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는 믿음 (1)

  • 등록 2025.06.18 15: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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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영 목사와 함께하는 창세기 여행 31

(창세기 13장 1절 ~14장 24절)

 


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람 일행은 이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13장 2절에 가축과 은, 금이 풍부했다고 쓰여 있는데, 두말할 필요 없이 기존 재산에 애굽 땅에서 얻어 온 재물이 더해진 결과입니다. 과거에 제단을 쌓았던 벧엘 동쪽 지역으로 돌아온 일행이 다시 한번 예배를 드렸는데요, 애굽에서 한 단계 성장한 신앙을 확인하는 자리였죠.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으니, 조카 롯 사이에서 벌어진 재산 분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창 13:7)

 

데라가 죽은 후 길을 떠난 아브람이 밟은 여정은 한편으로 재산이 늘어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최대 위기였던 애굽에서도 재산이 불어났을 정도였죠. 그런데 늘어난 재산이 모두 아브람 소유는 아니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롯의 재산도 늘어났고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정리가 필요할 정도로 둘의 재산이 많아졌죠.


재산이 적을 때는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나누며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겠으나 살림이 넉넉해지기 시작하면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애굽에 가기 전에는 살림이 적었기에 가나안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비어 있는 땅에 머물며 장막을 쳐도 티가 안 났습니다. 땅은 넓고 부족은 널리 흩어져 있었으니 빈 땅에 자리 잡으면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았고 설령 원주민과 다툼이 생긴다고 해도 비어 있는 다른 땅으로 이주하면 그만이었죠. 그런데 세력이 자꾸만 커지다 보니 재산과 가축 떼는 물론 일하는 사람까지 많아지게 됐고, 한 번 이동하려면 큰 행렬이 이어지게 됐을 테니 자연히 인근 부족의 경계를 받았을 겁니다. 너무나 커진 집안 규모가 가장 큰 원인이었고, 이를 해결하려면 아브람과 롯이 갈라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녀를 분가시키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후사가 없던 두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죠. 아예 따로 다니게 되면 둘 사이 갈등 해결은 물론 주변 지역과의 마찰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갈라서느냐였죠.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아브람은 롯에게 선택권을 양보했습니다.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살았던 이들에게 어떤 땅을 택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풀이 많이 나는 땅을 찾지 못하면 소중한 가축을 굶겨야 하니 가축이 늘어날수록 좋은 땅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아브람은 롯이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배려했습니다. 애굽 경험이 중요한 계기가 됐을 겁니다. 모든 것을 잃을 뻔한 위기에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풍족해졌던 체험은 롯과 재산을 나눌 때도 여유를 가지게 해줬습니다. 어차피 따로 살아야 한다면 먼저 호의를 베풀고, 손해가 생기더라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었죠. 아브람의 믿음은 확실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 13:10)

 

아브람이 재산을 늘릴 기회를 찾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봤다면 롯은 눈앞에 놓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롯의 눈에 띈 최고 선택지는 요단 들판이었습니다. 물이 넉넉했다고 하니 풀이 많이 자랐을 테고 가축 기르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을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창세기가 롯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에덴동산과 애굽에 비유했다는 점입니다. 롯에게 있어서 에덴 동산은 전설 속 낙원이고 애굽은 바로 얼마 전에 경험한 현실의 낙원이었으니 요단 땅을 대하는 그의 자세가 어떠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죠. 롯은 애굽에서 풍족함을 향한 동경밖에 배우지 못했나 봅니다. 기근을 만날 때마다 롯이 겪었을 고달픔을 생각하면 애굽의 풍요로움을 그리워하는 일이 이해됩니다만 고통에서 성장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결과는 하나뿐입니다. 배울 수 있을 때까지 고통을 반복하게 되죠. 롯이 에덴동산과 애굽을 떠올릴 만큼 좋아 보였던 땅의 실체는 죄로 물든 땅 소돔과 고모라였고, 훗날 롯을 파멸 직전까지 몰아가게 됩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롯이 떠난 뒤 아브람은 혼자 남게 됐습니다. 12장 1절에서 고향과 친척, 가족을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한 아브람이었지만 지난 삶과 작별할 준비가 완전히 되지 않았음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자기 소유를 먼저 의지했고 가장 가까운 친척 롯도 포기할 수 없었으며 목적지도 아버지 생각을 그대로 이어받아 가나안으로 잡았죠. 그랬던 아브람이 지난 모습을 조금씩 떨쳐내고 있습니다. 애굽을 거치며 재산에 대한 집착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고 롯과 아름답게 이별했을 뿐 아니라 더는 가나안이라는 특정 지역을 고집하지 않게 됐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오로지 하나님만 있었죠. 하나님께서 그의 소유가 될 땅과 피를 이어받을 후손을 약속해 주셨고 이것이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 가족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던 이유였음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진짜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것을 놓아야 했으니까요.

유수영 목사
제주함께하는교회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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