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 24:4)
사라를 장사하고 난 뒤 아브라함은 이삭의 결혼을 서두릅니다. 전에 연락이 닿았던 나홀 집안에서 신붓감을 고를 참이었죠. 아브라함이 직접 먼 길을 여행하기에는 건강이 허락지 않았던 데다가 마땅히 대신할 사람도 없었기에 이 일은 늙은 하인에게 맡겨집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상속자라고 이야기했던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과 같은 사람(창 15:2)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창세기가 그의 이름을 확인해 주지 않아서 같은 사람이라고 완전히 확신할 수 없으니 그저 하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네요. 하인은 아브라함을 대신해 신부를 고르고 결정할 권한을 부여받고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어려운 과제를 멋지게 해내게 되죠.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창 24:12)
하인은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고 나홀 집안사람을 향해 때로는 겸손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자기 견해를 밝히며 어려운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죠. 그가 선택한 신부는 나홀의 손녀, 곧 나홀이 밀가와 결혼해서 낳은 브두엘의 딸 리브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워낙 노년에 아들을 낳았기에 동생 나홀의 손녀와 나이대가 비슷하게 되었죠. 하인은 리브가와 그녀의 오빠 라반, 아버지 브두엘 등을 차례로 만난 뒤 마침내 리브가를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창 24:61~62)
하인이 리브가를 인도한 장소는 아브라함이 있는 헤브론이었는데요, 창세기는 이삭이 네게브 지방 브엘라해로이로부터 올라와 그녀를 기다렸다고 기록합니다. 브엘라해로이는 헤브론은 물론 브엘세바를 기준으로 해도 상당히 남쪽 지방으로, 과거 사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하갈이 도망쳤다가 하나님을 만나 이스마엘의 탄생과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들은 곳이었고, 어른이 된 이스마엘이 터전을 잡은 바란 광야와 그다지 멀지 않은 지역이었죠. 창세기는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 있었던 이유에 관해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사라 사망 이후에도 헤브론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아, 장성한 이삭이 아브라함을 떠나 남쪽 지역에서 독립해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이라면 가까이에 사는 이스마엘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겠죠. 이삭이 독립생활을 하고 뒤이어 결혼까지 함으로써 아브라함 집안의 주도권은 다음 세대인 이삭에게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족장 아브라함이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한 셈이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창 25:6)
아브라함은 노년에도 삶의 의욕이 사라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두라라는 이름의 여인을 후처로 두어 아들을 여섯 명 더 낳았으니까요. 이스마엘과 이삭까지 포함해 총 여덟 명의 아들을 둔 셈이죠. 아들이 많아지면 재산 분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던 아브라함은 그가 살아 있을 때 후처가 낳은 아들에게 재산을 얼마씩 나누어 주며 이삭을 떠나게 했습니다. 이스마엘이 남서쪽 애굽을 향해 간 것과는 반대로 그두라가 낳은 여섯 아들은 동쪽으로 길을 떠났고, 그곳에서 각기 다른 여섯 부족의 조상이 됐죠. 아브라함을 열국의 아버지라고 이름 지어 주신 하나님 말씀이 이들에게도 성취된 셈입니다.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창 25:8~9)
아브라함은 175세에 하나님 곁에 가게 됐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그의 임종을 지켰고 헷 사람으로부터 합법적으로 구매해 놓은 막벨라 굴에 장사되어 사라 곁에 눕게 되었죠. 아브라함의 죽음은 창세기에서 첫 번째 족장 시대가 마무리됐음을 의미했습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된 여정이 25장에서 마무리됐는데요, 아브라함의 인생은 한 편의 성장 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처음 등장하던 당시 그의 믿음은 정말 보잘것없었죠. 의욕은 좋았는데 하는 일마다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조금씩 성장해 나갔고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조금 더 높은 곳에서 기다려 주셨습니다. 마침내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 그대로 열국의 아버지, 믿음의 아버지가 되기에 이르렀죠. 비록 그가 살아서 본 자손은 동쪽으로 떠난 후처의 아들을 제외하면 이스마엘과 이삭 두 사람에 불과했어도 두 아들 뒤에 하늘의 별처럼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허다한 생명이 있음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됐을 겁니다. 믿음의 영역에서는 우리도 그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창 24:7)
이토록 오랜 성장 드라마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써 내려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창세기 24장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하인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홀에게로 가서 신붓감을 찾으라고 말하자 하인은 그 여인이 자신을 따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죠. 그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이 24장 7절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미래가 하나님께서 과거 자신을 인도하셨던 모든 사건의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자신을 이끌어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삭의 미래 또한 인도해 주시리라고 믿었죠. 그래서 하인에게 이삭의 미래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신붓감도 예비해 두셨을 테니 믿음으로 찾아가면 반드시 신부를 만나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믿음의 실체입니다.
그는 언제나 한 발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았습니다. 하란을 떠날 때, 롯을 구하러 전쟁에 뛰어들 때, 100세가 된 몸에 할례를 행할 때, 하나님 앞에서 소돔을 살려 달라 간청할 때,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을 향할 때, 언제나 믿음의 걸음을 과감하게 내디뎠고 그 때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말씀하신 하나님, 약속을 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는 믿음이 마침내 그를 날아오르게 했습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만큼 친근하고 가깝게 대하신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친구 같았고, 피조물이면서도 동역자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혼자 날아올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라, 하갈, 이스마엘, 이삭, 그두라와 여섯 아들을 비롯한 수많은 후손이 함께 날아오를 수 있는 믿음의 유산을 남겨 주었고 그 유산이 다음 세대가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친 이삭이 아브라함의 유산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펼치려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