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뿌리내린 해악들

  • 등록 2026.06.10 14:44:42
크게보기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 (4)
조강혁 목사
좋은교회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다루심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하시는 방식, 곧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인도하고 다루시는지 배우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어떤 분이시며, 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지위와 위치는 어디인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어떤 간격과 질적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그 간격을 메우려 하나님이 어떻게 다가오셨는지를 배우는 것이 신앙입니다(이것이 성육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이 말은 어떻게 인격적인 인간을 기르시고 다루시고, 양육하시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방식과 일하심(양육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은 죄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인지 그분의 기호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죄와 의, 성화(형상 회복)에 관하여
아더 핑크는 그의 책 ‘전적 타락’에서 설교자의 책무를 이렇게 말합니다.
‘설교자의 첫 번째 직무는, 모든 인간적 자랑과 교만을 긁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높이 바라보는 것을 내려뜨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죄악 된 부패의 상태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는 하나님의 긍휼을 한 조각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설교자의 임무는, 자기 의의 누더기를 벗기고 자만을 흩어버리는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에만 의존해야 함을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현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한 가지는 타락으로 인해 부패, 왜곡된 우리의 형상(존재와 인격, 삶)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참 인간 형상의 회복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동시에 참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사실 이 두 표현(하나님을 닮아가는 동시에 참 인간이 됨)은 같은 의미이며, 또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인간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참 인간 됨이 무엇인지 보여주시기 위해, 또 참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고 닮아가며, 인간 존재의 본질과 목적, 사명, 관계, 가치관, 마음과 생각, 언어 등 참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최종 목적입니다. 물론 그 이유는 우리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 1:11)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서 이루고 계신 가장 중요한 성화의 역사입니다(이 일은 우리 개인뿐 아니라 타락하여 부패한 온 피조 세계의 회복까지 포함합니다.).


정리하면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알고 인간을 아는 지식 위에 세워진 신앙입니다. 이 지식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인간이 누구인지,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이 어떻게 관계하는 존재인지 배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명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뒤에 노아의 믿음을 살피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의 전부는 아니지만 핵심적인 것들 몇 가지를 나눴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아주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공부해야 합니까?”


“왜 교리, 신학(지금까지 살핀 기독교 이해에 필요한 지식들)이 필요합니까?”


“내가 목사, 신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왜 머리가 아플 정도로 이 많은 것들을 알고 배워야 합니까?”


당연히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단순히 공부하며 ‘아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어떤 이론과 지식(=교리, 신학)을 배우고, 개념을 이해하고, 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끝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반드시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 현실적 실존이며, 현실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살아있는 진리 체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 신앙은 결코 ‘아는 것을 무시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골치 아플 정도로 공부하고, 이해하고, 또 설명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교회 안에는 서로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뿌리를 가진 두 가지 해악이 있습니다. 바로 “행함 없는 지성주의”와 “지식을 등한시하는 반지성주의”입니다.


행함 없는 지성주의와 반(反)지성주의는 서로 반대되는 듯하지만, 둘 다 기독교의 건강한 신앙을 망가뜨린다는 점에서 동일하게 해롭습니다.


지성주의는 신앙의 핵심을 지적 이해·신학적 통찰로만 해결하려고 하고, 실제 삶의 변화(행함)를 등한시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을 가집니다. 문제는 지식 자체가 목적이 될 때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지적 호기심만을 충족시키고 지식만을 자랑하면서 삶과 행함은 배제해 신앙을 이론적, 지식적, 관념적인 것에 머물게 하며, 결국에는 삶의 실재는 없이 신앙을 공허하게 만듭니다.


반지성주의는 신앙에서 이해를 위한 탐구와 신학적 숙고를 거부하거나 경멸하며, 감정·체험·권위적·주관적 해석만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는 경향을 가집니다.


반지성주의는 결국 두 가지 길로 갑니다. 성찰과 이해를 거부해 감정만을 신앙 기준으로 삼는 주관주의, 감정주의로 치우치게 합니다. 그러면 신앙은 뿌리가 없어 경험에 따라 흔들립니다. 그리고 지도자에게 절대 의존하는 권위주의로 빠지게 되어, 왜 믿는지 모르고, 무엇을 믿는지 모르고, 어떤 하나님을 믿는지도 모르는 시키시는 대로 무조건 하는 맹목적 신앙(맹신)에 빠집니다.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 Copyrights ⓒ침례신문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7238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76길 10, 11층 침례신문사 (02) 2681-9703~5 Fax (02) 2681-9706 bbbbb9191@naver.com l bpress7@hanmail.net 등록번호 : 서울, 다06725 | 등록일 : 1977년4월14일 | 발행인 : 침례신문사 강형주 | 편집인 : 강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