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가져온 변화는 단지 편리한 도구 하나가 늘어난 차원이 아니다.
AI는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언어와 지능을 자원화하고 상품화했다. 이제 목회자와 기독교 리더들이 던져야 할 질문은 “AI를 어떻게 사역에 활용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은 “AI 시대에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가?”이다. 어떻게(How)가 아닌 무엇(What)인 것이다.
지식 생산 비용이 ‘0’이 된 시대
역사적으로 지식과 글을 생산하는 일은 깊은 묵상과 수고, 그리고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설교 한 편을 준비하기 위해 목회자는 성경을 연구하고, 주석을 살피고,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는 시간을 거쳤다. 그러나 AI는 지식과 글 생산의 비용을 거의 ‘0’에 가깝게 만들었다. 이제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정교한 설교 구조와 성경 배경, 적절한 예화가 포함된 설교 개요를 몇 초 만에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치명적인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지식의 생성이 쉬워졌다고 해서 영적 형성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정보는 빠르게 만들어질 수 있지만, 사람의 영혼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믿음은 데이터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낸 시간과 순종의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목자인가, 콘텐츠 관리자인가?
AI 기술이 목회 현장에 깊이 들어올수록 가장 큰 위험은 목회자의 정체성이 변화하는 것이다.
“설교 준비, 심방 일정 관리, 양육 훈련 교재 제작, 성경 공부 자료 제작”이 AI를 통해 쉬워질 때 목회자는 자신도 모르게 영혼을 돌보는 목자가 아니라 효율적인 시스템과 콘텐츠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기계가 잘하는 영역은 분명하다.
정보의 조합 / 매끄러운 문장 구성 / 방대한 자료 검색 / 반복적인 행정 처리.
그러나 목회의 영역은 다르다.
한 영혼을 향한 눈물 / 말씀 앞에서 먼저 무너지는 설교자의 삶 / 고통의 현장에 함께 머무는 존재 / 성도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품는 마음.
더구나 설교는 단순히 정확한 신학 정보를 전달하는 강연이 아니다. 설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편을 드는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또 그 앞에서 몸부림친 설교자의 삶과 연약함을 통해, 성령의 능력이 성도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는 성육신적 사건이다. 무엇보다 AI는 완벽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성육신할 수 없다.
AI 시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세 가지 ‘체화된 신앙’
1) 가공되지 않은 연약함
AI는 오류 없는 매끄러운 답변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성도들이 진정한 위로를 경험하는 순간은 누군가의 완벽함을 볼 때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볼 때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깨어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곳이다.
2)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현재성
디지털 공간과 AI 텍스트가 넘쳐날수록 사람의 실제 만남은 더욱 중요해진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식탁을 나누고, 서로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공동체. 이러한 몸으로 이뤄진 만남은 어떤 기술도 대신할 수 없다. 기독교 신앙은 본래 몸을 가진 신앙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메시지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아들을 보내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복음은 정보가 아니라 임재다.
3) 고통을 견디는 수고(Lament and Patience)
AI는 거의 모든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제공한다. 그러나 신앙은 언제나 빠른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때로 믿음은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답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리는 과정이다. 교회는 세상의 모든 문제를 즉시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울고 함께 기다리며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결국 AI 시대에 교회가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AI를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AI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가”이다. AI는 우리에게 ‘노력 없는 유창함’을 약속한다. 더 빠른 지식, 더 정교한 문장, 더 효율적인 사역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는 언제나 수고가 있었다. 십자가를 지는 수고,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씨름하는 수고, 한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수고. AI는 우리 대신 생각할 수 있고 글을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대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 우리 대신 눈물을 흘릴 수도 없고,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질 수도 없다.
그래서 AI 시대의 도전은 기술의 발전 자체가 아니다. 더 큰 도전은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목회자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초기 한국교회가 그러했다. 그들은 뛰어난 기술이나 풍부한 자원을 의지하지 않았다. 말씀 앞에 머물렀고, 기도했고, 복음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았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셨다. 따라서 AI 시대에 교회가 나아갈 길은 기술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사람을 향한 사랑, 그리고 몸으로 살아내는 복음. 교회의 미래는 더 뛰어난 콘텐츠를 만드는 데 달려 있지 않다. 더 많은 정보를 소유하는 데 있지도 않다. 교회의 미래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한 영혼을 품고,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며, 사랑과 섬김으로 복음을 드러내는 데 있다. AI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기술이 아니라, 복음에 붙들린 사람들을 통해 우리 침례교단의 교회를 세워 가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