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반백년에 과연 필요치 않은 경험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문득 생각해보았다. 몇몇 성공했던 경험들을 포함하여, 실패한 경험, 상처 받은 경험, 너무나 억울해 주저앉고 싶었던 경험들과 하나님과 나 자신과 가족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던 경험들까지도 모두 합해서….
결론은 아니었다. 그 모든 경험들은 다 내게 필요하였다. 성공한 경험들은 나를 자신감 있게 만들었고 당당하게 만들었다. 그 쌓여진 경험들로 인해 더 큰 것을 추진할 용기도 가질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내 존재감을 알리는 일에도 기여하였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실패 경험들 역시도 필요하였다.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나의 한계도 깨닫는 소중한 기회들이었다. 하나님을 더 의지할 수 있었고, 나를 진지하게 돌아보게도 해주었다. 다른 사람의 입장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님도 깨닫게 해주었다. 경청과 배려, 양보와 이해, 수용과 용서를 학습하게 되었고, 기다림과 내려놓음, 생각의 정돈과 인격의 다듬어짐도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일부는 진행형이지만….
그렇다면 내 일생에 만나는 사람들 역시도 그러하리라. 우리의 만남에 어찌 우연이 있으랴. 필요하니 만나게 하신 것이고, 필요하니 하나님이 붙여주셨겠지.
문득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도 문구가 떠오른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요 17:6)
그렇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셨다. 가족도 성도도 친구도 원수도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 당신의 사람들을 내게 붙여주셨다. 그들이 내게 미친 영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건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모두가 다 날 성숙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날 내게도 참 많은 긍정적 격려자들이 있었다. 날 이끌어주고, 지도해주고, 칭찬해주고, 용기 북돋아주고, 일 도와주고, 슬픔 위로해주고, 들끓는 마음 진정시켜 준 누군가가 있었다. 친구 되어주고, 스승 되어주고, 가족 되어주고, 성도 되어 준 이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날 위해 보내주신 참 고마운 존재들이다. 그들이 내 인생에 없었다면 어떡할 뻔 했나 싶다.
하지만 그 반대도 없진 않았다. 마음 상하게 하고, 억울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누르고, 무시하고, 욕하고, 비방하고, 나쁜 소문내고, 나 싫다고 떠나버린 이들도 있었다. 그때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그들 때문에 내 마음은 심히 어두웠고, 외롭고, 자존심 상하고, 수척했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만나게 하셨는지, 그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니 결국 그들도 고마웠었단 생각이다. 오늘의 나는 분명 그들로 인하여서도 세워지고 다듬어졌음을 안다. 날 돌아보게 하고, 성숙시키고, 날 반석 위에 올려놓은 주역이었음을 안다. 덕분에 참 많이 기도했고, 더 겸손해졌으며, 하나님 앞에도 더 가까이 갔고, 맷집도 더 탄탄해졌다. 정말이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꼭 맞다.
그래서 내리게 된 내 짧은 인생과 목회의 결론은 이것이다. ‘자수성가’(自手成家)는 없다. ‘타수성가’(他手成家)만 있을 뿐.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 유익한 사람만 있을 뿐.
그러니 다시 마음을 열고 겸손하게 배워보자. 누구를 만나든 소중하게 대해보자. 어떤 경험이든 주님 뜻만 묵상하자. 나와 가까운 가족부터 존귀히 여기고, 한 번 스친 인연도 귀히 여기며, 중요한 사람은 중요하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소중히 여기자. 때론 아픔과 고통을 겪더라도 내 인격의 깊이와 넓이와 크기와 길이를 확장시킬 기회로 삼아보자. 처음부터 소중하다고 구별된 사람은 없다. 내가 소중히 여기면 소중한 사람이 된다. 고마운 사람도 따로 없다. 내가 고맙게 여기면 고마운 사람이 된다. 결국 목회는 모든 사람을 다 품고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