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66권 가운데서 요나서만큼 영감성을 의심 받은 책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서구 학자들 가운데는 요나서의 물고기 이야기를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해야 요나서 속에 든 하나님의 진정한 메시지(kerygma)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성경은 창세기 첫 행부터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행까지 모든 내용이 직 간접적인 초자연적 역사(役事)로 점철된 책인데 굳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사흘 동안 갇혀 있었다는 사실만은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논리가 이상하다. 성경은 과학적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책이 아니라, 믿음으로 수용하는 책이므로 선택적으로 어떤 부분은 믿고 어떤 부분은 믿을 수 없다고 거부할 수 없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성령 잉태와 부활 승천은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은 물론 성경 전체를 부인하는 것과 같으며. 66권의 책 중에서 한 권이라도 믿지 못하면 전체를 믿지 않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요나는 북왕국 여로보암 2세의 통치기간인 B.C. 800~750년경에 아모스와 동시대에 활약한 예언자이다. 여로보암2세(793~753)는 통치 초기에 앗수르와 시리아의 세력이 위축된 틈을 타서 빼앗겼던 땅을 회복하여 이스라엘 영토를 시리아 북쪽 하맛 어귀에서부터 남으로는 사해 아라바 바다까지 넓혔다(왕하14:25).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좌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고 증언한다(왕하14:24).
이 때 하나님께서는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부르셔서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셨다(왕하14:25, 욘1:1,2). 홍반식은 그의 ‘구약총론’(성암사)에서 당시 니느웨의 왕은 아닷 니나르(Adad Ninar, III, B.C. 810~782)나 아슈르 단(Ashur Dan III, 771~754)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이 시기에 큰 종교개혁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용했다(Winckler).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예수께 나가서 표적 보여주기를 원했을 때 예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내게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고 대답하셨다(마12:39~40, 16:4).
요나서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과연 예수께서 자신의 구원사역을 두 번이나 요나에 비유해서 말씀하셨을까? 미가가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고한 것처럼(미5:2), 이사야가 그가 고난의 종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을 예언한 것처럼(사53장); 요나서는 예수의 죽으심과 장사됨과 부활을 예고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일찍이 예비하신 책이다. 믿음은 총체적인 것이다. 부분적 믿음은 불신과 다를 바 없다. (연대는 NIV Study Bible을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