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창세기 25장 19절은 창세기 전체 분량의 절반에 해당하면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이야기가 바뀌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나온 아브라함 이야기와 이후에 나올 이삭, 야곱, 요셉 이야기가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죠. 아브라함 이야기는 믿음을 중심으로 전개됐습니다.
‘믿음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와 같은 물음에 대해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초가 되는 신앙의 첫걸음을 아브라함 이야기를 읽으며 배울 수 있었죠. 그의 이야기에는 하나님께서 항상 등장하셨습니다. 직접 말씀하시고, 사건마다 손수 개입하시고, 횃불 언약을 주시는가 하면 유황불로 심판하시고, 아브라함 앞에서 음식을 드시기도 하셨죠.
이삭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는 일이 점점 드물어집니다. 인간사에 잘 개입하지 않으시는 것은 물론 아브라함에게는 흔한 경험이었던 직접 말씀을 주시는 일조차 보기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창세기 25장 이후로는 이삭과 야곱, 요셉과 같은 이야기 속 주인공의 삶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독자가 직접 찾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요, 이를 통해 우리가 처한 여러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신앙 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 알려 줍니다. 이제부터는 등장인물 각자의 삶에서 신앙이라는 열매가 어떻게 맺어지는지에 초점을 좀 더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더욱 세심하게 분석하고 이를 대하는 그들의 선택을 유심히 살펴보도록 하죠.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창 25:21)
25장 19절과 20절에서 이삭의 족보가 간략하게 제시된 후 이삭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요, 첫 구절부터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 이야기가 시작될 때와 너무나 다른데요, 아브라함 이야기는 12장 1절부터 3절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장차 주실 엄청난 축복들이 나열되며 시작합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한 이름이 되며 복을 받는 것으로도 부족해 아브라함의 존재가 바로 복이라고 선언했죠. 여기에 비하면 이삭의 시작은 초라해 보입니다.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노년에 이르도록 임신하지 못했던 사라를 떠올리게 하면서 완료형에 가까웠던 아브라함의 믿음이 출발점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한 바퀴 돌아서 처음으로 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죠. 그런데 이어지는 문장에서 이삭과 아브라함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데요, 반쯤 포기했다가 후처를 얻어서라도 아들을 보려고 했던 아브라함과 달리 이삭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이삭과 아브라함이 다른 길을 갑니다. 백지상태로 출발한 아브라함과 달리 이삭은 처음부터 상당히 성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점이 달랐죠. 하나님께서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는 점과 그분께 의지해야 고민이 해결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운 상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남긴 믿음의 유산만큼 이삭은 출발점을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창 25:22)
리브가에게서도 사라에게 보이지 않던 성숙한 믿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뱃속의 두 아이가 서로 싸웠을 때 리브가도 이삭처럼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갔습니다. 사라와 처지는 같았어도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훨씬 정확하게 알고 있었죠. 이처럼 이삭과 리브가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본보기로 삼아 믿음의 첫 단추를 수월하게 끼울 수 있었는데요, 그래도 이전 세대의 유산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이삭과 아브라함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었고 리브가와 사라도 마찬가지였죠.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 한 명만을 키웠습니다. 이삭에 앞서 이스마엘이 있었고 사라가 죽은 뒤에 후처가 낳은 여섯 아들이 있었지만, 이스마엘은 이삭이 매우 어릴 때 집을 떠났고 배다른 동생들이 태어난 때도 이삭이 성인이 된 다음이었으니 실질적으로 키운 아이는 이삭뿐이었죠. 반면 리브가는 아들 두 명을 동시에 가졌고 이삭에게 두 아이 양육은 매우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여러 아이가 함께 자랄 때 그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아마 볼 기회도 없었을 겁니다. 리브가는 여러 형제와 함께 자랐기 때문에 이삭보다 익숙했는데요, 이런 차이가 훗날 두 아들이 벌인 장자권 다툼에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 25:23)
하나님 말씀을 직접 듣는 일은 얼마나 놀라운 경험인가요? 리브가는 배 속에 있는 두 아이가 싸우지 않기를 바랐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둘 다 민족의 조상이 되며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된다는 놀라운 예언을 주셨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함께 들었더라도 이삭에게는 이 말씀이 리브가만큼 심각하게 와닿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너무 어렸을 때 이스마엘이 떠나 독자로 자란 만큼 형제간 다툼이 얼마나 심각해질 수 있는지를 몰랐을 테니까요. 리브가는 달랐습니다. 창세기 29장 이후에서 보이는 그녀의 오빠 라반의 성격으로 미뤄볼 때 그녀가 만만치 않은 성격을 가진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쉽지 않은 삶을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큰아이가 가장 많은 유산을 차지하는 일이 당연한 세상에서 형이 동생을 섬긴다는 하나님 말씀은 리브가가 작은 아이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그 아이가 자기 형을 속여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아낸 후 오랜 세월 객지 생활을 하면서 라반에게 온갖 수고를 바쳐야 했던 야곱이고요.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창 25:25~26)
붉고 털이 많은 외모와 발꿈치를 잡은 행동이 에서와 야곱의 이름이 됐습니다. 이렇게 이름 짓는 방식도 이전과는 분명 달라진 모습입니다. 이전 세대 아브라함, 사라, 이스마엘, 이삭의 이름은 모두 하나님께서 지어 주셨습니다. 그 이름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이름을 가진 사람의 신앙고백도 담겨 있었죠. 그런데 에서와 야곱의 이름이 지어지는 과정에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틈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지도 않았죠. 의미를 담았다기보다 지금 막 태어난 아기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그들의 이름으로 붙였습니다. 이삭 이후 세대가 아브라함 세대와 어떻게 다른지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아브라함 세대가 하나님의 빈틈없는 계획과 인도하심으로 만들어진 신앙 표준을 제시했다면, 이삭 이후 세대는 인간의 생각과 기준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아브라함 세대는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끝나지만, 이삭 이후 세대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끝나는 점이 다릅니다.
유수영 목사
제주함께하는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