇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는 전라도를 대표하는 섬으로 주변에 완도, 신안, 관매도, 조도 등에 많은 군도들이 분포돼 있다. 과거 뱃길만 가능했던 곳이 이제는 대교가 놓아지면서 자유롭게 통행하며 놀라운 변화의 물결을 타고 혁신적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섬의 모습과 도시의 모습이 공존하는 진도! 그 교두보에 진도 늘사랑교회(이규선 목사)가 위치해 있다.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 경기도에서 목회하던 이규선 목사는 매년 진도에 미자립교회 선교를 위해 방문하고, 힘들고 척박한 환경과, 성장을 기대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매진하는 섬 지역 목회자들의 헌신과 충성을 보면서 마음에 늘 진도지역 목회자 부부를 위로하고 격려해 왔다. 이 목사는 “그 당시 12개 침례교회가 정말 어려움
“교회는 모든 사람들을 편견 없이 품어주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장애인에 대한 교회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들을 교회의 구성원으로 이들을 받아들이기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도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의 사랑에 목마른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좀 더 넓은 마음으로 그들을 교회의 구성원으로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장애인 선교 동아리인 ‘한사랑장애인선교회’를 통해서 장애아동을 위한 예배와 봉사로 헌신하며 장애인 선교의 꿈을 키워온 한덕진 목사는 지난 26년 동안 장애인 사역을 전개하며 교회가 장애인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져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 사역자였다. 그는 1999년 12월에 경기도 평택에 평안밀알선교단을 세우고 2006년 3월에는 경기도 안성에 사회복지법인 평안밀알복재재단을 설립해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섬기면서 장애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하지만 장애인 또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귀한 자녀임을 교회에 알리고 교회가 장애인들을 품도록 동역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개척의 초기에는 여러 가지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지역교회는 새로운 시대의 도전 속에 교회의 비전을 찾고 미래를 준비한다. 이는 농촌교회라 할지라도 담임 목회자의 의지와 성도들의 마음으로 교회는 부흥 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꾸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에 한국전쟁 중에 충남 서천에 자리 잡은 지원교회(이재우 목사)는 지역 재건과 풍요로운 농촌의 삶, 이농현상으로 사라지는 마을, 지역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귀농귀촌의 새로운 풍경, 코로나19 상황 등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았다. 한적한 마을 초입에 위치해 있는 지원교회는 문산면 지원리와 구동리를 품으며 지역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교회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무너져가고 있는 농촌의 현실을 보면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다시 세워나가고 있다. 예배와 전도! 복음의 열정으로 세워져가는 농촌교회 지원교회는 무엇보다 예배에 집중하며 예배를 통해 성도 개인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교회이다. 주일 오전예배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며 말씀 중심의 예배를 오후예배는 찬양예배로 성도 모두가 함께 찬양하고 율동하며 특별한 활동을 펼치며 교회학교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수요저녁예배는 기도 중심 예배와 말씀 강해를, 365일 새벽예배,
세워진 지 36년이 지난 보전교회는 전라남도 진도에 위치한 작은 시골교회다. 이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강희정 목사는 보전교회의 세 번째 담임목사로 28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학교 시절,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남들이 가지 못하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서원 했던 강 목사는 목회가 자신만 힘들고 마는 것이 아닌 가족에게도 그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4학년 2학기를 2달 남겨놓은 시점에서 그만 도피를 하고 말았다. 당시 그는 “하나님 차라리 내가 돈을 벌어서 선교를 하겠습니다”라며 영농 후계자로 선정을 받아 50~60마리의 돼지를 키우며 양돈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매스컴에서 돼지고기에 대한 안 좋은 주장이 전파되자 돼지고기 값이 폭락해 6000만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러한 시점에 강 목사는 현재의 이주희 사모와 중매로 결혼을 했다. 당시 이주희 사모는 다리에 골육종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그때는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를 잘 몰랐어요. 그럼에도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 나 또한 십자가를 지겠다고 서원했죠. 그런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살리셨던 것처럼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농어촌 목회에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한 불안한 미래, 인프라 부족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립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많은 농어촌 목회자들이 자립을 위해 이중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번 탐방의 주인공인 상도교회 박용윤 목사 또한 농사를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 과거 약초인 홍화씨를 비롯해 땅콩, 오미자, 감나무 등 여러 농사일을 경험한 박 목사는 현재 복숭아와 양봉을 통해 목회 자립을 꿈꾸고 선교하는 교회를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사명 하나로 험지를 택하다 전라남도 장성군에 위치한 상도교회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농촌 시골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논과 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시골마을 특유의 대문이 활짝 열린 집 마당에는 고추를 말리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28세 전도사 시절이었던 박용윤 목사가 처음 이곳에 둥지를 틀었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은 연로한 노인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박 목사가 처음 상도교회에 부임했을 당시 포장된 도로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초가집에 지금은 보기 힘든 아궁이가 있는 그러한 마을이었다. “가깝게 지냈던 목사님이 이사하면서 같이
