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계의 상황에서, 소위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King James Bible Onlyism)를 추종하는 부류는 크게 둘로 나뉜다. 90년대 초에, 탁명환과 최삼경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서달석, 그리고 곧바로 등장한 이송오, 이 두 사람과 그 각각의 진영은 일종의 급진파로서 1611년 킹제임스성경을 철저하게 추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참된 구원이 없는 사람들, 즉 진짜 기독교인들이 아니라고 여긴다. 이들은 자신들을 ‘성경을 믿는 자들’(Bible-believers)이란 용어로 지칭함으로써, 자신들 이외의 신자들을 ‘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간단히 정리한 셈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들만이 바울의 안디옥교회 전통,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는 신앙전통과 유산을 계승한다고 믿으며, 자신들 이외의 사람들을 오리겐처럼 철학에 의해 신앙을 변질시킨 알렉산드리아 전통을 계승한다고 믿는다. 오리겐이 변개한 ‘거짓된 성경’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화해 황제주의적 기독교를 창안하는데 이용했고, 이 사탄적 교회가 로마 가톨릭으로 성장했고, 여타의 개신교회들은 사실상 로마 가톨릭의 변종들이라고 믿는다. 킹제임스 유일주의라는 동일한 신조를 고수하지만, 서달석과
결실의 계절인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교회도 복음의 결실을 맺기 위해 분주하다. 복음의 결실은 믿지 않는 이들을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일일 것이다. 특별히 추수감사절이 있는 11월은 많은 교회들이 믿지 않는 이들을 찾고 기도하며 초청잔치로 복음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교회의 사역은 1년 농사와도 같은 것이다. 씨를 뿌리기 위해 땅을 다지고 좋은 씨를 골라 뿌리며 적당한 물과 적당한 햇볕을 받으며 잡초들을 뽑아주면서 성장을 기대한다. 성장하는 동안 태풍의 위협도, 가뭄의 위협을 겪기도 하지만 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면서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열매가 맺어질 때도 위기가 찾아온다. 열매를 노리는 동물들을 쫓는 것도 중요하다. 드디어 결실을 맞이할 때 기쁨은 이 모든 과정의 보람과 함께 만족으로 다가올 것이다. 교회도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이와 같은 과정을 겪는다.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복음 전파의 노력, 전도대상자(VIP)가 세속에 빠져 복음을 거부하는 상황, 복음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권면하며 교회의 문턱을 넘기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 결실이 바로 영혼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마다 각자의 복음 전파 방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하기 직전, 민중들에게 던진 성경책(한문)은 참으로 놀라운 복음의 열매를 낳았다. ‘박춘권’은 자신의 칼을 맞고 죽어가는 서양 사람이 건네주는 책을 처음엔 받지 않았으나, 상황이 끝나고 돌아갈 때 하나를 주워 집으로 가져갔다. 성경을 정독한 그는 후일 예수님을 영접하고 독실한 신자가 되어, 안주교회(평안남도) 영수(장로)가 됐다. 그의 조카인 ‘이영태’도 그와 함께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게 됐고, 훗날 한국어성경 3분의 2를 번역하는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되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또한 11세(12세)였던 ‘최치량’은 작은 아버지와 제너럴셔먼호의 상황을 보러 왔다가, 토마스 선교사가 던진 성경 3권을 주웠는데, 그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두려워 성경을 몰래 숨기고 있다가 한 권을 친분이 있던 영문주사(당시 군 위병소장) ‘박영식’에게 주었다. 박영식은 성경 종이의 질이 너무 좋아 한 장씩 뜯어 자기 집의 벽지로 사용했다. 어찌 보면 세계 최초로 성경으로 도배된 집이 아닐까 여겨진다. 박영식은 벽지의 말씀들을 읽다 감동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 성경책을 전해준 ‘최치량’도 어른이 되어, 나중에 성경으로 도배 된 ‘박영식’의 집을 구입
격언 중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 먹는다’는 말이 있다. 부지런한 사람이 먼저 이득을 보고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격언은 오늘의 교회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격언일 것이다. 최근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서적들이 출간되고 관련 세미나들을 통해 한국교회를 향한 예언자적 목소리들을 듣고 있다. 과거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한국교회가 이제는 작금의 현실과 상황을 직시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을 때이다. 과거에도 이런 예언자적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치부해왔다. 교회가 이에 대해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는 미래보다 현실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한국교회의 미래가 내가 속한 공동체,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 나의 사역에서는 이뤄지지 않는 일이라고 무시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교회가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고초와 고난을 겪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의 교단 교세보고서를 비롯해 주요 교단의 교세통계를 볼 때마다 ‘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교회의 폐쇄, 성도의 감소, 다음세대의 부재 등 총체적
