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등록 2017.07.06 16: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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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목사의 목회이야기-79

벌써 3년이나 된 일, 그렇다고 기일(忌日)도 아닌 난데없는 날에 왜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그렇게 목이 메었는지 모르겠다. 폭포 같은 눈물도 눈물이거니와 주체할 수 없는 괴로움에 왜 그리 고통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내 속에 그렇게 깊은 쓴 뿌리와 결핍과 거절과 학대에 대한 눌림과 상처가 있었던가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그 모든 것들이 실제 가래 뱉는 것으로도 다 쏟아져 나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는 요즘 아내와 함께 목회자 훈련을 받는 교육 장소에서 일어난 일인데, 다른 목회자들도 많이 있는 그곳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 다 큰 어른이, 체면도 생각해야 할 중형교회 목사가 그냥 마냥 울어 젖혀 버린 것이다. 다른 분들이 뭐라 하든 말든.


왜 그랬을까? 왜 나는 그날 나의 이성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북받쳤을까? 이는 아버지에 대한 강의를 듣던 중 순간 내 안에 일어난 몇 가지 감정적 역동 때문이었는데, 첫째는 아버지로부터 나와 우리 가족이 받았던 부재의 학대’(Absent Abuse)가 준 고통들이 순간 확 밀려와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 아버지는 폭력을 가하는 등의 가학적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를 가장 필요로 했던 어린 시절의 많은 부분을 마치 아버지 없는 자식처럼 지내야만 했던 부재의 상처는 꽤 컸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내 아버지는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시느라 가정은 거의 제대로 돌보진 못하셨다.


차라리 안계셨다면 기대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분명히 계신 아버지였기에 그 부재(不在)와 방치(放置)는 양육과 공급과 돌봄을 적시에 받지 못한 소극적 학대의 고통으로 오랫동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 며칠 전 그 날의 고통은 그에 대한 원망 섞인 절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 어디 갔냐, “아버지, 좀 와보라나랑 얘기 좀 하자며 소리까지도 질렀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는 곧, 그 아버지를 용서하는 쪽으로 자연스레 바뀌었다. 반백년 세월, 나와 묶여있던 그 감정의 고리를 용서의 선포로 끊어내었다. 왜냐하면 결국 용서만이 그 고리를 끊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오히려 그것에 더 단단히 묶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 해묵은 원망은 아버지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나도 모르게 바뀌었다. 줄기차게 미워만했던 내 마음에 갑자기 죄송한 마음마저 밀려왔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난 그날 내 마음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이는 장례식 때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고 나니 얼마나 내 맘에 평강이 임하는지 정말 놀라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설교했음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풍성함을 투명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란 호칭에 매여 어쩔 수 없이 육신의 아버지이미지를 통해 그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려다 보니 그 너그러움과 풍성함과 관용과 사랑을 정말 진실하게 느끼지 못했다. 자상하기보다 경직되었고, 들어주기보다 일방적 훈계만 일삼았다. 정직한 고백이다.


셋째, 그러고 나니 하나님 아버지가 다시 보였다. 긍휼에 풍성하신 나의 하나님 아버지가 다시 보였다. 그동안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았던 눈을 접고,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를 직접 대면하였다. 그랬더니 내 눈 앞에 서 계신 그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인자하시던지. 그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 세상도 얼마나 아름답고 좋던지.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지금, 마음이 참 좋고 평안하다. 자그만 것에도 눈물이 나고,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 고맙고 다 미안한 사람들 밖에 없어 보인다.

25년 목회에 이제야 그 작업이 내 안에 이루어졌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날 만지신 그 주님을 난 찬양한다. 날 다시 품어주시고 회복시켜주신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한다.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

관리자 기자 bpress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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