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지난 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성에 있어서 부활과 승귀의 국면을 살펴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과 하나님 우편에 올리어지심을 통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의 존재 곧 어떤 존재와도 비교될 수 없을뿐더러 견줄 수 없는 유일한 존재가 되셨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가 순종하고 경의를 표하는 권위의 존재가 되셨다. 그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권능과 생명을 가지신 ‘주’님의 존재가 되셨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영원히 살아계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의 완성과 완결을 위해 활동하고 계신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현재적 활동을 성령의 활동과 연결하여 제시했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에 관한 사도 바울의 교훈을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서는 먼저 존재의 측면에서 그리고 역할의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를 살펴본다.
사도 바울의 교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는 기독교 신관의 핵심 요소인 삼위일체 신관에 기초한 국면을 보여준다. 그는 성령을 묘사할 때 ‘영’(pneu/ma)이라는 단어 단독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또한 여러 경우들에서 그 성령이 나오고 있는 근원의 존재와 연결하여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그리고 “주의 영”으로 표현한다. 바울은 먼저 성령을 “하나님의 영”(롬 8:9) 혹은 “하나님께로 온 영”(고전 2:12)으로 부른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 혹은 “하나님께로 온 영”으로서 하나님의 생명과 권능과 영광을 갖고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영”으로서의 성령은 이와 같이 존재론적인 국면에서는 세상에 오셔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구약에서 ‘영’이라는 단어 외에 ‘불’과 ‘빛’과 같은 단어들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기 위해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서 ‘영’이 가장 중심적으로 사용되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임하셔서 능력과 지혜로 일하게 하셨다(출 35:31; 삿 3:10; 6:34; 삼하 23:2; 대하 15:1; 사 11:2; 미 3:8). 바울은 또한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표현하면서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한 구절 안에서 거의 같은 의미로 교대로 사용한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이 구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그리고 ‘성령’(문자적으로는 ‘영’)이라는 어구들과 단어를 모두 사용한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사람은 육신의 통치(영향력)에서 벗어나 “성령 안에” 곧 성령의 통치(영향력) 안에 있게 된다.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된 사람이며 성령의 일에 마음을 두며 성령을 좇아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다.
바울은 이 구절 후반부(롬 8:9b)에서 “하나님의 영”이라는 어구를 “그리스도의 영”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시는 사람과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 사이의 동일한 결과를 나타낸다. 이 구절은 부정적인 국면의 언급을 통해 긍정적인 국면의 언급(롬 8:9a)을 대조적으로 표현한다.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곧 그리스도의 통치(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바꾸어 ‘성령’이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에게도 관계하고 또한 그리스도에게도 관계한다는 것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두 어구 사이에는 부각시키는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고전 2:12)으로서 성령의 기원과 활동 목적을 만유의 존재의 근원과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을 부각시킨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활동하시는 것은 물론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안에 들어온 신자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실행자라는 구원론적인 국면을 부각시킨다.
바울은 그 다음 구절(롬 8:10)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의 존재론적인 관계성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시는 사람과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에 관한 언급 바로 후에,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롬 8:10a)이라고 표현하여 앞 구절에서 “하나님의 영”이 거주하는 사람과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을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것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과 ‘그리스도’를 거의 동의어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는 것이 동의어적으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그 다음 구절(롬 8:11)에서는 성령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하나님)의 영”으로 또한 “너희(그리스도인들) 안에 거주하시는 그(하나님)의 영”으로 표현하여 하나님의 영으로서의 성령의 존재론적인 국면은 물론 종말론적으로 죽을 몸까지도 생명을 주시어 살아나게 하시는 구원의 완성자로서의 구원론적인 국면을 부각시킨다. 학자들은 여기서 바울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을 직접적으로 동일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의 독자적이면서도 연합적인 역할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러한 성경의 교훈들을 토대로 고대 교회사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발전된 것으로 이해한다.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다른 여러 곳에서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활동과 연결시킨다. 바울은 성령을 “하나님의 아들의 영”으로 부르며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버지-자녀” 관계를 인식하고 그렇게 부르게 하신다고 말한다: “너희가 아들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갈 4:6). 성령은 “그(하나님)의 아들의 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담대하게 부르짖게 하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과 같은 의미에서 성령을 “양자의 영”이라고 부르며 그리스도인들이 이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하신다고 말한다(롬 8:15). 바울은 또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부르며 그래서 성령이 그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그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신다고 말한다: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빌 1:19).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도하게 하시며 그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신다는 것이다.바울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키는 대용어인 ‘주’를 즐겨 사용한 70인경의 예를 따라 “하나님의 영”을 “주의 영”으로 부르며 그 “주의 영”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율법의 자구적 의미를 넘어서 율법의 근원적 의미를 알게 하고 그것을 실현하게 하는 능력을 공급해주신다고 말한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이 구절은 출애굽 시대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 올 때는 수건을 쓰고 온 반면 하나님 앞에 나갈 때는 수건을 벗고나간 것에 기초하여 모세는 ‘영’의 존재이신 하나님 앞에 나간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율법의 참된 뜻을 알게 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주의 영광”을 보며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나간다고 말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역사하사 중생과 칭의와 각종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 이 하나님의 영이 중생한 그리스도인들 안에 내주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 김광수 교수 침신대 신학과(신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