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믿음의 반지를 건네는 것

  • 등록 2012.12.27 10: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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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브레시와 스키너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그들은 함께 공도 차고 함께 수업도 빼먹고 데이트도 함께할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였다. 그래서 한 사람이 군대에 입대하자 나머지 하나도 따라 지원했을 만큼 그들은 절친했다.


그러나 입대 후 그들은 다른 곳으로 배치됐고, 그러다가 1942년 바탄이 일본에게 넘어갔을 때 스키너는 포로로 잡혀갔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아서 브레시도 포로가 됐다.  수용소에서 소문을 통해 아서는 스키너가 근처의 수용소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천신만고 끝에 스키너와 5분 동안 면회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때 스키너는 ‘제로병동’이라 불리는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들이 수용된 감옥에 있었다. 아서가 스키너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생명의 가망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몸무게는 40킬로그램도 채 안 됐고, 퀭한 눈과 쭈글쭈글해진 피부 때문에 70살도 넘은 노인처럼 보였다.

 

그는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는 상태에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보자 아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그렇게 5분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서는 자기가 목에 감고 있었던 손수건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그의 손수건 안에는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반지가 들어 있었다.

 

그는 벌 받을 것을 감수하고 그 반지를 숨겨 가지고 왔던 것이다. 수용소 안은 병이 난무하지만 치료약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이 반지가 자신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키너를 보는 순간 더 이상 자기가 가지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친구와 작별인사를 고하면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뼈만 앙상한 친구의 손에 그 반지를 쥐어 줬다. 친구가 다녀 간 다음 날 스키너는 사상 최대의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감시병 중 제일 친한 사람에게 다가가 그 반지를 내민 것이다. 사실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의 목숨은 끝장이 날 것이다. 하지만 망설일 수는 없었다. 이윽고 며칠 뒤에 효과가 나타났다. 그 감시병이 스키너 옆을 지나가면서 무언가를 떨어뜨린 것이다.


그것은 슐파닐아미드(Sulfanilamide)라는 화농성 질환의 특효약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괴혈병에 좋은 약을 들고 왔고 그 다음에는 새 바지 한 벌과 소고기 통조림 몇 개를 가져왔다. 그렇게 3주가 지나자 스키너는 병세가 회복되었고 마침내 일반병동으로 이송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는 제로병동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 됐다.  이 모든 것이 그 반지 하나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믿음의 반지 말이다. 건강한 사람에게 반지를 선물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지만 죽어가는 친구에게 반지를 선물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너를 믿어.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마. 나는 너를 믿어.” 이것이 바로 믿음의 반지다.


이 믿음의 반지는 그때뿐 아니라 오늘에도 효력이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오늘도 이 믿음의 반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지. 서서히 식어가는 심장을 의식하면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 사업은 점점 기울어 가는데 막상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사업가들, 대학에 진학을 해야 하는데 점수가 모자란 학생들, 실패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청소년 등. 어쩌면 이 시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이 믿음의 반지가 절실히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랑한다면 서로를 믿어줘야 한다. 그것은 상대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믿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고 기다리셨듯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이 믿음을 가지고 기다린다면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며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저 유명한 작가 나다니엘 호손에게도 절망스러운 시간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


그런데 어깨를 늘어뜨리며 돌아온 그를 아내는 도리어 기쁜 목소리로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당신은 책을 쓸 수가 있게 됐군요.” 이렇게 말하면서 아내가 건넨 것은 놀랍게도 돈 봉투였다. 그동안 생활비를 절약해서 저축해 놓은 아내의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맑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전 언제나 당신이 천재 작가라고 믿고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최고의 걸작품을 쓸 사람아리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녀는 남편을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믿음대로 남편은 쓰고 또 쓰기를 반복하여 마침내 그는 최고의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믿음이 다나니엘 호손을 탄생시켰듯이 우리 목회 현장에서도 결국 이 믿음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절망한 사람들을 향해서, 움츠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나는 당신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 그들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목회가 아닐까?


하나님께서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그를 포기할 수 없고, 그 자신도 자신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네 목회자는 단상 위에서와 단상 아래서 이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청중을 향해서 난 당신을 믿는다고, 그리고 이 믿음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무언중에 설파하는 것이다.
이 믿음의 묘약은 언제 약효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약효가 나타난다는 사실 뿐이다. 그 사실일 믿고 오늘도 믿음의 묘약을 처방하는 것이다.
조범준 목사 / 영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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