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12월에 당도했다. 다사다난했던 2025년이 저물어 가는 가운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의 찬양이 성탄 트리와 함께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올해는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개인의 삶에서는 상실과 아픔이 반복됐고, 지난 2024년 12월 3일 발생한 비상계엄 이후 정치와 사회는 분열과 갈등, 피로감 속에서 좀처럼 숨을 고르지 못했다.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폭력이 멈추지 않았고, 우리 사회 역시 불안과 불신이 일상이 된 채 서로를 향한 목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특히 영남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 피해는 많은 이들의 눈물과 한탄을 자아냈다.
교회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다음 세대를 향한 염려와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질문, 목회 현장의 고단함은 한 해 내내 누적돼 왔다. 애써 감추려 했지만 상처는 곳곳에 남아 있다. 교단 차원에서도 여러 일들이 있었다. 한국침례신학대학교의 위기는 올해도 이어져 대학기관평가인증에서 ‘인증 유예’를 받았고, 학교법인 이사회는 총회에서 파송한 이사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긴급처리권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화합’을 의제로 내세운 115차 의장단이 출범했지만, 교단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은 불신과 분열은 여전히 침례교단을 옭아매고 있다.
성탄은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찾아온다.
평화로운 세상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 불안하고 어두운 자리에서 예수님은 오셨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분은 힘으로 세상을 제압하지 않았고 고통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아픔 한복판으로 들어오셔서 함께 울고, 함께 짐을 지셨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상처가 사라진 척하는 침묵도 아니다. 성탄의 평화는 상처를 직면하게 하고, 아픔을 치유의 자리로 이끄는 능력이다. 그래서 성탄은 위로이자 요청이다. 상처 입은 세상을 외면하지 말라는 요청이며, 교회가 다시 평화의 통로가 되라는 부르심이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갈라진 자리에서 화해의 언어를 말했는가. 고통받는 이웃의 곁에 실제로 다가갔는가. 세상의 속도와 분노에 휩쓸리기보다 십자가의 길을 선택했는가.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결과만을 재촉해 왔는지도 모른다. 평화를 말하면서도 기다림을 잃었고, 화해를 외치면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여유를 놓쳐왔다. 성탄은 그 속도를 잠시 멈추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우게 한다.
완벽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시작할 이유는 충분하다. 성탄은 언제나 새 출발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치유는 여전히 가능하고 회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연말, 각자의 자리에서 무너진 마음과 지친 영혼을 주님 앞에 내려놓길 바란다. 그리고 교회는 다시 한 번 평화를 전하는 공동체로 서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선언이 아니라 동행으로 말이다.
상처 많은 한 해였다. 그러나 그 상처 위에 다시 평화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예수님이 오셨고,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