본보가 1500호를 맞이했다. 68년 전 1955년 8월 19일, 타블로이드 4면 신문으로 교단에 첫 선을 보인 침례회보(현 침례신문)는 한국전쟁 이후 교회를 재건하고 한국침례교회와 협력하고 있는 미남침례교 사역들이 담겨져 있다. 그만큼 한국침례교회 정착을 위한 내용들로 가득 찼다. 그동안 신문을 통해 담아낸 여러 기사들은 우리에게 귀한 역사적 사료로 지금껏 남아 있다. 본보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폐간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침례교회의 소식들을 함께 공유하고 전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1977년 복간호를 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내 언론 시장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특히 교계 언론의 경우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때문에 많은 언론들이 새로운 언론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본보의 경우 새로운 언론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교계언론이 영상매체에까지 발을 넓히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아직 그러한 미래를 논하는 것조차 사치인 것이 현실이다. 몇 년 사이 본보 임직원의 노력과 개교회의 관심, 기도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은 것은 사실이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자 2명이서
오늘 우리는 심각한 기후 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세계인 지구 환경을 돌보는 사명에 무관심하거나 소홀했고, 전 세계인과 함께 지구의 평균온도를 상승하도록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기후 위기에 둔감하고 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지구의 기온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봄 이상고온으로 봄꽃 개화 순서와는 달리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한꺼번에 개화했고, 지구촌에는 올여름 슈퍼 엘니뇨가 발생하여 폭염과 홍수, 가뭄 등 기록적인 기상이변이 예상된다. 이러한 기후 위기는 인류 생태계에 재앙이 되어 거주와 생존 불능의 지구를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로 인한 지구 생태계 파괴는 정부와 지자체와 기업이 감당할 대응 과제를 넘어 이제 국민의 과반을 차지하는 종교계가 힘을 보태야 할 과제가 됐다. 특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 환경을 돌보고 회복시킬 사명을 띤 우리 한국교회의 최우선 사명이며 성도의 실천할 과제이다. 세계는 인류 모두의 생존을 위해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 1.5℃를 목표로 하는 탄소배출 최소화를 약속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 4월 11일, 2050 탄소중립
미국에서 스코필드관주성경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가난한 노동자 계층과 이민자 집단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다. 굳이 번역하자면 ‘거룩한 책’이란 이름의 영어성경은 그 성경본문이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이라는, 혹은 그래야 한다는 착각 또한 마치 진실인 것처럼 각인됐다. 킹제임스 영어성경 또한 다른 모든 ‘번역성경’과 마찬가지로 일개 번역성경에 불과하다. 따라서 번역자들이 안고 있는 부족한 지식과 언어의 한계, 착각과 오류가 개입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킹제임스성경’이라고 불리는 것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다른 모든 번역성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하나님께서 직접 세운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영감받아 기록된 원문성경에 버금가는 영적 권위와 효력을 갖는다는 망상이 저 유명한 스코필드관주성경이 만들어낸 치명적인 착각이다. 1909년에 출간된 ‘스코필드성경’의 본문은 1611년 첫 출간 당시의 영어문장일 수 없다. 영국 국교회를 가톨릭으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한 제임스 1세 국왕과 당시 번역위원회가 로마 가톨릭의 ‘벌게이트’(라틴어 성경)를 추종한 흔적이 역력하고, 마리아를 숭배하는 문장과 그림으로 장식하기