제2의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때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우리의 동기 부여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고 바라는 뜻에 따라 우리가 그 계획 속에 움직이는 것이다. 독일 드레스 덴에서 18년 동안 선교 사역을 감당 하던 안창국 목사(인물 사진)는 또다른 부르심에 따라 선교지에 후임 목회자를 세우고 국내에서 라이트하 우스김포교회(경기도 김포시 구래 동)를 개척하며 새로운 목회 사역의 시작을 열어갔다. 코로나19로 선교지 또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국내에서도 코로나 시기 가운데 교회를 개척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안창국 목사와 공유교회 플랫폼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교회인 라이트하우스김포교회에 있었다. 안창국 목사는 교회진흥원을 비롯해 울릉도에서도 교회를 섬겼으며 대전에서는 교회를 개척하며 다양한 목회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가 누구 보다 많은 임지를 선택하고 옮겨 갈수 있었던 것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그의 신앙관 때문이었다. 안 목사는 “아내와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나아가는 훈련을 끊이지 않고 해왔다”며 “그것이 어떠한 곳에 가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고 그 방향대로 행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고 대
작은 농촌 시골교회에서 시작한 충남 보령 미산제일교회(구권환 목사)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예배당을 건축하며 하나님이 기뻐 영광 받으시는 일을 감당하며 지역에서도 칭찬받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1995년 가신교회에서 교환 목회로 미산제일교회에 부임한 구권환 목사는 교회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가운데에서 미산제일교회의 역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기도로 이뤄낸 기적 구권환 목사가 부임할 당시, 미산제일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겨우 차 한 대가 다닐 수 있는 좁은 진입로와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진입로 입구에는 장로교회가 있었고 지역 문중의 집과 대나무 숲이 있고 교회가 위치한 땅도 문중 땅으로 속해 있어 매년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다. 더욱이 교회를 가꾸기 위해 나무 하나 심고 돌 하나 옮겨 놓는 것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구권환 목사는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기도의 제단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구 목사는 “전에 있던 교회도 9년을 목회하면서 예배당을 새롭게 건축하고 이곳에 부임했는데 정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며 “그래도 목회자가 좌절하거나 실망할 수 없기에 저녁마다 강단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교회가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사실 굳이 이런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이나 학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을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20년 9월, 전라남도 강진 시골 교회에 젊은 목회자가 부임했다. 남포교회 장정수 목사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결혼한지 일주일만에 강진 땅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다 무너져가던 교회를 리모델링하며 조그마한 어촌 마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장정수 목사는 한평생을 농촌교회에서 사역하며 헌신해온 아버지 장성익 목사(수금)를 본받아 신학교 시절부터 오로지 농어촌교회에서 사역할 것을 하나님께 서원했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을 아는 장성익 목사 또한 아들의 결정에 대견해하며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남포교회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유튜브에서 목회 브이로그를 통해 자신들의 사역을 널리 알리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장정수 목사의 아내 민도영 사모가 촬영과 편집을 맡은 해당 영상들은 교회를 리모델링하는 모습부터 심방하는 모습 등 여러 장면을 아름답게 담아내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자는 이렇듯 조용한 강진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미 1999년에 노인 비율이 7%를 넘어서 고령화사회가 됐고 2017년은 노인 비율이 14%를 넘어서 고령사회에 이르렀다. 1970년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의 노인 인구 증가율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높은 국가는 대한민국과 증가율이 비슷하게 높았던 일본으로 두 국가는 다른 국가보다 증가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한민국의 고령화 속도가 이렇게 빠른 이유는 앞서 언급한 출산율이 단기간에 심각하게 줄어들었고 기대 수명도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인구의 증가 때문에 기초 노령 연금 수급 등의 지출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2020년에 접어들어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층으로 진입하면서 고령 인구 비율이 급등하고 있다. 2019년 8월 15.2%에서 2020년 6월 16.0%, 그리고 2021년 3월 16.7%로 거의 한 달에 0.1%p씩 증가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5년에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대부분의 교단이 다음 세대에 집중하며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
