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담긴 신학 산책

  • 등록 2016.01.21 12: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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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부활현현의 체험과 부활신학(17)

사복음서 중 요한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현현 사건을 세 번 전달한다. 요한은 세 번째 부활현현의 묘사에서 부활의 주님과 베드로 사이의 개인적인 대화에 집중한다.

이 대화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세 번의 질문에 베드로의 세 번의 대답과 주님의 양을 먹이라는 세 번의 말씀으로 진행되었다. 이 대화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의 앞으로의 삶을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21:18). 고별강화에 따르면, 베드로가 그의 희생적 충성을 자부했을 때, 예수님은 이중 아멘 말씀을 통하여 그의 주장을 반박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13:38). 그런데 이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고백했음에도, 예수님은 다시 이중 아멘 말씀으로 그가 예수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그의 생명까지 잃게 될 것을 예고하신다.


베드로의 죽음에 관한 예고는 그가 처한 상황과 그의 행위의 변화를 설명하는 독특한 비유로 묘사된다. 목자로서 예수님의 양들을 돌보는 삶은, 예수께서 그의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놓은 것과 같이, 그의 생명을 희생하는 삶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목자로서의 베드로의 삶의 과정과 결말을 예고한다. “젊었을 때는 베드로의 지나온 과정을 가리킨다. 띠를 띠고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는 것은 목자로서 그가 자기의 의지를 따라 감당한 그의 사역의 과정을 가리킨다. “띠를 띠다,” ‘원하다’, 그리고 다니다는 동사들이 모두 미완료 시제로서 베드로의 과거 사역의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베드로가 나이가 들었을 때의 상황은 정반대가 될 것이다. “네 팔을 벌린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늙은 사람의 무력함을 가리킨다. 그런데 교부들은 이사야 65:2에 기초하여 이 표현을 십자가 처형의 그림자로 간주했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띠를 띄우고 그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다는 말은 그의 운명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결정될 것을 암시한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 단순히 로마인들인지 혹은 그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다른 사람의 의지에 자기 자신을 복종시켜야 한다는 대조적 국면이며 그것은 폭력적 죽음이 그에게 다가옴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젊었을 때의 자유와 늙었을 때의 연약함에 관한 잠언을 활용하여 베드로의 죽음을 예고한다. “네 팔을 벌린다는 표현이 십자가 처형을 암시한다는 교부들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과 같이 자유를 박탈당하고 끌려가며 십자가에 처형될 것이다.

요한복음서 저자 자신이 예수님의 격언적인 말씀을 베드로의 죽음에 관한 예고로 해석한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21:19). 이 구절의 전반부는 자기 자신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관한 저자의 해설과 사실상 동일하다(12:33; 18:32). 거기서 예수님은 자기의 들리우심에 관하여 말했는데(12:33), 그것은 그가 십자가에 들리우는 것을 가리켜 말씀한 것이었다.


베드로의 최후는, “네 팔을 벌린다는 말에서 암시된 것과 같이, 예수님의 최후와 같은 숙명에 동참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가 결국엔 후에는 내가 가는 곳에 네가 따라오리라”(13:37-38)는 예수님의 예고를 성취할 것에 관한 말씀이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목자로서 그의 삶을 통해서는 물론 예수님의 양들을 위한 그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 베드로의 순교에 관한 최초의 언급일 수 있다.

베드로의 죽음은 베드로후서 1:14에서 암시되는데, 그 구절은 베드로후서의 저자가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요한복음서와 같은 시대의 작품인 클레멘트일서 5:4(A.D. 96년경)에는 베드로가 순교의 죽음을 당했다고 언급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형되었는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터툴리안(A.D. 3세기 초엽)도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한다. 교회사가 유세비우스는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유명한 전설을 전달한다(교회사 3.1.2). 베드로의 죽음에 관한 예수의 언급이 그의 십자가 처형을 가리킨다는 것은 논란의 대상이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죽는 데까지 예수를 따를 것이며 그의 죽음은 예수의 죽음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그의 말씀을 순종하다가 죽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것을 통하여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계시 활동이었다. 베드로의 죽음 역시 예수님의 죽음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스러운 죽음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죽음에 관하여 예고한 후에, 그에게 나를 따르라고 초청하신다. 요한복음서에서 베드로에게 주신 제자직에의 초청은, 공관복음서들과 달리, 부활의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하신 말씀으로 제시된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에게 나왔을 때, 그는 나를 따르라는 초청을 받지 못했다(1:42). 오히려 그 초청은 갈릴리 벳세다 사람 빌립에게 주어졌다(1:43). 고별 만찬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가는 곳을 물었을 때, 예수님은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말씀하셨다(13:36).

따라서 여기서 예수님의 초청은 처음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직에의 초청이라기보다는 목자의 사명을 위임받은 자로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희생할 수 있는 순교자의 길을 따라오라는 초청이다(cf. 12:25f.; 8:34f.). 베드로가 이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하여 계시된 복음의 모든 것들을 체험하고 깨닫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저자는 베드로에게 주시는 이 초청을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나고 십자가와 부활이 다 성취된 마지막 순간까지 남겨둔다. 베드로가 전에는 이 길을 갈 수 없었지만, 예수님의 공생애의 모든 것을 목격했고 십자가와 부활현현을 체험한 지금은 살아계신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이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초청은 부활의 주님이 베드로로 하여금 공생애의 주님의 삶을 따라오도록 초청하신 것이다.


저자는 베드로의 회복에 관한 주제를 완결한 후에 한 가지 남은 주제 곧 베드로와 그 사랑 받은 제자 사이의 관계를 마지막으로 다룬다. 요한복음서 저자에게 있어서 그들 사이의 관계는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였다. 베드로와 그 사랑 받은 제자는 여러 장면들에서 늘 함께 언급되었다.

고별 만찬 때로부터 시작하여 예수의 심문 때와 빈무덤 사건 그리고 예수의 세 번째 현현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늘 함께 등장하고, 또 둘 사이에 미묘하게 경쟁하며 갈등하는 관계로 표현되었다. 저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둘 사이의 관계 정립을 시도한다.


그 사랑 받은 제자는 베드로와는 다른 역할을 갖고 있었다. 그는 베드로와 같이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예수에게로 인도하는 큰 지도자는 아니지만, 예수의 복음을 신실하게 또 정확하게 증언하는 증인이다.

그는 순교자의 죽음을 죽지 않고 오히려 장수하며 참된 증인의 사명을 끝까지 충성되게 감당할 것이다. 요한복음 21장은 예수의 제자들을 위한 다양한 역할들을 제시한다: 물고기를 잡는 것(선교활동), 양을 치는 것(목회 활동), 그리고 복음의 신실한 증언(죽음 혹은 삶을 통해서).

김광수 교수 / 침신대 신학과(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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