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 네 사람은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빈 배를 몰고 들어와 그물을 씻고 있을 때 갈릴리 산골 나사렛 동리에서 내려온 목수 예수의 말씀에 순종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두 배에 가득 채워 돌아온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한 후 그때부터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 낚는 어부로 예수 따라 제자가 되어 3년 넘게 제자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날부터 사명자의 훈련은 시작되었고 주님은 끝까지 참으시고 다듬어 복음의 사명을 감당케 하셨다.
이름부터 시몬에서 베드로라 고친 것은 가이사랴 빌립보의 그 위대한 신앙고백 후였으나 곧 이어 “사단아 물러가라”는 주님의 꾸중을 들었다. 예수 선생을 바라보고 물 위로 걸어간 그가 물에 빠졌듯이 주님이 잡히시던 밤, 스승을 부인한 겁쟁이로 심히 통곡하며 회개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잡히사 십자가에 달리실 때 사도 요한 외에는 주님의 예언대로 살려고 다 도망쳤다.
예수의 부활을 본 후에도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호수에 물고기 잡으러 갔으나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질문으로 수사도의 사명을 다시 각성시키셨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은 뒤에야 베드로는 완전히 달라졌다.
공회 앞에 위협 속에서도 담대히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담대히 답변했고 수사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로마에서 도망 중에 예수를 만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쿼바디스 도미니에)에서 로마로 돌아가 거꾸로 십자가에 달렸다고 전해지고 장렬한 순교로 천상의 영광에 들리웠다.
예수님은 변화산상이나 겟세마네 동산에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대동하셨는데 이들 두 형제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새 이름을 주셨다.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의 첫 번 순교 다음 사도로서 야고보는 첫 번째 순교의 영광에 올랐고, 골고다의 십자가 동산까지 따라간 사도 요한만 순교하지 않고 마리아를 모시고 천수를 누리며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한 후 산 순교를 밧모 섬에서 맞았다.
그러나 신임을 받아 재정책임자였던 가룟 유다는 사단의 유혹과 수전노로 은전 30에 스승을 배반하고 자살로 창자가 흘러나온 후 검은 장막 속으로 사라졌으니 주님의 말씀대로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배신자가 됐다. 다른 10제자도 복음을 전한 사명을 다한 후 순교의 영광에 올랐다.
사실 제자들은 맛디아를 뽑아 12사도의 자리에 넣었으나 주님은 스데반을 죽인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 그를 사명자로 세워 복음의 역사를 이뤄 가신 섭리의 역사가 있었다. 그의 회심을 30세로 본다면 아라비아에서 3년 후 다소에서 만난 바나바와 목회를 하던 중 1차 전도여행 후 14년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베드로를 위시한 모든 사도들과 교제의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제2차와 제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성령의 이끌림으로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는 길에 해변도시 드로아에서 45km 떨어진 그가 3년간 목회한 에베소교회의 지도자들을 초청해 고별사를 나눈 장면이 사도행전 20장을 메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직접 뽑아 12사도에 넣은 사울(크다)은 스스로 자기 이름을 바울(적다)로 바꾸고 성령 충만 후 구령의 열정으로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전도와 선교사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며 기독교 신학을 정립한 대신학자로 그의 서신에서 나타난 고백대로 예수님의 남은 십자가를 지고 끝없는 고난과 핍박, 환란에 마지막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서 목베임으로 67세경에 순교하기까지 사명에 지사충성한 2000년 기독교 역사 중에 가장 혁혁하고 위대한 별로 빛을 발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예수님, 자주 일어나셔서 반갑게 환영하셨는데 왜 저 유명한 목사님께서 천국에 오셨는데 일어나시지 않고 앉아서 인사를 받으세요?” “글쎄, 일어났다가 혹시 내 보좌마저 빼앗길까봐 않아서 환영인사를 했지요!” 라고 성도들의 질문에 대답하셨다는 것이다.
이 익살로 농담 삼아 던진 얘기를 듣고 웃다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혹시나 내가 천국 입성때 벌어질 일이 아닌지? 지난 65년 신앙생활과 목회를 하면서 또는 130여회로 수십 개국 국내외의 부흥회나 선교집회를 인도하면서 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또 보좌에 앉기를 좋아하는 목사, 부흥사, 장로, 집사와 성도들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예수님의 3년 반 공생애 중에 의심의 도마, 3번이나 부인한 수제자 베드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도망간 10제자 및 입맞춤으로 스승 예수를 노예의 몸값인 은 30냥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뿐이랴. 사도 바울에게도 해를 많이 입힌 구리 장색 알렉산더와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린 데마와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데메드리오 뿐이었겠는가?
예수님은 보좌를 빼앗길까 염려하신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히려 하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종의 형체로 낮고 낮은 말구유에 애기로 오셨다. 바울은 이 나사렛 예수를 만난 뒤 아래의 감격스런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셨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5~11)
/ 한명국 목사 BWA전 부총재 예사랑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