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교회 전통 속에 있는 침례교회-1

  • 등록 2017.07.06 16: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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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교회(Free Church)는 국가교회(혹은 시교회)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교회가 국가교회가 된 시발점은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313년에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신교의 자유를 허락하면서부터였다. 이는 한편에서는 기독교회나 복음이 로마제국을 정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독교회가 세속권력과 결탁하여 타락(Fall of the Church)의 첫걸음을 내디딘 사건이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가 국가권력과 바람이 난 것이다. 군사적 정치적 통일을 이룬 콘스탄틴 황제는 아직도 로마제국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당시 급성장하고 있던 기독교 세력에게 손을 뻗쳐 자신의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교회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를 “콘스탄틴의 공생”(共生, Constantine Symbiosis)라고 부른다. 국가가 교회와 공생을 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어떤 이들은 “국가와 교회의 결혼”(結婚, Marriage)라고도 하고 “국가와 교회의 합금”(合金, Amalgamation)이라고도 한다.
380년에는 데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언하고 기독교를 유일한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했다. 313년 이전에는 기독교가 핍박받는 불법적인 종교였으나, 380년 이후부터는 기독교만이 합법적인 종교이고 그 이외의 모든 종교들은 불법적인 종교가 되었다. 이제 기독교는 다른 종교인들을 핍박하는 권력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이는 신약성서적 교회(NT Church)로부터의 큰 일탈이었다. 그 후 중세 1,000여년 동안 교황청의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로마가톨릭교회를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국교로 여겼다. 그래서 중세의 유럽을 대변하는 말이 생겼는데, “한 목자 아래 한 양떼”(One Flock under One Shepherd)라는 말이다. “한 목자”는 로마교황청의 교황을 가리키고, “한 양떼”는 유럽에 살고 있던 모든 주민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16세기에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지만, 주류종교개혁가들(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루터, 쯔빙글리, 깔뱅, 영국왕과 영국국교회 지도자들)은 세속권력가들의 후원을 입어 종교개혁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들이 세운 교회 역시 국가와의 관계를 단절하지 못하고 국가교회 혹은 시교회 형태의 교회가 되었다. 실제로 루터교회(Lutheran Church)는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의 국교가 되었고, 개혁교회(Reformed Church,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의 국교가 되었으며, 영국국교회(Anglican Church, 성공회 Episcopal Church)는 영국의 국교가 되었다. 쟝 깔뱅의 개혁사상은 제네바 시를 통치하는 정치이념이자 신앙적인 가르침이 되었다.
국가교회 체제의 교회는 대체로 유아세례(Infant Baptism) 전통을 견지했다. 갓난아기가 태어나면 육체적 출생과 함께 국가교회의 교구교회(Parish Church)에서 유아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교회에 속하게 되었다. 갓난아기의 부모들이 세속국가의 행정관청에 “출생신고”를 함과 동시에 그 갓난아기가 교구교회에 유아세례를 받도록 함으로써 “교적신고”를 하는 양상이었다.
이러한 행습에 도전을 했던 개혁가들이 바로 “근원적 종교개혁가들”(Radical Reformers)이었는데, 대표적인 사람들이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Biblical Anabaptists)이었다. 이들은 유아세례 전통을 반대하면서 뱁티즘은 오직 회개하고 예수 믿은 신자들, 다시 말하면 신앙고백을 분명히 하는 신자들(Professing Believers)에게만 베풀어야 하고, 동시에 교회는 예수 믿는 신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Believers’ Church by Believer’s Baptism)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는 물론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관료후원적 종교개혁가들)로부터 혹독한 핍박을 받았다.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은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주장하며 신약성서에 계시되어 있는 순수한 신자들의 교회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침례교회는 “자유교회” 혹은 “신자들의 교회”(Believers’ Church)의 신앙적 전통 속에 있는 대표적인 교회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을 분명히 하는 거듭난 신자들에게만 뱁티즘을 베풀었던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은 근대 자유교회운동(Modern Free Church Movement)의 원천(분수령)이 되었던 사람들이었다. 침례교인들은 성서적 아나뱁티스트들을 직접적인 역사적 조상으로 보지는 않지만, 그들이 가졌던 신자의 뱁티즘에 의한 신자들의 교회(Believers’ Church by Believer’s Baptism), 교회와 국가의 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국교체제의 교회에 대한 배척), 신약성서적 교회로의 회복(Restitution to the New Testament Church), 헌신된 제자도(Dedicated Discipleship, Nachfolge Christi), 양심과 신앙의 자유(Freedom of Conscience and Faith) 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그들과 매우 유사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
