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2장 17절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올해 2026년은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한 지 76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이자, 대한민국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한 전투가 바로 1950년 8월 다부동 전투이다.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의 총공세에 밀려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한 상태였다. 이곳마저 뚫리면 대한민국은 사실상 지도에서 사라질 위기였다. 특히 대구 북방의 다부동(현재 경북 칠곡군)은 대구로 진입하는 최후의 교두보였는데, 북한군 3개 사단이 이 전선을 뚫기 위해 무차별적인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미군 증원 부대까지 투입됐으나 전황은 극도로 악화됐고, 오랜 전투로 지친 국군 제1사단 11연대 장병들이 결국 진지를 이탈해 후퇴하기 시작했다. 후퇴 소식을 들은 백선엽 사단장은 즉시 차를 몰고 최전선인 유학산 기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도로를 가득 메우고 내려오던 패잔병과 부하들을 멈춰 세운 뒤, 흙바닥에 주저앉아 장병들을 모았다. 당시 백 장군은 서툰 영어로 옆에 있던 미군 고문관들에게도 들리도록 다음과 같이 격정적인 연설을 남겼다. “우리가 가버리면 대구가 무너지고, 대구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끝난다. 이제 더 물러설 곳은 바다뿐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만약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먼저 쏴라! 나를 믿고 전진하자!” 사단장이 직접 권총을 들고 맨 앞장서서 적진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하자, 이 모습을 본 장병들은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사단장님이 앞장서는데 우리가 물러설 수 없다”며 후퇴하던 장병들이 다시 총을 들고 돌아섰고, 무서운 기세로 적을 향해 돌격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미군 제27연대장 마이클리스 대령은 “한국군 사단장이 직접 돌격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미군의 화력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국군 1사단은 빼앗겼던 고지를 탈환하고 북한군의 대공세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일화는 전쟁 초기 국군의 무력했던 이미지를 쇄신하고, 지휘관이 솔선수범할 때 군대의 사기가 어떻게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다부동 전투의 승리 덕분에 낙동강 전선을 사수할 수 있었고, 이는 곧이어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이 됐다. 6·25전쟁을 통해 한국은 완전히 무너져 초토화가 됐지만, 백선엽 장군의 용기와 리더십은 한국이 다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무너진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 삶의 무너진 성벽은 어디인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너져 내린 성벽들이 참 많다. 어떤 이에게는 깨어진 가정의 관계가 무너진 성벽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물질의 실패나 건강의 위기가 무너진 성벽일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웠던 열정과 예배가 식어버린 ‘신앙의 성벽’이 무너지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시대가 바로 그러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졌고, 성문들은 불탔으며, 남아 있는 백성들은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았다. 성벽이 없다는 것은 적들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존심이 완전히 짓밟혔다는 의미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니로부터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연장을 들고 뛰어가지 않았다. 그는 먼저 주저앉아 울며,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다(느 1:4). 느헤미야는 감정에 치우쳐 성급하게 일을 진행하지 않았다.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구했고, 왕의 허락을 받은 후에 현장에 도착해 밤을 새워 무너진 현장을 냉철하게 살피며 준비했다.
무너진 삶을 재건하기 원하는가? 내 힘과 방법으로 허겁지겁 무언가를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시는 지혜로 삶을 담담히 돌아보아야 한다. 기도로 다져진 기초 위에 세워지는 성벽만이 흔들리지 않는다. 현장 답사를 마친 느헤미야는 드디어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모으고 하나님의 선한 손이 자신을 도우신 일과 왕이 임명해 준 사실을 당당하게 선포했다(느 2:18). 느헤미야의 간증과 도전을 들은 백성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일어나 건축하자!” 그들은 한마음이 되어 힘을 내기 시작했다. 성벽 재건은 느헤미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대제사장부터 시작해서 귀족, 평민, 심지어 금장색과 장사꾼들까지 자기가 맡은 구역의 성벽을 한 구간씩 책임지며 함께 벽돌을 쌓아 올렸다. 신앙의 재건, 가정과 교회의 회복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의 벽돌을 쌓아주고, 격려의 벽돌을 맞대어 줘야 한다. 공동체가 함께 믿음의 선한 일에 마음을 합할 때, 사탄이 틈탈 수 없는 견고한 영적 성벽이 세워질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마음을 먹고, 무너진 신앙을 다시 세우려 할 때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있다. 바로 ‘방해와 조롱’이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고 하자 삼발랏과 도비야, 게셈이라는 대적들이 나타나 성벽을 쌓으려는 유다 백성들을 업신여기고 비웃었다. “너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하고자 하느냐?”라며 심리적인 압박과 위협을 가해왔다(느 2:19). 이때 느헤미야는 그들의 조롱에 맞서 싸우거나 두려워 떨지 않았다. 당당하게 믿음의 선포를 하였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느 2:20)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으름장보다 훨씬 크신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우리에게 “네가 지금 와서 뭘 바꿀 수 있겠어? 네 처지에 무슨 회복이야?”라며 조롱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대답은 하나여야 한다. “하늘의 하나님이 나를, 우리 가정을, 우리 교회를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 대적의 소리에 귀를 닫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볼 때, 우리는 끝까지 성벽을 완공할 수 있다. 오늘 하루의 삶이 우리 삶의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