교회창립 6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개화교회(장동훈 목사)는 갈수록 줄어 드는 농촌인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고 있는 교회이다. 유입인구보다 타지로 떠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교회가 성도들과 함께 해야 하는 사역프로그램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장동훈 목사도 1996년에 개화교회에 부임해 27 년을 섬기면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경험했지만 농촌교회의 현실을 온 몸으로 감당 하고 있다. 예로부터 유교적 전통과 사상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에서 교회를 부흥시 키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던 중, 지역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장동훈 목사는 “주변에 개화1리에서 3리까지 약 300호가 넘는 가옥이 분포하고 있는데 다들 고령이시라 교회가 섬길 수 있는 부분들을 찾게 됐다”면서 “1년에 한 번씩 3개 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해 효도잔치를 베풀고 장애인 선교단체인 충청밀알 회원들을 초청해 축제를 가지며 섬겨왔다”면서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이같은 행사를 가지기 못했지만 일상회복이 되면 제일 먼저 이웃에게 다가가는 교회가 되겠다”고 밝혔다. 개화교회는 코로나19 청
“모교회인 지구촌교회의 좋은 토양이 신동탄지구촌교회가 교회를 개척하고 4년이 지나면서 온전하게 뿌리 내릴 수 있는 기초가 됐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도 교회가 품어야 할 성도와 지역, 교회를 생각하며 인내와 기도의 시간으로 보내온 것 같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교회 내에서 예배를 사모하고 성도들의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며 영적인 시대를 분별해 나가는 것이 이 시대 교회가 행해야 할 사명입니다.” 2017년 지구촌교회(최성은 목사)의 지원으로 20년 가까이 지구촌교회에서 사역해 온 박춘광 목사는 동탄2신도시에 신동탄지구촌교회를 개척 했다. 모교회의 다양한 지원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목장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을 전도하고 전도폭 발팀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에 전도 사역을 전개하 면서 교회는 성장해 나갔다. 특히 신도시에 정착하는 젊은 가정들이 신동탄 지구촌교회를 찾아오면서 교회에 30~40대 성도들이 채워지고 유아를 비롯해 미취학아동, 주일학교 학생들이 복음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박춘광 목사는 교회 개척 초기부터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고민 속에 가장 중요한 예배 사역을 선택하고 이것에 집중하고자 했다. 박 목사는 “일주일에 한
코로나 팬데믹 이전, 한국교회는 부흥과 성장이 정체되고 다음세대의 부재, 교회의 내부 갈등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개척미자립교회는 대형교회와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와 위기 속에 교회 개척의 동력을 떨어져 나갔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최덕호 목사도 목회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교회를 개척했지만 순탄치 않은 굴곡의 목회 여정을 달려왔다. 12년 전 가정집 원룸에서 지천명교회를 개척한 최 목사는 꾸준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복음의 열정으로 전도하며 사람들을 만나왔다. 하지만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세상의 현실을 큰 철옹성과 같았다. 자신이 번 아웃 되는 것에 고민하던 최 목사는 건강이라도 지키기 위해 교회에서 나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운동이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점이 된다. 건강과 목회를 접목한 지천명교회 전문적인 트레이너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운동을 시작하며 알게 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수원시 원천동 원천주공 2단지 아파트 상가에 1:1 맞춤 지도 짐 (GYM)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내인 최정민 사모는 필라테스, 최덕호 목사는 헬스 트레이너가 바로 이 목회자 부부의 또 다른 직업이었다. 최덕호 목사는 “사람들이
교회가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기존의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다. 밀집된 주택가에 단독 건물로 위치해 있던 부천교회(이영호 목사)는 고민이었다. 교회 건물과 인접한 다가구 주택과 빌라로 인해 주차와 소음의 문제로 이웃에게 불편을 줬다. 그리고 시설이 노후화되어 무엇인가를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오래된 건물로 인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영호 목사와 부천교회는 새로운 변화를 향한 꿈을 꾸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영호 목사와 부천교회 성도들은 40년 넘게 한 자리에 교회가 위치하며 겪었던 여러 난관을 해결하고자 기도로 준비했다. 이영호 목사는 10년이 넘게 기도하면서 교회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품게 됐다. 선교적 교회로의 전환이었다. 이영호 목사는 지역 사회의 섬과 같은 교회가 아니라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로 전환하려는 마음을 품었다. 그리고 그는 한국 교회에 젊은이들이 떠나는 현실을 보며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부천교회는 과감히 심곡동 교회를 매각하고 송내동 지하1층 지상5층의 건평 500평의 건물 전체를 매입했다. 새로운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5층의 건평 500평 크기의
2019년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교회의 많은 사역을 흔들어 놓는 계기가 됐다. 목양사역에 있어서 큰 변화는 온라인 영상 예배와 비대면 사역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목회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고 있다. 36년의 교회 역사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교회(이영은 목사)도 갑자기 등장한 코로나 팬데믹을 대비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교회의 건강성을 지키고 변함없는 역사를 이뤄나가며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1985년 1대 담임인 김종포 목사와 3명의 성도들이 ‘평신도를 제자화하는 교회’라는 비전을 품고 아름다운교회가 시작됐다. 2011년 교회가 가정교회로 전환하고 지역과 세상을 품어 나가다가 오직 기도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2018년 9월 23일 사무처리회를 거쳐 2대 담임목사로 이영은 목사를 세우고 1대 담임목사인 김종포 목사는 순회선교사로 파송해 교회의 건강한 리더십 교체를 이뤄냈다. 아름다운교회 5대 비전 ‘평신도를 사역화하는 교회’ ‘선교지를 책임지고 지역사회를 품는 교회’ ‘젊은이를 교회로 이끄는 교육이 살아있는 교회’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교회’ ‘가정 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정’ 등 이같은 아름다운교회의 5대 비전은 1대 담임목사인 김종포 목사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