침례교회는 오직 거듭난 신자들로 교회회원을 삼는 교회이다(regenerate church membership). 따라서 유아세례(infant baptism)나 밥티스마에 의한 중생(regenerational baptism, 세례나 침례를 받으면 거듭난다는 주장-필자 주)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믿음으로(by God’s grace AND by faith) 구원을 받는다고 믿으며, 신앙을 고백하는 성인에게만 침례를 베푼다(believer’s baptism, adult baptism). 교회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로 구성되는 영적인 공동체이고(spiritual body of believers in Christ), 교회는 국가나 세속정치로부터 분리된다(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지역교회 자체는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그리스도의 몸(independent and autonomous local church)이기 때문에, 회중주의적인 민주주의 정치(congregational democratic polity)를 이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침례교회는 자발성(voluntarism, 자원주의)을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며,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freedom in Christ)를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일반적으로 침례교인들은 “종교문제에 있어서의 영혼의 유능성”(the competency of the soul in religion)을 강조한다. 비록 인간이 아담의 죄로 인해 타락해서 인간의 선행이나 의지로는 결코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자유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피조된 인간은 비록 죄악에 물들고 깨뜨려진 자유의지이긴 하지만,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을 힘입어 복음 앞에서 “예!” 혹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ability to say “yes” or “no”)은 가지고 있다고 본다.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원의 침례교회사 교수였던 레온 맥베스(H. Leon McBeth) 박사는 우리가 즐겨 부르고 있는 복음성가,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x3>. 뒤돌아 서지 않겠네”(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x3>.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라는 찬송에 대해, 비록 그 가사는 매우 짧지만 침례교 신앙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H. Leon McBeth, “하나님은 영혼의 유능성과 모든 신자들의 제사장 직분의 원리를 주셨다,” Charles W. Deweese, ed., 「21세기 속의 1세기 신앙」(Defining Baptist Convictions), 김승진 역,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 2005, 107-21).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했네”(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결정할 수 있는 능력, 결단할 수 있는 능력,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기로 결심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신앙적인 문제에 대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결정할 수 있는 능력”(power to decide)이 인간에게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이다. 믿음이 단순히 지식적인 동의(assensus)에 그치지 않고 의지적인 결단(fides)까지도 포함되어야 비로소 “구원하는 믿음”(saving faith)이요 “살아 있는 믿음”(living faith)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원하는 믿음, 다시 말해서 지식(知)과 감정(情)과 의지(意), 즉 전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영적으로 거듭 날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침례교인들은 믿고 있다. 따라서 침례교인들은 믿음을 매우 적극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 은혜를 베푸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믿음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믿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회개케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믿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지만, 회개하고 믿는 주체는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구원받을 길은 없다. 성경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명령하고 있고 약속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으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고 명령하지 않았겠는가? 믿는 것은 “믿는 것”이지, “믿어지는 것”이나 “믿게 되는 것”이 아니다. 성경 어디에도 “믿는다”는 말을 수동태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교회는 신약의 산물(the product of New Testament)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의 유산이다. 교회의 탄생일은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날, 즉 성령님이 강림하셨던 날이다. 예수님이 약속하셨던대로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심으로, 그리고 제자들이 그 성령님을 마음 속에 모심으로 지상에 최초로 교회(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했다. 교회는 하나의 신비이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계획하고 계셨던 것인데, “때가 차매”(갈 4:4)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결국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날(행 2:1~4)에 지상에 교회라고 하는 신령한 기관(spiritual institution)을 탄생시키셨다. 구약시대에는 지상에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구약성경에 장차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장차 지상에 세워지게 될 교회에 대한 예언(prophecy)과 모형(type)과 그림자(shadow)와 암시(hint)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의 설교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방황했던 때를 회상하며 “광야교회”(the assembly in the desert, 행 7:38, 사실 한글성경에서 “광야교회”라고 번역한 것에는 문제가 없지 않고 “광야총회”나 “광야회집”의 의미이다-필자 주)란 말을 사용하긴 했지만,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민족공동체를 신약성서적인 의미의 교회라고 볼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신약성서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 각별한 조심을 할 필요가 있다.
구약성서를 신약성서적인 관점에서,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통해서 보아야 구약성서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유대교인 신학자가 보는 구약성서와 그리스도인 신학자가 보는 구약성서는 같을 수가 없다. 유대교인 신학자는 만약 그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면 그에게는 생명(영원한 생명, eternal life)이 없지 않은가? 구약은 어찌 보면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인들의 실패의 역사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저주에 대한 경고”(말 4: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로 막을 내리고 있다.                             <계속>
김승진 교수
침신대(역사신학)
예사교회 협동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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