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자아의 세계에서 사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또한 우리는 경쟁적인 세상에서 위험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거짓 자아의 세계는 외로운 세계이다. 다른 이들이 결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야만 한다. 거짓 자아가 형성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거짓 자아를 증대시키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보호하는 일이 일생의 과업이 됐다. 두려움이나 위험이나 외로움만 없다면, 부분적으로나마 그 상황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행복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거나 정신과를 찾아간다. 또한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전쟁과 같은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두려워 말고 분리시켜라
숨겨진 동기를 직면하지 않는 한 참 자아에서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없고 언제나 필요와 욕구, 곧 거짓 자아를 통해 보고 듣는 모든 것을 걸러낼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와 같은 수련을 통해 방어기제를 서서히 무너뜨려 숨겨진 동기들을 명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불을 켜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실수록 자신을 더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거짓 자아는 상처 입기 쉽고, 무해하고, 아니면 다른 형태로도 보일 수 있다. 그래서 거짓 자아를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거짓 자아를 떠나보내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자아이기 때문이며, 거짓 자아를 떠나보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방어의 형태로 거짓 자아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이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정, 안전, 통제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저항할 수 없는 요구를 하며 가장 선해 보이는 행동에까지 은밀하게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때로는 겉으로 보기에 이타적인 행동도 실제로는 아주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 자아가 아주 교묘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가려진 종교의 행위들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거짓 자아와 맞서 싸워야 한다. 그 첫 단계로 내 자신이 거짓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작용할 때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설교를 듣거나 하는 것도 시간 낭비이다. 왜냐하면 거짓 자아는 여과 장치와 같이 작용하여 듣고 싶지 않은 것을 걸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우리의 어두운 면을 직면해서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숨겨진 동기들을 알아챌 수 있도록 도와줄 어떤 영적 수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특별히 영적인 삶으로 이끌릴 때도 거짓 자아가 활동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짓 자아는 아주 교묘해서 방해받지 않는 한 영적인 삶에 아주 행복하게 적응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 자아는 여전히 인정, 안정, 힘이라는 정서들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고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거짓 자아는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통제하려고 할 것이다. 거짓 자아는 내가 얼마나 영적인가를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인정받으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이나 높은 지성이나 두드러지는 경건함 등을 알아주지 않을 때 화가 날 것이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봉사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힘을 행사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자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 다른 이들의 감사나 주목이 부족할 때의 자신의 반응을 살펴보면 자신의 진정한 행동 동기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거짓 자아는 매우 교묘해서 우리가 그것을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회개는 거짓 자아의 세계를 떠나보내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을 바꾸고, 자신을 직면해서 무의식적인 동기를 드러내도록 전해온다. 그렇게 해서 그 동기들을 복음과 일치시켜 참 자아로 나아가게 인도한다.
자기 노출의 용기
상담치유를 위해서는 가장 진솔한 모습인 자신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적절한 정서나 부적응 행동의 원인이 되는 자신의 어려운 과거를 탐색하고 그것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하는 부담감에 직면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자아는 위협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간혹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자신과 만나게 된다. “그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그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그것은 자아가 위협을 받을 때 나타나는 자기방어라는 자연적인 현상에 역행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적당한 선까지만 말하던 일상적인 삶의 양식과는 전혀 다른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부담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신체적인 질병의 치유이든, 정신적인 장애의 치유이든, 모든 치유에는 공통된 원리가 하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자기노출(self disclosure)의 원리다. 몸에 상처가 나 병원에 간 사람은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보여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