일평생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목양일념으로 걸어온 목회자에게 노후는 쉽게 보장되지 않는 일이다. 생명을 다해 강단과 예배당을 지켜온 대다수의 목회자에게 은퇴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고민하고 주저하는 이유는 바로 은퇴 이후의 삶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은퇴 목회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들이 많다. 우리 교단도 은퇴 목회자와 원로목사를 구분해 대우하고 있다. 우선 담임 목회자가 은퇴할 경우, 교단이 정하는 원로목사의 조건에 부합해 은퇴할 경우, 원로목사로 대우하며 교역자복지회와 총회를 통해 매월 생계지원금을 받고 있다. 또한 은퇴후, 그동안 교회가 납부한 협동비의 30%를 적립한 은급금을 환급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교회와 담임목회자가 요청할 시 일시불로 받을 수 있다. 또한, 은퇴 목회자가 은퇴 전, (재)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재단에 가입한 가입자라면 만 71세가 되는 달부터 은퇴연금을 받는 제도가 있다. 은퇴연금은 은혜재단에 가입한 가입자에 한해 지급하는 연금이기 때문에 교단 전체 목회자를 대상으로 주어지는 혜택은 아니다. 교회가 따로 은퇴금을 적립하거나 현물이나 부동산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
제너럴셔먼호는 토마스 선교사를 비롯해 총 24명이 타고 있었는데, 불길을 피해 몇 명이 가까스로 뭍으로 헤엄쳐 올라왔다. 배에 불이 나기 전에 토마스 선교사는 한문 성경을 평양 군민에게 던져 주며 조선어로 “야소(예수)를 믿으세요!”라며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 던진 한문 성경을 12살의 어린 소년 최치량이 3권을 습득해 평양성 관리인 박영식에게 줬다고 한다. 이들은 훗날 평양 복음의 초석이 된 인물들이 된다. 평양감사 박규수는 제너럴셔먼호 승조원들을 생포해 협상의 카드로 쓰려고 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는 처형 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토마스 선교사는 죽음이 목전임에도 불구하고 평양의 관민들에게 성경을 나눠 줬다.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웠을까? 그러나 그에겐 두려움이 없이 주변에 있는 평양 관민들에게 ‘야소(예수)를 믿으세요!’라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조선에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조국의 대적들의 처형을 맡은 것은, 제너럴셔먼호에 붙잡혀 감금된 무관 이현익의 부하 박춘권이었다. 나중에 그는 이현익을 구출하고 제너럴셔먼호 전멸작전에 공을 세워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토마스 선교사를 처형하게 됐는데, 박춘권은 순교 당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온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대규모 침공을 감행하며 양측간의 전쟁이 일어났다. 특히나 이번 전쟁은 하마스의 무차별적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 충격을 주는 가운데 이스라엘 또한 가자지구에 지속적으로 폭격을 가하고 있어 앞으로도 민간인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미국이 항모전단을 전진 배치하고 전투기를 증강하는 등 이번 전쟁에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갈등은 그동안의 역사와 국제정세 등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가나 싶으니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이제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까지 일어나 이 분위기가 확산된다면 지구촌 모두가 공멸의 위기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분쟁과 갈등의 상황 속에서 모든 폭력과 군사적 행위를 즉각 중단해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이번 전쟁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하며 “대학살이자 완전한 재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교총은 하
영어성경 가운데 아직까지 넘사벽인 성경으로 인정받는 것이 KJV이다. 그러나 그 탁월함을 절대적인 것 혹은 불변적으로 독보적인 것으로 간주해도 될 정도의 넘사벽이 아니며, 다른 모든 번역성경을 읽어볼 가치가 없는 것으로 만들었을 정도의 넘사벽이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NIV 성경이나 개역한글 성경을 보면 성경에 무지해진다거나 구원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걱정이 된다면,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라는 전염병에 접촉됐고 감염되기 시작했다고 의심해야 마땅하다. KJV 즉, Version이 아니라 KJB 즉, Bible이라고 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걱정이 들어도 마찬가지다. 말씀보존학회 이송오 쪽에서 생각한 것처럼,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았고 그 결과물인 번역텍스트(KJV 본문)가 고귀한 영감이 서려있는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단으로 정죄받은 무리에 속하기 시작한 셈이다. 독립침례교회 정동수 쪽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개역한글 혹은 개역개정 성경이 로마 가톨릭의 라틴어성경(벌게이트)의 뿌리가 되는, 소위 ‘오염’된 사본의 영향을 받았고, 킹제임스 성경은 순수한 사본을 ‘단어 대 단어’로 정확하게 번역했기 때문에, 계시된 말씀을
