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의 묵상-14 서로 사랑합시다(살전4:9~10)

  • 등록 2016.02.07 22: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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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 목사 청하교회

일반적인 종교들을 보면 사랑을 경험하지 않아도 유지될 수 있지만 사랑을 경험할 수 없고 실천할 수 없는 종교를 참 종교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마태복음 22장 37-40절 말씀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사랑이 경험되지 않고 실천되지 않는 기독교를 기독교라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지체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모든 세대를 걸쳐서 가장 귀중한 가치입니다. 특별히 21세기를 살아가면서 기독교한국침례회 안에서 한 신앙의 고백을 공유하며 주님을 섬기는 모든 교회의 지체들이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본문 9절에 “형제 사랑”이라는 말을 헬라어에서 ‘필라델피아스’입니다.


이 말은 문법상 ‘필라델피아’의 단수, 소유격입니다. 이 말은 “내 가족, 내 형제 자매의 사랑”이라는 좁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바울사도께서 곧이어 10절의 말씀에서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들”이라는 말씀으로 형제 사랑의 개념을 넓게 확대 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 형제라는 개념을 기록한 것은 본문이 처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믿음을 내 세우기전에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사랑을 배우지 않는 믿음이란 마치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끼고 다니는 반지와 같을 뿐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정의한 사랑이란 “내 행복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랑”입니다. 2세기 카르타고의 이교도 가정 출신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북아프리카 교회의 위대한 교부가 되었던 터툴리안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보았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어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사랑은 그들의 습관입니다.”


사랑은 어느 순간이든지 “내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라는 절대적인 희생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신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비록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배웠다 할지라도 대부분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타인이 나를 섬겨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내면의 성향을 보면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하시면서 그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열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내 가족과 형제자매를 먼저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사랑을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배워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까?
먼저 역사적 사실에 통해서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사건은 갈보리에서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요한복음 13장 34절의 말씀에서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주석가 버클레이는 “첫째,  이타적 사랑, 둘째, 희생적인 사랑, 셋째, 이해의 사랑, 넷째, 용서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랑의 모델이 누구입니까? 혹시 당신이 존경하는 그 누구입니까?

우리는 오직 한분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랑의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사랑을 배워야 하는 방법은 우리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 주님의 준엄하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표시입니다. 또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에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 14:26, 요1서 2:20,24)


무엇 때문에 사랑을 배워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배워야 하는 것은 최상의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첫 번째가 구원의 확신과 풍성한 간증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5)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훈련 받아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써 최고의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배울 때 비로소 세상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4장 12절 하반절 말씀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온전히’라는 헬라어는 ‘테텔레이오메네’입니다. 이 말은 ‘텔레이오오’의 피동사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온전하신 분을 통해서만 온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배워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온전한 목표를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의 지체이며 제자들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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