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부터 7월 12일까지(12박 13일)의 기간 동안에 침신대 학생들과 침례교목회자들과 성도들 11명이 16세기 종교개혁과 관련된 현장들을 답사하며 당시 개혁가들의 숨결과 개혁정신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무사히 돌아왔다.
우리 학교로서는 처음으로 기획한 종교개혁 답사여행이었는데, 유럽 4개국(스위스, 체코, 독일, 네델란드) 약 20개의 도시들을 방문하여 견학하는 여정이었다, 특히 이번 여정은 루터 쯔빙글리 칼빈 등 주류종교개혁가들의 현장뿐만 아니라,
16세기 당시 로마 카톨릭교회와 관료후원적 개혁가들(Magisterial Reformers)들로부터도 이단으로 정죄받아 핍박을 당했던 아나뱁티스트들의 유적들을 답사하고 동시에 초창기 침례교회의 태동과 관련된 유적들을 견학하는데 중점을 뒀다.
스위스 취리히 그로스뮌스터 성당 근처 최초의 신자의 뱁티즘(believer’s baptism)이 이루어졌던 펠릭스 만쯔의 집이 있던 거리(Neustadtgasse), 초창기 스위스형제단(Swiss Brethren)의 지도자였으며 최초의 신자의 뱁티즘을 베풀었던 콘라드 그레벨이 살았던 집(Neumarktgasse), 펠릭스 만쯔가 수장당하여 순교했던 리마트 강변의 기념판(memorial plaque),
핍박을 피해 도망다니며 숨어서 예배를 드리며 성도들의 교제를 나누었던 베레츠빌의 “아나뱁티스트 동굴”(Anabaptist Cave, Baeretswil), 아나뱁티스트들을 체포하여 손발을 족쇄에 채워 감금했던 베른 근교 에멘탈 골짜기의 트락셀발트성(Trachselwaldschloss), 그리고 발타자르 휩마이어가 로마 카톨릭 신부로서 목회하다가 아나뱁티스트 지도자로 전향을 하게 된 독일남부 라인강변의 도시 발츠후트(Waldshut), 마이클 자틀러에 의해
작성된 최초의 집단적 아나뱁티스트 신앙고백이 채택되었던 쉴라이타임(Schleitheim), 네델란드의 아나뱁티스트 운동을 주도하며 아나뱁티스트 신앙과 신학을 집대성했던 메노 시몬즈(Menno Simons)의 출생지이자 그의 기념탑이 세워져 있는 비트마르숨(Witmarsum) 그리고 그가 로마 카톨릭교회의 교구신부로서 사역했던 핑윰(Pingjum),
또한 근원적 개혁가들 가운데 극단적인 종말론 사상으로 흘러 구약적인 방법인 무력과 폭력을 동원하여 지상에 새 예루살렘을 건설하고자 시도했던 뮌스터 폭동 사건의 현장(주모자 세 사람의 시신들을 담은 철제상자들을 종탑 위에 걸어놓은 성 람베르티 성당) 등을 견학하며 역사를 현실로 느끼는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자유대학교(VU, Vrije University)를 방문하여, 네델란드 침례신학원 학장님(Dr. Teun van der Leer)으로부터 영국 피난민들이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게 된 배경과 1609년 최초의 침례교회가 그 곳에서 태동하게 된 상황, 그리고 오늘날 네델란드 침례교총회의 선교활동과 신학교육의 현황 등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또한 오래 된 “숨겨진”(Hidden)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영국인 교사들 명단에 존 스마이드와 토마스 헬위즈의 이름이 씌어 있는 게시판을 보며, 침례교회의 태동이 17세기초 네델란드의 메노나이트들과의 교제 속에서 그들로부터 신앙적인 영향을 받으며 시작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암스테르담 시내 렘브란트 광장(Rembradtsplein) 근처에 있는 빵집거리(Bakkersstraat, Baker’s Street)에는 지금은 아무런 형체가 없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영국땅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피난해 온 존 스마이드와 그의 일행들을 배려하여 그들이 기거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처소를 제공해 주었던 빵공장 주인 얜 문터(Jan Munter)의 흔적을 거리이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그 거리 근처에 있었던 빵공장에서, 교회는 어디까지나 예수 믿는 신자들이어야 하며 그래서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신자의 뱁티즘(그 당시에는 물을 머리 위에 붓는 관수례 affusion)을 베풀었던 최초의 침례교회가 태동을 하게 되었으리라.
종교개혁운동이 단순히 16세기에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후대에도 신약성서적인 참 교회의 모습을 회복(restoration)하려는 침례교인들에 의해 보다 성숙되고 보다 신약성서적인 모습으로 발전하였음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6월 30일밤 인천공항을 떠나 이튿날 오후 스위스 제네바공항에 도착하여 예약해 두었던 2대의 미니밴을 렌트하는 것으로 여정이 시작되었다. 스위스 제네바-베른-트락셀발트-루체른-취리히-베레츠빌, 발츠후트-쉴라이타임-콘스탄츠, 체코 프라하,
독일 라이프찌히-비텐베르크-아이스레벤-아이제나흐-마부르크-뮌스터, 네델란드 비트마르숨-핑윰-짠제 스칸스-암스테르담 등을 답사하며, 교실에서 공부했던 종교개혁의 역사지식들이 실제 현장들(박물관들과 개혁가들의 출생지와 사망지 그리고 주요 개혁활동의 근거가 되었던 교회당들)을 경험함으로써 피부에 와닿는 생생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7월 7일 주일에는 우리 학교 신학대학원 동문인 권순태 목사가 시무하는 라이프찌히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답사팀이 특송순서를 맡아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던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참가자들 모두 육신적으로는 피곤하기도 했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힘들기도 했으며 특히 손수 운전대를 잡았던 형제들의 노고가 컸지만, 유럽의 중심부를 누비며(속도제한이 없는 구역의 독일 Autobahn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8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기도 했다) 일생 동안 다시는 누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당시의 부패한 교회행습과 비성서적인 전통에 도전했던 개혁가들의 용기와 성경의 진리에 대한 그들의 확신이 16세기 당시의 유럽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는데,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회들이 겪고 있는 영적 양적인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것도 그들 개혁가들의 정신을 본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된 제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특히 침례교인들과 자유교회(Free Church)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아나뱁티스트들의 유적들을 답사하면서, 참 교회와 진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었던 파격적인 헌신(radical commitment)과 순교자 정신(martyrmindedness)을 배울 수 있었다.
김승진 교수
침신대 교회사(역사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