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보이게 한다

  • 등록 2016.05.19 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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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 아래서-12

군목 6년차부터 한 2년간 충남 홍성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충남 강경이 부모님의 연고가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내면에 충청도의 성향이 흐르기는 했겠지만, 본격적으로 충청도에서 살아본 것은 대전이 광역시가 되기 이전 학교 다닐 때 이후론 처음이었습니다.

한 번은 홍성의 왕복 1차선씩 밖에 안되는 지방도로로 예하부대 교육을 가고 있었는데 앞에 가는 차가 영 속도를 내지 않아 제 차 뒤로도 적잖은 차들이 줄을 서서 답답한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 뒤에는 초보운전뭐 이런 문구가 아니라 좀 더 복잡한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글씨가 아니어서 좀 가까이 가서 읽어보았더니 답답하시지유? 지는 환장하겄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결국 초보운전이라는 얘기를 그렇게 써놓은 것입니다. 그냥 속도내고 지나는 길이었다면 차 뒤에 무슨 글을 써놓았는지 관심도 없었겠지만, 그 차가 내게 신경을 쓰게 하는 바람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까 그런 장난 같은 글이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다른 경우도 있었는데, 한참 러시아워에 대전 시내를 운전하고 가고 있었는데 앞서가는 택시 뒷 범퍼에 작은 글씨로 뭐라고 붙여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평소라면 보일 리 없었던 글씨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중에 눈에 띈 것입니다. 잘 안보이니까 더 궁금해져서 차를 바짝 붙이고 나서 읽어보니까, “안전거리 확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글씨를 보려면 절대로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많은 경우에 언제나 거기에 있지만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넘어가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자기가 관심이 있는 것들은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같은 길을 가도 사람들마다 본 것과 기억나는 것에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월 초에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할 일이 있었습니다. 무릎 연골에 문제가 생겨서 관절경 수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는 가운데 무릎전문의 유능한 군의관을 만나서 깔끔하게 수술을 했습니다.

회복기에 휠체어를 타고 병원 복도를 가만히 지나다니거나 병원로비를 나가 보면 유난히 발에 깁스를 했거나 목발을 집고, 또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심지어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꼭 아는 사람 같다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평소에 내과나 안과에 일이 있어서 왔을 때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던 사람들인데 굉장히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아내가 처음 임신했을 때 거리에 그렇게 임산부가 많은 지 처음 알게 되었던 것과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휠체어를 사용하는 방법과 목발 집는 모습은 그대로 학습이 되어 제가 휠체어를 끌고 목발을 사용하는 데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거기에 관심이 있으니까 자세히 보이고 유심히 지켜보게 된 것입니다. 목회 20년을 훌쩍 넘기면서 간혹 드는 생각이 너무 타성에 젖어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목회 초반을 생각해보면, 몇 안되는 성도들에게 모든 신경을 쏟아서는 교회 출석률은 물론이고 사소한 안색의 변화마저도 눈에 띄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도우려고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성도들의 필요에 무감각해지고 목사의 목회방침에 성도들이 맞추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특별한 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목사가 성도를 살펴 문제에 접근해서 상담해주고 기도해주고 하는 것보다는 구역장이나 몇몇 열심 있는 성도들의 제보와 연결을 통해서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목양일념이라는 초심을 많이 잃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어렵고 범사에 괴로운 성도들 앞에 마냥 행복한 듯 웃고 있는 목사에게 과연 성도들은 자신의 삶의 위기를 공유해 줄 것인가? 몇 번을 눈을 맞추고 자신의 이상 징후를 보여줘도 전혀 주목해주지 않고 자기의 삶의 자리와 시간을 내어줄려고 하지 않은 목사를 보면서 과연 서로 돌아볼 한 교회의 지체로 여겨주기는 할 것인가?

사실 많은 성도들의 이해와 배려로 순도가 부족한 목회자임에도 적지 않은 시간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오래 참으심으로 당장 임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번 시작되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성도들도 예수님의 눈으로 양을 살피고 치고 먹이지 않는 목회자를 영원히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됩니다.

그래서 다양한 자기개발의 욕구에 매진하고 적절한 누림에 익숙해진 마음과 생각을 추슬려서 다시금 예수님께서 이 땅의 목회자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목양케 하신 성도들에게로 관심을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 예수님께서 보고 계신 세상을 예수님의 안목으로 다시금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배동훈 목사 남성대교회, 침례교 군목단장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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