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구원 신학의 전개-6

  • 등록 2016.03.03 16: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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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에서 심판의 개념은 현재의 결단에 종속된다. 이 시대가 종말의 시작이라는 내용을 포함하면서도, 그 종말의 결과에 대한 강조는 부분적이다. , 베드로의 요엘서 인용(2:16~21)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새로운 시대는 궁극적으로 종말을 지향하면서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설교이다. 요엘의 예언 성취에 대한 베드로의 설교는 성령의 강림에 따른 선포와 더불어 성령의 영원성과도 관련되며, 이 영원성을 가진 성령시대가 이미 시작된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심판은 현재를 위한 결단의 촉구 의미를 내포한다. 장차 도래할 종말의 시대를 전제로 하는 성령시대는 종국적인 심판의 서곡이다. 이에 따라 바울은 , 절제, 장차 올 심판을 강론한다(24:25)<고넬료의 사건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재판장이란 표현 속에 내포한다(“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이 표현도 현재적인 구원의 견인과 관련된다.>. 심판은 종말을 전제로 현재적인 구원에 대한 선포로 기능하는 것이다.

IV. 예수: 구원의 본질

구원의 본질은 무엇인가? 구원의 지향점은 어디이며 그 결과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사도행전은 이와 관련하여 예수자체를 강조한다. 예수가 구원의 본질이며, 이 예수와의 관계 형성의 상태가 구원임을 밝힌다. 체화된 구원의 다양한 선포는 한결같이 예수를 그 중심축으로 삼아 예수를 신학적으로, 상황적으로 해석해서 구주로 선포하는 것이다.

 

1. , 예수, 그리스도, 임금, 구주

승천 이후의 예수는 복음서의 예수와는 그 기능성에서 구별된다. 그렇다고 해도 성령을 통한 예수의 영속성과 지속성은 그의 그리스도이심이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만든다. 유대 종교와 헬라-로마 문화권에서 예수를 규정하는 다양한 칭호가 등장한다. 이 칭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를 고백하며 선포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는 서로 다른 개념을 내포하면서 동시에 상호 균형을 이루는 기독론적 칭호로 기능한다<‘그리스도인칭호는 그리스도인이 유대교의 계승이 아니라 유대교로부터 분리된 새로운 집단을 형성한 것을 의미한다. 이 칭호는 그 내면에 예수의 정체를 내포하면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을 지칭한다(11:26; 26:28). cf. 벧전 4:16. 이 칭호의 신학적인 기능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김선배,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유대교와 구별되는 기독교,” 복음과 실천 50 (2012 가을): 54-5; 그리스도인 칭호는 사회적, 인종적 편견이 배제되고 다양한 구성원들이 오직 그리스도와의 관계성 속에서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Stephen J. Strauss, “The Significance of Acts 11:26 for the Church at Antioch and Today,” Bibliotheca Sacra, vol. 168 (July-September 2011): 283-300.>.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또는 예수는 주시다는 표현은 하나의 고백이며 선포이다.


사도행전은 예수를 세속적 통치자에게 적용하는 임금구주로도 표현한다(5:30~31). 예수의 정체를 밝히는 수단으로, 로마 황제를 비교점으로 삼는 임금구주라는 선언이다. 이 칭호는 예수 자체가 누구인지를 사회적으로 설명하는 칭호이며, 이와 병행해서 예수를 복음서의 전승을 승계하는 초월적 존재로도 선포하면서 예수의 정체에 대해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균형을 갖추어 제시한다(9:20).


예수에 대한 다양한 칭호는 예수 사건과 통합적이다. 비록 성령시대를 전제로 하는 사도행전이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선언은 증언의 핵심이며, 예수를 수식하는 다른 용어들을 배제할 경우에도 선포의 핵심이다. 예수의 생애의 어떤 한 부분, 이를테면, 수난, 죽음, 부활, 승천 등의 어떤 한 과정이 아니라 그의 사역 전체가 한 묶음으로 구원과 관련된다. 사도행전의 구원은 다른 부차적인 또는 전제가 되는 행위가 아니라 바로 예수(의 인격) 자체와 직접 연결된다(2:21; 4;12; 13;23; 16:31)<Jervell, 사도행전신학, 155.>. 사도행전은 예수와 이 예수에게 발생한 사건을 엮어서 전하지만, 예수를 둘러싼 사건의 진행보다는 그 사건을 귀속하는 예수를 증언한다(cf. 17:18).

 

2. ‘주의 이름

사도행전의 이름예수와 일치된다(cf. 21:12). 이 이름은 예수,’ ‘예수 그리스도,’ ‘,’ ‘나의,’ ‘등의 수식어로 연결되거나 또는 독자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예수 그리스도의 이름(2:38; 8:12; 10:48; 15:25-26; 16:18); 주 예수의 이름(8:16; 9:29: 19:5, 13, 17); 주의 이름(2:21; 9:14; 22:16); 내 이름(9:15, 16);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3:6; 4:10); 나사렛 예수의 이름(26:9); 예수의 이름(4:18; 4:30; 5:40; 9:27); 그 이름(3:16; 5:41; 10:43);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4:7);

김선배 교수침신대 신학과(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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