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 우리가 )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막9:5)
2011년 1월 1일 토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매월 시작하는 1일은 기도원에 올라가서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 다음날 세상으로 다시 내려오곤 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바로 주일 전날이며 날씨도 그 어느 때 보다 많이 추웠을 뿐 아니라 더욱 내 마음을 흔든 것은 그 전날에 눈이 많이 와서 차를 몰고 산으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 컸기에 오랜 망설임 끝에 결론 내리기를, 차를 산 중턱에 세우고 걸어가는 일이 있어도 가자는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기도원에서 낮에 눈을 다 치워 놓아서 올라가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잠을 자고 그날도 새벽 1시 5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떠서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고 찐빵모자와 두툼한 장갑을 끼고 온몸을 덮을 담요 1장을 들고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하나님께서 저의 정성을 보셨는지 다른 때와는 달리 한없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콧물이 제 두 뺨을 타고 마구 흘러 내렸고 은혜를 받을수록 머리는 차디찬 성전 바닥으로 향하면서 끝내는 저의 이마가 딱딱한 바닥에 맞닿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나의 입에서 주님을 향해 이와 같은 고백이 흘러 나왔습니다.
“주님! 지금 이 시간에 저를 이곳에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여러분! 새벽 2시에 그것도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 추위 속에서 난로 하나 없이 잠 안자고 산속에 홀로 기도하고 있는 그 장소가 어찌 따뜻한 집에서 그 시간에 이불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 보다 감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의 크신 영광으로 제 영혼이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9장 5절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서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초막 셋을 짓고 그곳에서 살자고 예수님께 건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은 야생짐승들이나 사는 장소지 어찌 사람들이 거주하며 사는 장소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산다면 그 이상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 환경을 초월하며 사는 삶이 복음이며, 이 능력이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크고 화려한 집에서 살지 않고 초라한 집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살아도, 좋은 환경 속에서 아름다움을 누리지 않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의 삶일지라도, 심지어는 건강을 잃어버리고 몸에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는 세상을 초월하는 능력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만의 누릴 수 있는 영적 삶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이요 문제는 세상 것을 더 많이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더욱 깊이 젖어서 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요 고민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번은 제 아내에게 이런 권유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막둥이 딸 시집보내고 나면 전도사들에게 이 사택 물려주고 우리 둘이 10평 원룸으로 이사 가서 함께 삽시다.”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산다면 집의 크기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도리어 가까이 붙어살면 더 행복할 것 같아 한 얘기입니다. 저희 부부는 사택이 교회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로 요를 깔고 성전 강대상 밑에서 기도하며 잠을 잘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성전 바닥에 누워서 천정을 보며 제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보! 천안에서 이렇게 큰 방에서 자는 사람은 아마 우리 부부 외에는 없을 거요. 아니, 대한민국에서도 없을 것 같은데...”하며 잠을 이룬 적이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성전이 좋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늘 경험하며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 앞에는 아담한 동네 놀이터가 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교회 문을 열 때면 가끔 어느 남녀가 밤새도록 잠 안자고 밤을 꼬박 새며 붙어 있는 모습을 간혹 보게 됩니다. 몸이 많이 피곤한 가운데서도, 극성스런 모기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시간 가는지 모르고 밤새도록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때 제 마음 한 구석에서 그들을 보며 독백으로 얘기하는 말이 있습니다. “대개도 사랑하고 있네….”
사랑은 환경을 초월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찬송가 438장처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더 깊이 나아가면 세상 것은 점점 더 작아지게 됨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 진정한 삶의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저에게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경구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서슴없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이라고 말할 것 입니다. 그 말씀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하셨느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가 하나님의 첫 사랑을 잃어버려서 하나님께 책망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첫 사랑을 잃어 버려서도 안 되겠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더욱 친밀한 사랑으로 깊어져 가도록 우리 모두 힘써 노력해봅시다.
/ 정길조 목사 천안참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