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억을 뒤로하고

  • 등록 -0001.11.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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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2월은 많은 졸업식이 있습니다. 이불을 박차고 나왔던 용기들이 모여져서 개근을 하고 때론 뛰쳐나오고 싶은 야간자율학습을 꾸벅거리면서 버텨낸 시간들과 인내가 만들어낸 것이기에 졸업은 누구나 축복받을 일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나 대학원을 졸업하는 아이에게 동일하게 축하의 인사를 건넵니다. 그런데 반응은 사뭇 다릅니다. 고등학교 졸업하는 아이들까지는 비교적 졸업을 축하받을 일로 당연하게 받는 것 같은데 대학생이상의 경우는 졸업을 축하로만 받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할 수 있으면 경험하고 싶지 않은 비극이라는 말을 하는 철든 아이의 눈빛이 자꾸 생각이 납니다.

분주한 졸업식장이라 왜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 되물을 수 없어서 생각이 많구나정도로 말하고 돌아섰는데 마음 한 구석에 자꾸만 남아있습니다. 그 아이와 부모가 그토록 원하던 대학이었는데 졸업과 동시에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취직을 못해서 그런 것만 같지는 않습니다.


조지버나드쇼가 말한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으로 바라던 바를 얻지 못하는 것이요, 나머지 하나는 그것을 얻는 것이다.’라는 말이나 인생은 생각하면 희극이고 느끼면 비극이다.” 조지버나드쇼의 말입니다.

두 사람의 말은 다른 듯 비슷합니다. 한 사람 더 거든다면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살면서 새록새록 알아가는 것은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 up, But a comedy in long-shot)”는 말입니다. 인생에서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비극이 바라고 원하는 것에 있다는데 출발한다는 겁니다또 그걸 얻어도 얻지 못해도, 가져도 갖지 못해도 비극이라고 합니다. 앞서 말한 대학생의 경우도 우리는 그가 명문대생인 것을 부러워했는데 그는 지금 그것이 주는 희극적 부분은 안중에 없는 듯 해 보여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며 생각하면 희극이고 느끼면 비극인 인생사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솔로몬이 말한 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해아래서 낙을 누리는 것, 즉 현재의 감정에 그리고 복잡한 자신의 문제 너무 매몰되지 않기, 무엇보다 비극자체를 너무 피하려고 애쓰지 말고 때론 정면 승부하는 것이 가장 최상이지 싶습니다. 큰 틀에서 보거나 생각하면 별거 아닐 수 있다는 말이겠죠.

졸업과 관련해서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추억이라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교정마다 정든 추억을 간직한 이야기들이 무성하고, 친구들과 같이 뛰었던 운동장이 가장 생각이 납니다.


이향아 시인의 추억이라는 말에는이란 시를 옮겨 보겠습니다.

추억이라는 말에서는

낙엽 마르는 냄새가 난다

가을 청 무우밭을 지나서

상수리 숲 바스락 소리 지나서

 

추억이라는 말에서는

오소소 흔들리는 억새풀 얘기가 들린다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

그래서 마냥 그립다는 말이다

 

지나간 일이여

지나가서 남은 것이 없는 일이여

노을은 가슴속 애물처럼 타오르고

저녁 들판 낮게 깔린 밥 짓는 연기

 

추억이라는 말에는

열 손가락 찡한 이슬이 묻어있다

 


지천명을 넘어서는 우리의 정서가 묻어있는 시여서인지 정말로 때론 추억이란 말을 들으면 가슴에 따뜻한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뜨끈해지면서도 그 물이 눈으로 역류하는 것도 느껴집니다그러나 졸업은 또 다른 세계로의 입문입니다.

영국 왕립학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식인 단체인데, 회장은 당대에 한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종신명예직이라고 합니다. 2006년부터 15대 회장을 맡고 있는 이는 이론천체 물리학자 마틴리스입니다.

그는 유럽최후의 궁전 천문학자이기도 한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천문학과 과학에 대해 조언을 하는게 임무라고 합니다한 인터뷰에서 사회적인 문제 앞에서 과학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란 이런 질문을 때 마틴리스가 답했습니다.


과학자는 색다른 관점을 제공합니다. 과학자뿐 아니라 각 분야의 모든 전문가는 정치가와 시민에게 색다른 관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한 색다른 관점이라는게 정말 기존의 관점과 달랐습니다. 이렇게 말했죠. “저는 천체물리학자로서 아주 긴 세월을 내다보거나 돌아보는 일이 익숙합니다. 많은 사람에게는 서기 2050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이 먼 미래죠. 반면에 저는 우리가 40억년에 걸친 시간의 산물이라는 점을 늘 의식합니다. 또 지구의 미래가 최소한 40억년 만큼은 남아있다는 점도요. 우리 다음에 또 얼마나 많은 세대가 지구에 거주할 수 있는지를 늘 염두해 둔다면 현재 많은 문제들을 대할 때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입니다. 현재의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테니 굉장히 신중해질꺼에요.” 듣고보니 정말 그렇고 뜨끔하기도 합니다.


지구의 미래가 정말 40억년 만큼 남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떠난 후에도 계속될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이 지구에 마지막 주인인양 하는 모습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구에 대해서 뿐 아니라 자기의 인생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 그런 것 같습니다.

아주 긴 세월을 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순간의 욕망과 자기만족에 따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크게는 지구의 미래 작게는 자신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현명한 결정은 어떻게 하는 걸까요?

헬렌켈러는 어떤 욕망이나 행동이 긍정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것이 그 순간에 당신에게 만족을 주는가가 아닙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가져오는 결과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에 있습니다.”라고 조언합니다. 졸업식을 통해 살아 온 시간과 살아가야 할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되새기면서 살아야겠습니다.

 

/ 윤양수 목사 한소망교회 야곱의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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