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와 두목 양

  • 등록 2016.06.16 12: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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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아래서-13

결혼하기 전까지는 메마른 체구에 남들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최강 노안의 소유자로 신학생과 전도사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몸이 좀 불면서 체격이 커지고 표정이 딱딱한 외양에 몇몇 사람이 소위 조직같아 보인다는 얘길 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목으로 임관을 해서는 짧은 머리에 큰 체격, 위협적인 표정과 검은 양복 탓에 더욱 조직스러워졌고 구태여 부인하지 않으면서 한동안 모 월드홈피 제목도 조직 목사의 미니 홈피로 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외양은 제 목회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무섭고 기대하기 힘든 인상을 강렬하게 주고는, 능력은 부족해도 최선을 다하는 목회와 서툴러도 지속적인 섬김의 노력들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부정적인 인상을 상쇄해나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임기가 끝나서 교회를 옮길 때면 그래도 헤어지기 섭섭한 관계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잘 하던 말이 배 목사를 목자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대표기도를 할 때나 대화 중에 우리 교회의 목자이신 배 목사님이라는 말을 간혹 하는데, 이게 듣기가 굉장히 송구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솔직히 그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성도들에게 대신 사용하라고 한 말이 두목 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외모적인 요소도 있고 해서 성도들은 그 호칭을 좋아했습니다. 저도 그게 듣기가 좀 더 편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저 역시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좇아가는 양에 불과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래도 교회의 담임목사니까 그냥 양이기는 뭐하고 해서 그 양들을 몰고 다니는 맨 앞에 선 두목 양이라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이 두목 양을 잘 생각해 보니까, 두목 양도 참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두목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기가 막히게 잘 들어야 하고, 방향을 정확하게 잡아서 빈틈없이 붙어서 좇아오는, 자기를 따르는 양들을 목자가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목 양하나가 실수하면 자칫 양 무리 전체가 큰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무리나 탁월한 두목 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 훌륭한 두목 양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스스로 주님 음성을 놓치지 않고 듣기 위해 애를 썼고, 맡겨진 성도들을 어찌해서든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서 노심초사의 세월을 지냈습니다. 뭐 나름대로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 두목 양의 역할만으로는 목사의 사역을 충분히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있는 것 같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의 한 부분이 조금 약화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대화하시면서, “내 양을 먹이라”(15, 17), “내 양을 치라”(16) 하신 말씀이 충분히 녹아들지 못한 생각으로 여겨졌습니다. 확실히 양을 먹이고 치는 일은 두목 양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양을 먹이고 치는 일을 실제로는 하고는 있지만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할 수 없으니까 슬그머니 뒤로 물러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양다리를 걸쳐 놓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익숙한 두목 양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제대로 된 목자로서의 사명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씩, 마음 들여 감당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저 맨 앞에 서서 길만 잘 찾아가지고 나를 따르라!” 하던 입장에서, 항상 양들 곁에 함께 있어서, 양들의 상태를 세세히 살피고, 그들의 필요에 구체적으로 반응하면서, 필요하다면 양들을 위해 희생을 기꺼워하는 목자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인지가 더욱 확실히 각인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보니까, 정말 교회의 목사님들이 원래의 자기 사명에 충실하고, 언제부터인가 누리게 되고 갖게 된 잘못된 권세를 가만히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세상의 많은 손가락질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제가 옳고 기성세대는 썩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돌아가야 할 원래의 부르심의 자리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해보는 말입니다. 골똘히 생각할수록 무시할 수 없는 주님의 음성이 잔잔하게 들립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 배동훈 목사 남성대교회, 침례교 군목단장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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