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 하나님의 포도나무 농사법

  • 등록 2025.10.29 12: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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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성경을 보는 창(9)

성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포도나무는 그들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다. 가나안 땅의 7가지 주요 생산품 가운데 하나가 포도이기도 했으니 말이다(신 8:8).


성경을 읽다 보면 포도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곳저곳에서 접하게 된다. 성경이 시작되는 창세기에서 포도주에 취한 노아 이야기가 등장하는가 하면(창 9:18~27), 계시록에는 포도주 틀로 비유된 심판 이야기가 등장한다(계 19:15).


가나안 답사 이야기(정탐꾼 사건)에서는 가나안 땅의 포도송이가 얼마나 컸던지 두 사람이 장대에 걸어 어깨에 메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은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포도주 의식으로 그 사역을 마무리하셨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포도원을 비유로 가르치시더니 급기야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하셨다(요 15:1). 그만큼 성경시대 사람들에게 포도나무는 삶의 일부처럼 친밀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포도나무는 그들에게 어떠한 의미와 상징으로 이해했을까? 성경의 표현을 빌면 포도는 이들에게 기쁨의 원천이요 축복의 상징이었다.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삿 9:13)
야곱은 유다가 받게 될 축복에 대하여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창 49:12)


이처럼 포도나무가 그 땅의 백성들에게 기쁨이요 축복으로 인식된 것은 이 지역의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의 포도 수확은 8~9월에 이루어지는데 이때가 기온이 가장 높은 시기이다. 5월부터 시작된 건기, 그리고 계속 되어온 뜨거운 날씨로 사람들이 가장 지쳐 가는 시기가 또한 8~9월이다. 거기에다 8~9월쯤이 되면 그동안 모아놓았던 생명과 같은 물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샘들은 말라버린다.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쳐가고, 물은 더욱더 간절한 시기에 포도밭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새벽마다 산천에 내리는 이슬을 듬뿍 먹고 살을 찌운 포도송이는 한낮의 뜨거운 햇볕으로 탐스럽게 영글어 수확을 기다리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니 이 시기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도밭을 보면 그저 놀랍고 신기할 뿐이다. 감격스러워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절로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에게 포도를 수확하고 포도주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최상의 축복이며 기쁨이었던 것이다. 시편 8, 81, 84편이 이때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노래들이다. 그러니 8~9월 이스라엘 골짜기와 산지는 온통 포도주를 밟으며 즐겁게 노래하는 감사 찬양으로 떠들썩했고 포도주 익는 냄새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축복과 기쁨을 상징하는 의미를 넘어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로 백성들 삶속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성경은 솔로몬의 치세를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다고 평가하며(왕상 4:25), 이사야 선지자는 도래할 메시아 시대의 평화를 바라보며 마음속에 포도나무 밭을 그렸던 것이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히브리어, 마즈메라/maz-mey-raw, 포도나무 가지를 자르는 전정가위/prune knife를 뜻함)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사 2:4)


포도나무와 평화를 연결 지은 이유는 고대 사람들의 전쟁 방법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고대의 전쟁은 단순히 성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상대국에 가장 큰 치명적 손실을 입히는 방법은 금이나 무거운 조공을 부과하는 것보다 우물을 막고 유실수를 자르는 징벌이었다. 우물을 메우고, 올리브 밭을 파괴하며, 종려나무를 자르고, 무화과나무를 뽑아버리며, 포도밭을 황폐시키는 것은 징벌 가운데 가장 무서운 징벌이었다. 포도나무를 심고 첫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5년이 필요했으며 상품으로 팔 수 있는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10년을 기다려야 했으니 평균 수명이 40년에 불과했던 성경시대 사람들에게 이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있는 포도나무를 비유로 말씀하신다(요 15:1). 아버지는 포도밭 농부시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란다. 이스라엘 농부가 포도밭에 쏟는 정성과 노력을 생각하면 포도밭 농부로 비유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떻게 일하실지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열매 없는 가지를 일고의 재고도 없이 잘라버리는 아버지의 포도나무 농사법(요 5:2)이 나에게 언제나 부담으로 다가왔다.


예루살렘에서 수학할 때의 일이다. 베들레헴에서 헤브론으로 지나는 길 동편으로 나지막한 골짜기와 산기슭에 유난히 포도밭이 많았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포도밭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포도나무가 돌을 베고 밭에 누워 모습이었다. 마치 죽어버린 포도나무 줄기가 밭에 덩그러니 넘어져 있는 듯이 말이다. 알고 보니 이것이 팔레스타인 농부의 포도나무 농사법이란다. 그리고 이 농사법이 성경시대의 그것과 동일하단다. 포도나무가 하늘을 향해 높이 두 손을 들고 서있는 오늘날 농사법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밭에 덩그러니 누워있던 포도나무 몸통에서 봄이 되면 싹이 나와 줄기가 된다. 그리고 그 줄기가 길게 뻗어나가 흙에 닿으면 그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데, 결국은 연약한 뿌리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기에 농부는 커다란 돌로 받침대를 삼아 몸통과 가지가 땅에 땋지 않도록 들어 올려준다. 이렇게 보면 팔레스타인 농부의 포도나무 농사법과 요한복음 15:2절 아버지의 농사법이 다른 셈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우리의 오해였다. 요한복음 15장 2절에 ‘아이로(airo)’라는 헬라어가 사용 되었는데 이 단어는 ‘제하여 버리다’ 또는 ‘들어 올리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단어다. 성경시대의 포도나무 재배법(팔레스타인의 생활과 풍습)에 무관심한 우리들이 ‘제하여 버린다’는 의미를 선택해서 성경을 번역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농사법과 팔레스타인의 농사법이 다른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결국 하나님의 농사법은 팔레스타인 농사법과 다르지 않았다. 스스로 땅에 뿌리를 내린 포도나무 가지는 팔레스타인의 뜨겁고 건조한 여름을 결코 견디어 내지 못하고 말라버린다. 그래서 잘라버리기 전에 돌을 받쳐 올려주는 하나님의 마음(기회, 보살핌, 사랑)을 읽어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는 방법을 무척 강조하신다. 열매를 맺는 에너지의 원천, 구체적인 방법, 그리고 행위까지도 말이다.


헤브론을 지나며 눈에 확 띄었던 그 포도밭을 통해서 나는 성경시대 사람들의 농사법을 보았고 하나님의 포도나무 농사법을 배웠으며 직접 포도나무가 되어 열매 맺기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김상목 목사
성경현장연구소 소장
신광교회 협동목사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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