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본 갈라디아서의 구원론-5

  • 등록 2017.04.21 11: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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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의 기독론적 구원론에서 중요한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믿음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됐다. 그 중에서 믿음(faith)과 신실(충성, faithfulness)이라는 두 개념은 아주 밀접한 상호관계가 있다. 갈라디아서 216절과 322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믿음을 주어적 속격으로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전통적인 방법대로 목적격 속격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할 것인지가 국내외 신약학 연구의 뜨거운 감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현재 듀크 대학의 헤이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The Faith of Jesus Christ)이란 책에서 전통적인 다수설과 달리 목적어적설을 강력히 주장함으로 논쟁의 방향을 바꿔 버렸다. 헤이스는 갈라디아서 216절을 제외한 모든 경우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는 해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더 낫고 만족스러운 의미를 제시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통한 칭의를 주장함으로써 칭의론을 새로운 각도로 제시한다. 그러므로 신자의 칭의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의한 신자의 믿는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에 기초한 대속 사건 자체에 둠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고 충성하는 신앙을 갖게 한다.


이러한 견해는 기독론만을 너무 강조해 신론적이고 성령론적인 구원론을 무시하고 있다. 신론적인 입장에서 전통적으로 해석해 온 예수를 믿는 믿음도 중요하다. 예수를 믿을 때 예수의 믿음(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성)이 주어진다. 성령은 우리로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할 수 있도록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성으로 살게 하시는 영이시다.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 하나의 신비로 여겨왔을지라도 성경적 토대 위에서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행위를 이해해야 한다. 이 구체적인 하나님의 행위가 삼위일체의 구조에서만 구원론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고 보인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연구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예수를 믿는 믿음과 예수의 믿음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긍정한다. 그럴 때에 한국교회의 믿음과 행위의 불일치를 해소하며 갈라디아서의 구원론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 전통주의와 새 관점학파의 갈라디아서 구원론

갈라디아서의 구원론을 연구하는 데 있어 두 가지의 관점이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견해이다. 이 견해는 신인협력설에 근거한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받는다는 가톨릭 구원관에 반발하여 모든 행위를 배제시키고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마르틴 루터의 주장에서 비롯됐다. ‘신인협력설은 둘 이상의 행위를 수반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이 견해는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작용으로서 반펠라기우스주의의 구원론과 연관을 갖는다. 따라서 신인협력설은 대체로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필수요소이지만, 그 효력은 인간의 협력에 의존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인협력설은 중생이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먼저 그분께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고 가르쳤다.


두 번째는 새 관점주의 견해이다. 이 견해는 전통주의의 구원론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새 관점주의자들은 이신칭의의 개념으로만 구원론을 해석하는 데서 벗어나서 1세기 유대주의에 근거하여 바울 서신을 재평가하면서 사회학적인 관점과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갈라디아서의 구원론을 해석한다. 전통주의의 관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갈라디아서의 주석을 쓰고 갈라디아서의 이신칭의를 기초로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던 루터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루터의 구원론이 태동되던 배경에는 가톨릭의 구원론이 있다.


먼저 가톨릭의 구원론에서부터 시작해 루터의 구원론을 알아보고 특히 루터의 구원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루터의 갈라디아서 주석을 살펴보겠다. 새 관점학파들의 태동과 그들의 구원론을 요약해 알아보고 그들에 대한 개혁주의의 반격과 서로의 주장을 알아보고 평가를 하겠다.

 

1. 루터의 갈라디아서 주석에 나타난 구원론

먼저 루터의 이신칭의의 구원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가톨릭의 교리를 살펴보고, 가톨릭의 교리인 반펠라기우스주의 시작된 신인협력설에 대하여 비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주장한 루터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1) 가톨릭과 루터의 구원론

가톨릭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해 은혜박사(doctor grace)라고 불린 어거스틴(Augustin, 354-430)으로부터 시작해서 스콜라주의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에 의해 집대성됐다. 자신이 한 동안 속했던 마니교와 플라톤주의를 비판하면서 원죄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던 어거스틴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상대적으로 경시했던 펠라기우스(Pelagius, 354-418 이후)와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그리고 반펠라기우스주의(Semi-Pelagianism)와 논쟁을 벌이면서 인간의 본성이 부패되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어거스틴은 인간이 완전히 타락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어떠한 협력도 할 수 없으며 신앙의 촉발도 인간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자유의지보다도 선행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은혜론을 부각시키며 그 전제로서 예정론을 주장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원죄(peccatum originale)”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해 원죄를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이해하면서 그 원죄의 해결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보았고 인간은 타락함으로 자유의지를 상실하여 노예상태에 빠진 것으로 믿었다. 어거스틴의 칭의교리의 핵심은 하나님의 의에 관한 이해이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의 정의로서 자신이 의로우시다는 뜻의 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게 하신다는 로 본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김종이 목사 / 성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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