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열망하시는 것은 위대한 미래를 선택을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 주님의 교회는 언제나 위대한 미래를 선택을 해야 합니다.
위대한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 위해 최적화 된 교회입니다.” 위대한 미래를 선택하는 교회, 실패를 선택하는 교회는 장소가 어디에 있던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소의 선택을 중요시 하지만 성경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내일”을 맞는 교회와 “실패의 내일”을 맞는 교회는 오로지 오늘의 선택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앞에 서있는 광야 교회는 위대한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실패의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선택의 언저리에 서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교회를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자리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해방시키시기 위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며 구원하셔서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위대한 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광야교회는 지금 이 순간까지 하나님의 해방과 구원 그리고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언저리에서 갑자기 믿음의 행진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광야교회가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이 인도하신 증거들로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택의 언저리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해 버린 것입니다. “위대한 내일”을 선택해야 하는 광야교회는 열두 명의 정탐꾼들 가운데 열 명의 정탐꾼들이 가진 “할 수 없다”라는 부정적 믿음 앞에서 “위대한 미래”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오늘의 주님의 몸 된 교회들에게 보여주는 본보기가 된다고 고린도전서 10장11절에 분명히 기록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3장 17~19; 4:1~1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들이나 교단도 여전히 위대한 미래의 언저리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지난날들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신 손길을 충분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광야를 행진하는 주님의 교회들도 위대한 미래와 실패의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언저리에 있음을 잊어서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 위대한 미래를 조심스럽게 탐구해야 합니다. 위대한 미래란? “하나님의 약속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12지파의 각 지파마다 그 대표들을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탐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가져야할 사명은 “광야교회와 미래교회에 위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철저하게 정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의 땅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도 40일이라는 매우 적당한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에 약속의 땅을 충분하게 염탐하며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증거들을 충분히 가지고 돌아왔습니다(13:22~23). 하나님은 광야교회나 오늘의 교회 안에 지도자들을 세우시고 위대한 미래를 염탐하도록 시간과 증거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에 세우심을 받은 지도자들은 약속된 “위대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약속의 땅인 위대한 미래를 향해 건너가야 합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위대한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정탐꾼들은 신실하신 약속의 증거들을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관점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대한 미래보다 현제 위험을 더 크게 봅니다. 정탐꾼들은 약속의 땅에서 생산되는 열매를 메고 오기도 했지만 동시에 지극히 나쁜 상황을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가능성보다 불가능한 것만 말합니다. 그들의 첫 번째 보고가 “거기서 아낙자손은 보았다.”입니다.
세상의 통계는 언제나 두렵습니다.(32,33) 실패를 선택할 논리는 항의, 기다리자, 돌아가자 입니다. 하지만 30절에서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14:8,9) 여호수아 갈렙 역시 그 땅에 거하는 거인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인들을 압도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본 것입니다.
위대한 미래를 소유하지 못한 것은 건너기를 거부한 때문입니다.
주님의 교회들이 약속된 “위대한 미래”를 거부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약속의 증거들이 넘쳐 날지라도 “돌아가자”라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은 위대한 선택의 순간 불평이 얼마나 나쁜 결과를 주는 요소인지 보여주는 보고서입니다. 광야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인 비전, 정복, 성장의 축복을 그 순간의 상황과 정책들을 바라보는 옹졸한 믿음 때문에 망쳐버렸습니다.(14:2-4) 하지만 광야교회는 돌아갈 기회도 없습니다. 그들이 위대한 미래를 선택할 언저리에서 건너기를 거부한 선택은 사십년의 광야의 방황과 죽음뿐이었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모름지기 약속된 위대한 미래를 바라보며 어떤 경우에도 “돌아가자”라고 해서 안 됩니다. 위대한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의 언저리에 서 있는 우리들은 결코 올바른 선택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정일 목사 / 청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