지난 10월 1일부로 113차 회기가 시작됐다. 79대 총회 의장단으로 선임된 이종성 총회장과 홍석훈 1부총회장은 교단을 대표하며 앞으로 1년 동안 총회의 사업을 진행하고 총회 주요 기관과 협력해 나간다. 매회기 총회는 회기를 시작할 때마다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증경총회장이 의장단 이취임감사예배에서 말씀을 맡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를 과감히 깨고 오지 산골 목회자가 말씀을 선포하고 의장단 취임을 축하한 적이 있다. 또한 세족식을 진행하며 서로를 섬기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반도 최초로 개신교가 들어온 인천항에서 교단을 위해 기도로 시작한 회기도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이번 총회 의장단 취임예배는 우리 교단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선지동산인 한국침례신학교(총장 피영민)에서 이뤄졌다. 113차 회기 첫 시작을 신학교에서 한 이유는 그만큼 교단 교육의 중요성을 총회가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특히 112차 정기총회와 마찬가지로 113차 정기총회에서도 신학교에 대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학교 현안에 대해 다시 살펴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이종성 총회장이 주요 공약으로 발표한 신학교 이사 추천제도와 연금제도 확대는 과거의
조선행이 좌절됐던 토마스 선교사의 눈앞에 나타난 ‘제너럴셔먼호’는 기회였다. 제너럴셔먼호는 민간상선이었다. 19세기는 서구 열강에 의한 아시아의 개항 및 식민지화가 극에 달한 때였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는 민․관을 가리지 않고 눈에 불을 켜고 아시아를 개방시켜 이권을 선점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아편전쟁 등의 사건으로 중국과 일본도 개항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민간상선인 제너럴셔먼호 역시 비슷한 이유로 조선을 개항의 대상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제너럴셔먼호의 미국인 선주, ‘프레스턴’은 조선을 미개국(未開國)으로 여기며, 조선 개항을 선점하여 한몫 잡을 생각이었다. 그는 배에 보급품을 채우고, 선원을 모집하기 위해 중국에 기항했다. 그러나 기항의 주된 목적은 무엇보다 용선계약이었다. 용선계약은 선박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자(무역회사 등)가 선박회사로부터 선박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빌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가리킨다. 선주 프레스턴은 영국 회사인 메도스 상사와 용선 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교역할 상품을 싣고, 그 다음으로 조선어 통역관이 필요했는데, 메도스 상사의 알선으로 인해 영국인 토마스 선교사가 추천을 받은 것이었다. 결국 토마스 선교사는 미
113차 평창 총회는 새로운 지도자인 이종성 목사(상록수)를 선출하며 새로운 미래로의 도약을 선포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란 주제로 열린 이번 평창 총회는 여러 논란들로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중요한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안에 복음으로 하나되는 귀한 결실의 시간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선포하는 자리였다. 하나님 안에 침례교회는 하나로 뭉쳐있으며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침례교회를 나라와 민족을 위해 존재한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으로 땅끝까지 전하는 일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해 대의원들이 모여 결의하고 안건을 처리하는 것이다. 교회를 대표하는 대의원으로 총회의 뜻을 전달하고 이를 위해 지혜를 모아 결의해야 한다. 특정한 계층이나 계파, 이익집단이나 사익이 우선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의원들의 의견이나 기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며 오직 특정 대의원의 뜻과 생각만을 주장하는 것은 협력과 협동의 총회상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아집이자 고집일 것이다. 이번 평창 총회는 이와 같은 갈등과 논쟁에서 화합과 협력, 협동의 정신을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하고 싶다. 또한 차기 총회장을 놓고 치열하게 다퉜지만 대의원들의 선택과 결과
1997년 제86차 교단 정기총회가 한국침례신학대학교에서 있었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신학교에 입학한 첫 해였고 교단 총회가 진행되는 상황이 궁금해 총회 회무를 참관했다. 회무 참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안건 중에 하나가 총회 차원에서 사회복지법인 설립의 건이 의결됐다는 것이다. 신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은 침례교가 미래를 준비하는 좋은 교단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교단 내에서 교회의 봉사와 사회복지사업을 총괄하는 부서는 부재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와 사회봉사의 약 70% 이상은 교단이나 교회가 설립한 재단, 기독교 단체 혹은 기독교와 연관된 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중 교단 차원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이 구세군과 감리교단, 성공회 등이라고 할 것이다. 구세군과 감리교단은 이미 오래 전부터 복지법인을 설립해 지역사회에 필요한 복지 욕구를 해결하고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사업과 봉사활동, 사회적 책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물론 예장 통합교단과 합동교단도 많은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구세군의 경우 유지재단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자선냄비 모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