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
지난 호에는 바울이 말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성에 관한 첫 번째 국면인 선재와 화육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두 번째 국면인 부활과 승귀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바울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성은 선재와 화육 그리고 부활과 승귀로 압축된다. 빌립보서 2:6~11에 나오는 기독론적 찬송시의 전반부(2:6-8)는 선재와 화육에 관한 것인 반면, 후반부(2:9~11)은 부활과 승귀에 관한 것이다. 바울은 전반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 안에 선재하시던 분이지만 종의 본체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며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으로서 그의 존재성에 있어서 신성과 인성의 신비한 결합을 제시했다. 바울은 후반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를 통해 인성과 신성의 신비한 결합으로 나아간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의 존재가 되셨다(빌 2:9). 바울은 전반부에서 자기 자신을 비우고 자기를 낮추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됨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바울은 후반부에서는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확인하심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의 아들에게 행하신 권능의 일을 중심으로 묘사한다. 바울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신학적 의미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셨으며 그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은혜로 주셨다(2:9). “지극히 높이다”라는 동사는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온다. 이 동사는 문자적으로는 “최고로 높이다” 혹은 “가장 고귀한 자리에 오르게 하다”를 의미한다. 이 동사의 중심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의 존재성에 있어서 승귀의 존재를 화육 이전에 존재와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 화육하여 피조 세계의 일원이 되셨던 하나님의 아들의 궁극적 존재성은 피조 된 모든 것 위에 위치한 지고의 존재가 되신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는 부정과거 시제를 사용한 것은 화육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역사상의 존재와 부활과 승귀를 통한 그리스도의 현재적 존재를 구분한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를 하나님은 그의 부활의 권능으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으며 임금과 구주가 되게 하셨다(행 2:32, 33, 36; 5:30, 31; 엡 1:20, 21).
바울은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라는 선언과 함께 “하나님이 그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은혜로 주셨다”라는 선언을 추가한다. 이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직책과 관련하여 앞의 선언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두 선언 다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올리어지신 그의 초월적 존재성과 신적 권위를 제시한다. 고대 세계에서 이름은 한 개인을 다른 개인과 구분 짓는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전체(성품, 신분, 지위 등)를 가리킨다. 그래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라는 것은 모든 다른 존재들 위해 그를 구분 짓는 명칭과 모든 직함을 뛰어넘는 직함을 주셨을 뿐 아니라, 그 명칭과 직함에 일치하는 본질을 주신 것 곧 그 명칭과 직함에 합당한 실체와 의미를 주신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은 다른 모든 이름과 비교하여 우위에 있는 존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든 이름을 뛰어 넘는” 곧 “다른 어떤 이름과 비교될 수 없고 견줄 수 없는 유일한 이름”의 존재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인성(사람됨)에 있어서도 다른 어떤 사람과도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이셨지만, 그의 부활과 승귀는 더욱 더 그의 존재를 다른 어떤 존재와도 견줄 수 없는 유일한 존재가 되게 하셨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유일한 존재성을 그가 받은 유일한 권위와 주권을 통해 추가적으로 선언한다(2:10, 11; cf. 마 28;18; 엡 1:20~21).
(2)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 위에 권위를 가진 유일한 존재가 되셨다(빌 2:10). 바울은 하나님이 예수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목적을 두 구절에서 제시한다. 첫째 목적은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려는 것이다(2:10). 이 말에 두 가지 표현이 두드러진다. 먼저 “예수의 이름이다.” 바울은 이 찬송시에서 ‘예수’라는 이름을 여기서 처음 사용한다. 여기서 “예수의 이름에”는 “예수라는 이름에”가 아니라, “예수에게 속한 이름에” 혹은 “예수가 소유한 이름에”를 의미한다. 바울은 바로 앞 절에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의 존재가 되신 분을 소개했다. 그는 바로 이어서 그 이름의 존재가 바로 ‘예수’이시며 예수가 바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으신” ‘주’로서의 존재가 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바울이 여기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나사렛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과 부활과 승귀의 초월적 권위자 사이의 불가분리적 연결성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역사의 시간과 공간 안에 사셨던 나사렛 예수 곧 자기 자신을 비우고 종의 본체를 가진 사람이 되셨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스럽게 또한 수치스럽게 범죄자의 죽임을 당하신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롬 3:25; cf. 행 2:32, 36; 4:11).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신 분께서 이제는 모든 사람의 완전한 순종을 받으시는 권위의 존재가 되신 것을 말한다.
“무릎을 꿇다(구부리다)”라는 표현은 종교적 예배의 표시를 나타낸다. 그 예배의 대상은 대개 전치사(프로스)와 대격(엡 3:14) 혹은 여격 단독(롬 11:4; 사 45:23)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전치사(엔)과 여격 구문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찬송시의 전체 문맥에서 예수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곧 구약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인 ‘주’로서의 이름을 받으셨다. 더구나 이 구절의 배경이 되는 이사야 45:23(“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이 이 문맥에 연결되었으며 예수에게 적용되었다.
이사야의 이 구절은 하나님의 절대 권위를 가장 강력하게 강조하는 구약의 구절들에 속한다는 것이다: “오직 나만이 하나님이며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22). 비록 문법적 구성이 특이하지만, 이 구절은 “주님으로서 예수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예수의 이름에”라는 어구는 “예수의 이름에게”(at the name of Jesus) 혹은 “예수의 이름 앞에”(before the name of Jesus)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모든 존재가 예수에게 그들의 경의를 표해야 한다 혹은 모든 존재가 그들의 무릎을 꿇고 그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고 시인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빌 2:11).
둘째 목적은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이 찬양시는 절정에 이르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은 바로 다름 아닌 ‘주’라는 이름인 것을 나타낸다. 신약의 여러 구절들이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는 확언은 초대 교회의 가장 초기의 또한 가장 중요한 고백 공식어라는 것을 보여준다(롬 10:9; 고전 11:23; 12:3; 16:22; 행 2:36). 이 찬양시의 배경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동을 찬양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침례 시 고백을 회상하게 하는 초대 교회의 예배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고백이 교회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모든 혀(입)가 시인할 것이다”로 제시된 것이다.
“모든 혀”라는 어구는 “모든 사람”(all/everyone)을 말하는 시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특별히 “모든 민족,” “모든 백성,” 그리고 “모든 나라”의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다(사 66:18; 단 3:4, 7; 계 5:9; 7:9; 10:11 등).
‘주’라는 칭호는 헬라어 구약성경(70인경)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번역하기 위해 사용된 대용어이다. 따라서 이 칭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하나님의 존재로까지 높이는 최고의 기독론적 칭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과 생명을 가진 ‘주’ 곧 하나님의 백성의 주권자가 되신 것이다. “시인하여”로 번역된 동사는 사본에서 “시인할 것이다”(미래 직설법) 혹은 “시인하게 하려는 것이다”(부정과거 가정법)로 되어 있다.
미래 직설법이 “모든 백성이…시인하게 될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궁극적 결말을 가키는 반면, 부정과거 가정법은 앞 절에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려는” 목적의 종속절과 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목적을 나타낸다. 어느 것을 택하든지, 이 구절의 목적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경배의 대상이며 동시에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시며 주권자이시라는 고백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인 것을 나타낸다.
/ 김광수 교수(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신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