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본 갈라디아서의 구원론-11

  • 등록 2017.06.02 10: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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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구원론의 관심은 나는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는가?”라는 구원의 방법에서부터 출발했다.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가톨릭교회의 가르침대로 고행의 길을 걸었지만 해답을 얻지 못하고 절망하다가 로마서 117절에서 형벌적인 의가 아닌 대속적인 의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값없이 주시는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루터는 자신의 죄의 문제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의 구원론을 체계화시켜 칭의교리를 만든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구원론은 인간의 관점에서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뜻과 약속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두게 된다는 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구원론을 제시하고 있다.


3) 평가

가톨릭은 갈라디아서를 칭의·성화라는 한 가지 개념으로 이해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해 믿음과 행위를 모두 강조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적인 인간의 선행(공로) 사상이 들어와서 섞이면서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인간의 행위나 종교의식을 통해서 구원받는 관점에서 구원론이 체계화됐다. 이는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성령으로 거룩하고 영화롭게 되어 완성된다는 구원론에서 너무 멀리 벗어난 결과를 초래했다.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를 배제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까지도 약화시켰고 성령의 역사를 마리아 사상으로 대체시키는 적그리스도적인 구원론으로 변질됐다.


이런 맥락에서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칭의라는 좁은 의미로 구원론을 체계화시켰다는 점이다. 이것은 루터의 칭의가 모든 행위 자체를 배제해 버린 결과를 초래하게 됐음을 보인다. 다시 말해 그의 구원론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의롭게 됨은 강조됐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에 순종하는 삶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루터는 가톨릭의 구원론의 문제점과 위험성을 올바로 파악해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탁월한 업적이라고 본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고 기독교 신앙의 흐름에서 큰 공로를 세웠다.


그러나 루터의 구원론 평가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이러한 가톨릭의 위험성에 대한 반발로 인한 또 다른 위험성이다. 말하자면 루터는 가톨릭의 대가와 보상이라는 구조를 문제 삼는 대신에 인간의 반응과 행위자체를 문제 삼았고, 그러한 점이 또 다른 위험성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비록 루터가 모든 행위를 문제 삼았던 이유는 가톨릭의 의롭게 되기 위한 선 조건, 즉 대가나 보상으로 행위를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문제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보상을 바라는 행위에 한정하여 논의하게 된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루터는 갈라디아서에서 모든 행위를 배제시키면서도 믿음과 사랑에 대한 해석의 틀을 가졌는데 이는 약간의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믿음을 통해 성령을 받은 이후 사랑의 실천을 강조했다. 이는 루터의 신학이 처음과 나중이 조금씩 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종교개혁 이전 초기에는 고해성사에서 통회와 보속에 대한 강조가 있었으나, 종교개혁 후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대한 강조로 바뀐다.

또 종교개혁 초기에는 성례를 표지나 상징으로 이해했으나 후기에는 은총의 수단으로 강조됐다.


갈라디아서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시작해 하나님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그리고 성령의 약속이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설명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과 웨슬리의 구원의 관점은 인간 중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칼빈은 16세기의 전제군주시대의 왕의 절대권을 인정하는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는 신관론을 체계화시켰다.


루터는 구원의 방법을 가지고 가톨릭과 투쟁했고, 칼빈은 구원자 하나님에 집중했고 웨슬리는 구원의 대상인 인간에 관심을 집중했기에 서로 다른 주제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있다. 어떠한 신학과 교리도 성경을 초월해 절대시 할 수는 없기에 이러한 견해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경에 있는 구원의 내용을 수용해야 된다고 볼 때 서로를 다르다고 비판하기보다는 장점을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2. 새 관점학파의 갈라디아서 구원론

종교개혁가들의 율법관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새 관점학파의 태동을 살펴보면, 갈라디아서의 해석과 구원관에 집중된 헤이스(Richard B. Hays)의 견해를 살펴보고 평가해 보기로 한다.

종교개혁가들과 새 관점학파의 충돌이 통전적이지 못하며 외골수적인 주장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그 대안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살펴볼 것이다.

 

1) 새 관점학파

갈라디아서의 구원론을 법적 선언인 이신칭의로 해석하는 전통주의 견해에서는 칭의를 유대교(율법)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간의 대립 속에서 제시했다. 즉 유대교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고 했던 율법주의 종교였으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갈라디아서는 이신칭의보다는 바울과 유대교(또는 율법)의 관계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연구됐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칭의론과 바울과 유대교의 관계가 뜨거운 논쟁의 중심 소재가 됐다. 전통주의 견해에서는 바울과 유대교라는 주제를 언급할 때 ’(and)라는 접속사가 일반적으로 반대를 암시했다. 예컨대, ‘바울 또는 유대교,’ ‘유대교에 대항하는 바울,’ ‘유대교 밖의 바울또는 유대교가 아닌 바울이다.

김종이 목사 / 성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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