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로, 침례교운동은 종교의 자유와 교회와 국가의 분리(국교체제의 기독교가 아닌 자유교회)를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신자들의 영적인 공동체”(Spiritual Body of Believers)여야 한다는 확신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네델란드 아나뱁티스트들의 영향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신약성경에서 발견해 낸 신앙원리였다.
교회와 국가가 긴밀하게 결탁되었던 로마가톨릭 교회의 유산인 유아세례 전통을 초창기 침례교 개척자들은 과감하게 배격하였고, 교회는 세속국가나 권력기관과는 무관한 신약성서적 교회, 다시 말하면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 313) 이전의 순수했던 교회를 회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초창기 침례교 개척자들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교의 자유”(Religious Freedom for All)를 이상으로 하여 세속권력자들은 인간 내면의 종교나 신앙이나 양심의 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침례교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사함과 구원을 받는 유일한 길임을 고집스럽게 믿지만, 동시에 불신자들과 다른 종교인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믿는다.
다섯째로, 대륙의 아나뱁티스트들에 의해 “자유교회”(Free Church) 혹은 “신자들의 교회”(Believers’ Church) 운동이 1525년 1월 21일에 이미 시작이 되었지만, 초창기 침례교운동은 그것을 더욱 뚜렷한 새로운 종교개혁운동의 한 물줄기로 정착시켰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교회를 유아세례를 베푸는 교회와 신자들에게만 뱁티즘을 베푸는 교회로 양분한다면, 침례교회는 메노나이트교회와 함께 후자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교회가 되었다.
뱁티즘도 처음에는 아나뱁티스트들의 관습을 따라 관수례(Affusion)를 베풀었지만, 특수침례교회에서는 1641년부터, 일반침례교회에서는 1650년경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Death, Burial, Resurrection, 롬 6: 3-5, 골 1:12 등), 즉 복음의 내용을 그림처럼 가장 잘 완벽하게 상징해 주는 침수례(Immersion)를 채택하여 오늘날까지 이어 오고 있다.
침례교인들은 침례는 인지능력이 없는 갓난 아기나 어린 아이에게와 불신자들에게는 베풀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는 신자들(Professing Believers)에게만 베풀고, 그렇게 침례받은 중생한 신자들로 교회회원을 삼는 교회(Regenerate Church Membership)를 이루는 신약성서적인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주의 만찬(Lord’s Supper)도 신자들(참예자들)을 위해서 십자가 상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대한 상징(Symbol) 혹은 기념(Memorial)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침례나 주의 만찬에 대해서, 뱁티즘에 죄사함의 능력이 있다고 믿거나 떡과 포도주에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임재한다고 믿거나 성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전달된다고 믿는 성례전주의(Sacramentalism)의 입장을 배격하고, 성례는 단지 형식일뿐이고 상징일뿐이고 기념일뿐이라고 믿는 성례형식주의(Sacramentarianism)의 입장을 채택하고 있다.
인격체이신 그리스도의 영 혹은 성령이 비인격체요 무생물인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시는가? 인격체인 참예자(예수 믿고 침례받은 신자)에게 임하셔서 주의 만찬에서 제공된 떡과 포도주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와 찢기신 예수님의 살로 바라보고 간주하는(regard) 것이 아닌가? 목회자가 주의 만찬에서 기도하거나 축사한다고 해서 떡과 포도주에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임재하시는가?
떡은 떡일 뿐이고 포도주는 포도주일 뿐인데, 예수 믿고 침례받은 참예자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믿음으로 그 떡을 예수님의 살로, 그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떡과 포도주에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영적이든 무슨 변화가 생기는 것인가? 침례교인들은 침례와 주의 만찬을 단지 상징(Symbol)으로 혹은 기념(Memorial)으로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