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성도를 보면서

  • 등록 2013.05.23 13: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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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간에 성도님 한 분이 대전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서 성도 몇 분과 함께 심방을 다녀왔다. 심방을 다녀 온 후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서가 아니고 함께 다녀오신 성도님 한 분 때문이었다. 그 분은 왕복 두 시간 반 동안 말씀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원래 평소에도 말씀이 없으셨던 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가 나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 성도님은 치매가 진행 중인 분이셨던 것이다. 육 개월 전에도 서울을 다녀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사이 치매가 더 진행된 것 같았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셔서 찬송가도 열심히 부르곤 해서 그 정도까지 진행되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는데 말씀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어쩌다 한 번씩 미소 짓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 근래 그 분의 말씀을 들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배 끝나고 나가면서 나에게나 다른 성도들에게 건네던 인사말을 그냥 웃음으로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 없어진다는 것은 치매의 대표적 증상 중의 하나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분은 우리 교회에서 그야말로 기둥 같은일꾼이었다. 그런데 삼 년여 전부터 이상을 느껴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보니 알츠하이머병이 시작됐음을 알게 됐다. 그로부터 제일 먼저 성경 가르치는 일을 내려놓게 되었고 얼마 지나 대표기도도 못하겠다고 해서 빠지게 됐다. 이제는 예배 참석하는 일과 단순하게 몸으로 하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감당하지 못하게 됐다.

 

내가 처음 부임할 때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본 그 분은 참으로 신실하고 겸손하며 충성스럽게 주를 섬기는 분이었다. 농촌의 적은 교인에다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교회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도 한 번도 불평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말없이 감당해내신 분이었다. 함께 일하던 많은 교회의 일꾼들이 도시로 떠나갔지만 꿋꿋하게 교회를 지켜온 분이기도 했다.

 

그 분이 비록 치매에 걸렸을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주님을 원망하거나, 절망하거나 슬퍼하지는 않지만 치매가 점점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이지만 농촌은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우리 마을은 상주인구가 200명 정도인데 미성년이 25명 정도이고 성인인구 중에서 오십 대 미만은 불과 열 명을 겨우 넘는 정도다. 그러니 육십 대는 노인 축에도 들지 못한다.

 

우리 교회에는 치매가 악화되어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분이 네 분이셨는데 최근 두 분이 소천하셨고 남은 두 분도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다. 진행 중이지만 아직 심하지 않아 집에 계신 분이 두 분이다. 그러다 보니 나이 많은 성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은 중풍과 치매다. 그런 병들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 노인들이 사고나 폐렴 같은 급성 질환으로 돌아가시게 되면 공공연히 그 양반 대복(大福) 터졌네!” 하며 부러워하곤 한다.

 

또한 주변의 중풍 환자나 치매 환자들이 삶의 마지막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보내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자신들도 그렇게 마지막을 보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언제쯤 요양원에 가거나 보내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스러워 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목사로서의 성도들에 대한 목회적 돌봄이 영적인 부분에만 한정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건강관리 상식도 이야기 해주고, 만약의 경우 요양원에 가야 한다면 그것을 결정하는 나름대로의 기준에 대한 의견도 제시하곤 한다.

 

필자의 아버지는 75세에 뇌출혈로 쓰러지셨는데 그 후유증으로 치매가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때 병원에서는 치료도 수술도 할 수 없고 가망 없다고 하여 집으로 모셔왔었는데 어머니께서 한방병원으로 가서 치료나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한방병원으로 갔는데 깨어나신 것이었다. 그리고 6년 동안의 치매 뒷바라지가 시작됐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요양보호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뿐더러 가족이 집에서 돌보지 않는 것은 마치 환자를 버리는 것처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었다. 떨어져 사는 자식들은 가끔씩 찾아뵐 수밖에 없었었고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오롯이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런데 그 병간호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었는지 아버지가 소천 받으신 후 묘를 쓸 때 어머니는 합장을 거부하고 쌍봉을 쓰도록 요구하셨다.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한 자식들은 죄스러운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신 기능이 점점 소멸되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함을 스스로 지킬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치매는 참으로 잔인하고 참혹한 병이다. 그나마 알츠하이머 병은 치료제가 개발되어 멀지 않은 후에 상용화될 수 있다니 다행이지만 말이다. 성도들이 치매에 걸리는 것을 보면서 그들을 위해 목사로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고민스러운 밤이다.

 

고성우 목사 / 반조원교회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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