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게 잘 나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 대중의 존경을 한 몸에 받다가도 어느 한 순간, 사람도 지위도 다 잃는다. 과연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이유는 뭘까?
이에 나를 포함한 우리 모든 목회자들이 새겨볼 성경적 교훈들이 여기 있다.
첫째, 선줄로 생각해서이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성경도 분명히 말했다. 마치 모든 것을 이미 다 이룬 양 자만하거나, 이제는 모든 게 다 자기중심으로만 돌아갈 거라 착각하여, 겸손일랑은 아예 없고 교만하기만 하여 안하무인(眼下無人)인 사람은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내 각본대로 일이 너무 잘 돌아갈 때 조심하자. 나를 향한 말들이 칭찬일색일 때 더 낮추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16:18)임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이다.
둘째, 경고를 잘 듣지 않아서이다. 아담과 하와도 그래서 넘어졌다(창3:2-6). 하나님 말씀은 무시하더니 사탄의 꼬임에는 잘도 넘어갔다. “죽는다”는 경고도 대수롭잖게 여기더니, “먹지말라”하시는 건 기어이 먹었다. 결국 그 일로 그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에서도 쫓겨나버렸다. 오고 오는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汚點)만 남겼다. 모두가 다 듣지 않음의 결과이다. 그러니 제발 들으라. 예배를 통해 위로도 지혜도 소망도 용기도 얻어야겠지만, 경고도 얻어야한다. 한 말씀도 농담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산다. 목회자 역시 외치기만 하는 설교자가 되지 말자. 자기가 전한 말, 자기도 들어야 한다.
물론, 이에는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서로에게 경고를 주지 못했음도 크다. 그들은 불순종하는 일에는 짝짜꿍이었으나, “그래선 안된다”는 견제구는 날리지 못했다. 아담이든 하와든 누구 하나라도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니 누군가 경고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나를 다시 정신 차리게 해주니까. 그러니 자기 판단을 너무 믿지도 말자.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생각에 갇힌다. 끊임없이 눈을 열어 나를 살피고, 남의 말에도 귀 열어 들으라.
셋째, 길 아닌 길을 가고자 해서이다(렘18;15). 군(軍)에 있을 때 중대장 하나가 길 아닌 곳을 들어갔다가 지뢰를 밟는 바람에 다리가 절단된 걸 본적이 있다. 그러니 길 아닌 곳은 정말로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정표를 주시지 않는 길 역시 가면 안된다. 목회자에겐 목회자의 길이 있고, 성도에겐 성도의 길이 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가깝고 편한 길을 놔두고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는지 생각해보라. 그 길은 가야 할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편한 길이라고, 빠른 길이라고 무턱대고 들어서지 말아라. 돌아가는 길이 더 안전하고 복된 길일 수도 있다.
넷째, 회개가 없어서이다. 그러면 결국엔 자신의 그 악함으로 인해 넘어지리라(잠11:5/사59:1~10). 따라서 사람이 넘어지는 건 실수나 잘못 때문만은 아니다.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못은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 것도 그랬다. 조금도 회개하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외쳤다.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리라. 회개하면 심판을 거두시리라.” 그러니 제발 하나님 무서운 줄 알아라. 하나님은 친히 구원도 하시지만, 심판도 행하시는 분이다(사 8:13~15).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