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이른 아침부터 일산으로 달려가 교우의 장례예배를 인도하고 내려오던 중, 부목사님의 운전에 의지해 잠깐 눈을 붙이려는데 문득 생각나는 이름 하나가 있어 얼른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열 번의 신호가 울리도록 받질 않아 그만 끊으려는데, “네~”하며 아주 힘없고 작은 목소리가 먼 곳의 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래서 나 역시 조심스럽게 “여보세요? 000집사님. 김종훈 목사입니다”라고 했더니 그제야 기운을 차리시고 좀 더 친근한 목소리로 “아, 담임목사님이세요?”라고 응해주셨다. 그러시면서 그때부터 봇물 터지듯 당신의 마음이 요즘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내게 막 쏟아 붓기 시작하셨다.
그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일찍 부모님을 여의어 맘 잡을 데 없었던 동생들을 누나로서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돌봐왔는데, 올해 들어 그 남동생들을 둘씩이나 졸지에 병으로 잃고 하늘나라에 보내야만 했던 것에 대한 아픔이었다. 물론 나도 그 소식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지금까지도 아픔이 심하실 줄은 솔직히 몰랐었다.
게다가 그 둘을 위해 누나로서 그렇게 기도도 많이 하셨단다. 잘 살게 해달라고….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 둘을 다 데려가셨느냐”는 원망이 너무나 크셨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생일날인데도 며느리가 차려준 미역국도 넘어가질 않아 그냥 두고 있는 상황이며, 그래서 요즘 교회도 안 나가고, 심지어 오는 전화도 다 안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얘길 듣는데 얼마나 내 마음도 아팠는지 모른다. 그 어떤 위로의 말 한마디도 생각나질 않았다. ‘오죽하면 저렇게까지 말씀하실까’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집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제가 오늘 이 전화를 받은 이유는 어젯밤에 담임목사님 꿈을 꿨기 때문입니다. 저도 처음 꿔보는 꿈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침에 전화벨이 울리기에 모르는 번호라 안 받을까도 했지만, 갑자기 어젯밤 꿈 생각이 나서 혹시나 해서 받았더니 담임목사님이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너무 죄송하고 감사하는 말씀이셨다. “대통령 전화보다 더 반갑다” 하셨다. 그 얘기가 어찌나 힘찼던지 함께 운전하는 우리 부목사님도 들었나보다. 그 말씀에 나도 힘이 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몇 분 더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이제 하나 남은 막내 동생을 위한 기도 부탁도 하셨다. “이 동생도 불쌍한 동생인데 저렇게 술 담배를 많이 하니 걱정”이라시며 꼭 예수 믿고 새 삶 살 수 있도록, 건강할 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부탁하셨다.
그래서 나도 당연히 그러겠다며 그 즉석에서, 전화를 통해서였지만 집사님 마음을 주께서 위로하시고, 남은 동생도 예수 믿고 강건하도록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면서 “그래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함께 하시니 다시 일어서시라” 부탁도 드렸다. “얼른 미역국도 드시고 생신날이니 다시 일어서라” 권했다. 그 덕분인지, 전화기에서 들려온 마지막 목소리는 처음 들려온 목소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밝고도 큰 목소리였다. “예.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니 참 많은 생각이 또 스쳤다. ‘아무 것도 아닌 나의 전화 한 통이 누군가에겐 이렇게 절실한 것일 수 있다니, 내 기도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천군만마를 얻게 한 일일 수 있다니….’ 새삼 내게 주신 특권에 또 감사했다. 전화 한 통으로 누군가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업(UP)시키고, 팽개쳐 놓은 미역국까지 다시 드시도록 만든 힘, 그게 바로 목사의 전화 한 통의 힘이었다.
그러고 나서 올려다 본 차창 밖 하늘은 유난히 참 맑았다. 바람은 쌀쌀했으나 하늘은 더없이 파랗게 크게 열려 있었다. “주여, 이 하루도 오산침례교회에 속한 모든 교우들의 삶도 마음도 저렇게 시원하게 열어주시옵소서.” 그러고 나니 어느 새 차량은 교회 주차장에 무사히 다다르고 있었다.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