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 기독론: 바울의 기독론(2)

  • 등록 2016.04.15 11: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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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담긴 신학산책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와 화육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성은 먼저 하나님의 아들로 제시되었다. 하나님은 그가 계획하신 역사의 때에 그의 아들을 세상에 내보내시되 여자를 통해 태어난 한 인간이 되게 하셨고 율법의 백성 중 한 사람이 되게 하셨다(갈4:4). 바울은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성에 담긴 독특한 국면 곧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성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존재로서는 다윗의 혈통으로 태어나셨으며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약속의 성취로 오신 그리스도이시다(롬1: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성결의 영이라는 하나님의 존재로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권능과 생명과 영광의 존재로 변형되신 분이다(롬1:4).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존재로 사셨던 분이면서 동시에 지금은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과 생명을 가진 분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제시함에 있어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바울은 기독론적 찬송시(빌2:6~11)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성에 관한 전체적인 국면을 제시한다. 바울은 여기서 선재, 화육, 십자가, 부활, 그리고 승귀(영광의 올리우심)로 표현되는 신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성의 전모를 밝힌다.

(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 안에” 이미 존재하고 계셨다. 어떤 존재가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기 이전에 먼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은 현대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상 세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바울 시대 헬레니즘 사상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현상적이고 경험적 존재만이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다른 차원의 존재가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과 공간 안의 존재가 현상적으로 구체적이며 참된 존재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가변적인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참된 것이며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헬레니즘 세계에 살면서 헬라어를 사용하던 헬라계 유대인들 역시 이러한 헬레니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했다. 예를 들어, 메시아와 토라(하나님의 율법)와 지혜가 그런 존재였다. 토라는 모세를 통해 주어졌지만, 토라 자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다. 지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영원하고 초월적인 것이다. 기원후 일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는 영원한 존재에 관한 플라톤적 사상을 갖고 율법과 지혜를 설명했다.


이와 같이 헬레니즘 문화권의 사상가들에게 선재는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는 범주였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중개자 혹은 대리자를 통해 세계를 창조하고 부여하셨다고 생각했다. 헬라계 유대교 사상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의지와 말씀으로 이해되었다. 하나님은 지혜를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다(잠8장). 기원전 2세기 작품인 솔로몬의 지혜서에서 지혜는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발산하시는 빛으로 이해되었다. 지혜가 하나님을 비추는 빛이 되어 인간의 영혼에 들어가 하나님의 친구 혹은 선지자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7.27). 하나님의 영광을 발산하는 빛이라는 이 개념이 히브리서에서 그리스도의 선재를 설명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산하는 광채가 되신다는 것이다(히1:3).


바울 역시 이러한 선재의 개념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적 존재성을 제시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 안에 계셨다”라고 말한다(빌2:6). ‘본체’라는 단어는 어떤 물건이나 존재가 그 자체로 인간의 감각에 나타나는 방식을 가리킨다. 본체는 그 배후의 존재를 참되게 그리고 충분히 표현하는 형태(존재의 양태)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본체 안에 계셨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에 있어서 핵심적인 본질과 속성을 소유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 곧 하나님 자신의 존재성을 가진 분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는 영역 혹은 그의 존재의 본질과 속성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종의 본체를 가진 인간이 되셨다. 바울은 하나님의 본체로 존재하시던 하나님의 아들의 연속적인 겸손(자기 비움과 낮춤, 하나님의 뜻을 위한 헌신과 희생)의 행동을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 안에 존재하시는 분으로서 얼마든지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을 내세우고 주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자기가 주장하고 내세울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서의 영광과 권능과 특권을 내려놓고 종의 본체를 가진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2:7a). 바울은 여기서 ‘화육’ 혹은 ‘성육신’이라는 기독교의 가장 특징적이며 독특한 신학적 용어로 표현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존재성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본체 안에 존재하시던 신성의 존재가 종의 본체 안에 존재하는 인성의 존재 곧 사람이 되셨다는 신비한 화육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한글 성경에 ‘형체’(빌2:7)로 번역된 단어는 바로 앞 절에서는 ‘본체’(빌2:6)로 번역되었다. “종의 본체”라는 어구는 주인에게 복종해야 하는 종으로서의 존재 양식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본체”가 신적인 존재 양식 곧 자기 자신의 권리를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존재를 나타내는 반면, “종의 본체”는 복종하는 종의 존재 양식을 가리킨다. 바울 신학에서 인간의 존재 양식은 복종하는 종의 존재 양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죄에게 복종하든지 혹은 하나님께 복종하든지 반드시 둘 중의 하나에게 복종해야 하는 “종의 본체”를 갖고 있다(롬6:16).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종의 본체를 가진 사람들과 같은 존재가 되신 것이다. 인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종의 본질을 실천하는 삶 곧 하나님의 뜻에 온전하게 순종하는 삶이었다. 가장 존귀하고 높고 고귀한 본체의 존재가 역설적으로 자기 부인과 섬김과 희생의 삶의 모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바울은 “종의 본체”라는 존재 양식과 함께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빌2:7b)라는 구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화육에 담긴 인간의 외형적인 모습을 표현한다. ‘모양’이라는 단어는 외형 곧 외적인 나타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의 모양”이란 육신을 가진 인간 존재의 외적인 모습을 가진 인간이 되신 것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나타나사’라는 동사가 부정과거 수동태 분사로 된 것은 사람들의 눈에 비친 화육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외형적인 모습을 표현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존재의 본질에서는 물론 외형적으로도 인간 존재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셨다는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바울은 화육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종의 본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주인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 삶의 모본을 보이신 것으로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먼저 자기 자신을 종의 존재로까지 낮추셨다. 그는 종의 본체를 가진 인간의 존재 목적대로 하나님께 복종하되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의 복종하는 삶의 절정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헌신과 희생으로 표현되었다. 화육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육신의 삶에서 바울이 주목한 것은 이와 같이 종의 본체의 삶을 완전하게 실현하는 것 곧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이와 같은 완전한 순종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는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다(롬5:19).


바울 신학에서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원하여 십자가의 속죄제물이 되신 것이다. 죄의 권세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해답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든 죄들을 대신하여 희생하는 속죄의 죽음이었다(롬3:24~25).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와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도 그리스도의 죽음이었다(롬5:18~19).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죽음을 통해 죄 자체를 심판하심으로써 죄인들을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시는 기틀을 마련하셨다(롬8:2~3). 그러므로 바울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 구원의 유일한 길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 김광수 교수(침신대 신학과(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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